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파이를 굽던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움직였다. 김장 하루 전날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할 게 여러 가지다.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작은 것들이지만 혼자 해야 하니 쉴 틈이 없다. 점심에는 올해 마지막 독서 모임까지 예약되어 있다. 가기 전 숙제가 가득이다.
고춧가루를 버무릴 육수를 큰 냄비에 끓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숨 돌리다 문득 아이들 간식이 떠올랐다. 십 여일 전 우연히 사과파이를 만들었는데 아이들 반응이 상당했다. 그동안은 밀가루에 버터와 잘 섞어 꾸덕꾸덕한 상태로 두었다 팬 바닥에 얇게 펴 놓고 사과조림을 올리는 형태였다. 이번에는 우연히 유튜브서 보게 된 레시피를 활용했다.
달걀 두 개와 밀가루 80g, 우유 100㎜에 그리 달지 않을 정도의 설탕에 소금 조금, 식물성 기름을 더한 것을 아주 고운 상태로 만들어 사과와 섞는 방법이었다. 이때 사과는 조리지 않고 채칼로 아주 얇게 썰고 레몬즙을 섞었다.
반죽을 사과와 섞으면 준비 끝. 파이 팬에 넣고 180도 오븐에서 50분을 구웠다. 파이가 구워지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물 주는 것을 걸렀던 고무나무를 욕조에 놓고서 충분히 샤워시켰다.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다 보니 파이가 다 구워졌다. 맨 위에 가지런히 놓인 사과가 곱게 자리를 잡았다. 이럴 때마다 무엇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건 사이의 차이를 발견한다.
파이를 보면서 흐뭇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올수록 한 해가 간다. 가을 무렵부터 여러 일이 쏟아지면서 힘들 때도 많았다. 그럴수록 아이들 얼굴이 어른거렸다. 하루를 아무 생각 없이 보내고 싶을 만큼 의욕이 없다가도 학교 갔다 오는 아이를 보면 그 자체가 위로였다.
우리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를 지나 엄마의 삶이 문득 다시 보일 때도 있었다. 이런 태도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대한 일종의 학습효과였다. 편안할 때만 마음먹고 하던 것들을 그러하지 않아도 할 수 있어야 함을 배웠다.
주부인 내게 아이들 간식 준비는 여러 일 중 하나다. 시간적 여유와 정서적으로 안정적이어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면 이들에게 좋은 것이기에 한다는 것. 경제적인 가치를 따지기 전에 가슴속에 따뜻한 온기를 심는 일이었다.
어떤 날은 이런 시선이 수동적이다 여기며 불만이었다. 확실히 자발적인 동기, 내가 원해서 하는 행동이 이상적이며 그것이 옳다고 여겼다. 그런데 돌아보니 소소한 것이 일상을 채우는 중요한 힘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을 꾸역꾸역 하는 것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잘하고 못함보다 하고 있는 게 중요했다.
파이를 준비하면서는 엄마의 역할을 돌아봤다. 아이들을 보면 반복적으로 사 먹는 일에는 별 느낌 없는 듯했다. 며칠 전 사과 파이를 구웠을 때도 과장을 더 해 열광했다. 지금까지 꽤 여러 종류의 빵을 구웠지만, 그중의 최고였다는 평을 내놓을 정도였다.
그러니 사과파이는 그동안 먹었던 여러 가지 중에 순위 안에 드는 디저트다. 그런 것을 내가 잠깐 손을 움직이면 가능하기에 지나치기 어려웠다. 반죽만 신경을 쓰면 오븐이 알아서 한다. 파이를 준비하는 일은 다른 찬을 만드는 것과는 달리 동시에 다른 일도 할 수 있어 시간 활용의 폭이 크다.
집안일이 끝나갈 무렵 사과파이가 다 구워졌다. 얇은 사과조각이 반죽 사이사이에 끼어들어 페이스트리와 같은 결을 만들고 우유를 머금은 옅은 농도의 반죽은 부드러움을 더했다. 아삭했던 사과가 파이 속에서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것으로 새로이 탄생했다.
붉게 익은 사과가 나오기 시작하는 가을을 지나 겨울에 먹는 사과파이는 따뜻한 집을 떠올리게 했다. 찬바람에 얼굴은 붉어지고 손은 얼음처럼 차가운 날 밖에서 돌아와 식탁 위에 놓인 파이를 만났을 때 기분을 상상한다. 내가 복잡했던 만큼 그것을 아이들이 모를 리 없다.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매일 이야기를 펼쳐놓는 아이를 보면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사과파이로 향했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