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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진미 Oct 08. 2024

기억해 함박스테이크

주부의 휴일 저녁

토요일에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었다. 중간고사 보는 아이를 위하는 주말 요리였지만 그것을 향한 과정은 내게 다가서기였다. 다 나았다고 여기던 감기 기운이 살살 살아난다. 목 안이 따갑다. 마치 손가락이 날카로운 것에 베어서 상처 난 것 같은 고통이 잠시 머물다 지나기를 반복한다. 코도 답답하다. 가만히 누워있고 싶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날보다 더 부지런해야 하는 게 주부의 휴일이었다. 집에 있는 약으로 우선 버텨보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는 남편과 동네 산책을 나갔고, 다시  남편 옷 쇼핑까지 다녀왔다. 쉴 틈 없는 하루였다. 부지런히 움직여서 그런지 아침보다는 기운이 난다.  

  

이런 일이 마무리되어 갈 무렵에 또 하나의 과제가 남았다.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가슴에서 왔다 갔다 한다.  미루기가 일상이지만 이번은 그래선 안될 것 같다. 얼마를 망설이다 함박스테이크를 만들기로 했다. 힘들었던 여름 더위는 사라진 지 꽤 되었다. 불 앞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도 그런대로 괜찮다. 


저녁준비는 늦은 오후로 달려갈 무렵 동네 정육점으로 가는 일부터다. 가장 중요한 돼지고기와 소고기 간 것을 사 와서는 냉장고에 두었다. 곧바로 다진 양파에 소금을 조금 넣고 볶았다. 내가 알고 있는 범위에서 만드는 음식이었지만 나름의 단계가 필요하다. 대충 하려 해도 꼭 해야 하는 일들이다. 마늘을 다진다음에는 필요한 재료를 넣고 함박스테이크를 미리 만들어 두기로 했다.  


고기에 소금과 케첩, 머스터드소스, 후추, 빵가루와 다진 마늘, 달걀 하나를 깨트려 넣고는 잘 치대었다. 각각이 어느 정도 어울렸다 여길 무렵 양파를 넣고 고루 섞이도록 했다. 둥글면서도 적당한 두께의  함박스테이크를 만들어 그릇에 층층이 쌓아 두었다.     


아이가 돌아오는 저녁 6시 무렵에 팬에 고기를 올리고 구웠다. 처음에는 강한 불로 하다가 중간불로 천천히 속을 익혔다. 급한 마음에 화력을 집중하면 겉은 타고 속은 잘 익지 않는다.  한 사람이 두 조각씩 돌아가도록 함박스테이크 여덟 개를 준비했다.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게 해서 굽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잘 익을 수 있도록 불을 살피는 일에 공을 들였다. 그러는 동안 소스도 만들었다.   

  

편하게 하기로 해서 시판 돈가스 소스를 활용했다. 버터를 뜨거운 팬에 넣고 집에 있는 채소를 볶다가 물을 적당량 붓고 돈가스 소스를 더한다. 여기에 양조간장 반 숟가락과 설탕을 조금 넣고 마지막에 녹말 물을 풀어주면 걸쭉한 소스 완성이다.     

다른 것을 만들 힘이 없었다. 밥그릇 옆에 각자의 접시에 함박스테이크를 두었다. 다른 반찬은 달랑 김치뿐이다. 그럼에도 식구들은 레스토랑 온 기분이라며 즐거운 식사를 이어갔다. 식탁에 잘 오르지 않는 음식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만으로도 저녁 시간이 생기가 돈다.   


쉬는 날 한 끼 정도는 평일과 달라야 할 것 같은 책임감에서 벗어났다. 집에서는 불편한 일들에서 살짝 비켜나도 그리 문제 될 것은 없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할 수 있다면 어제와는 다른 시간을 만드는 힘이다.  아주 오래전 회사에서 마감이 턱 밑에 다가오는 순간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 없이 일했던 절박감과 비슷한 감정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어찌 보면 조금 치열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그러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과한 행동을 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건 가슴에 정해둔 나만의 약속을 지켰다는 뿌듯함이다. 라면으로 때워도 되지만 미루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다.


“어른이 되면 가을 어느 날에 엄마가 함박스테이크 해줬다는 거 기억해야 해 알았지.”

아이들에게 그릇이 비워질 무렵 불쑥 내뱉었다. 왜 이 말을 꺼내었을까? 내 일을 잘하는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다. 주부라는 단어에 물음표가 찍힐 때면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난다. 부엌에서 힘을 내어 움직이고 있다는 건 스스로에게 철저함을 요구하는 동시에 깨어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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