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부른 점심
날이 잔뜩 흐렸다. 축축함이 집안 전체에 스며들었다. 혼자 집에 머물 때는 이런 날이어도 지낼 만하지만 온 식구가 모이는 휴일에는 불편함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각자가 부지불식간에 뱉어내는 공기와 그들의 움직임이 절로 일으키는 것들이 모여 답답하고 복잡한 분위기를 만든다.
덥지는 않지만 상쾌하지 않다는 기분은 시간이 갈수록 커진다. 이건 그들을 바라보는 내 감정이 함께 뒤섞여 가면서 줄지 않는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해가 뜨고 적당한 바람이 살랑이는 화창한 때였으면 좋겠다.
이날은 그러하기는 애초부터 어렵다. 그럴 때마다 반복적으로 일을 찾는다. 그래서 빵을 굽거나 음식을 만드기를 열심히 하는지도 모르겠다. 감정이란 미세한 감각이 하나둘 늘어갈 때마다 다른 동력으로 작용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고요한 분위기에서 음식을 만드는 장면은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일본영화에서 종종 봤던 이미지도 떠오른다. 좋아하는 것은 반복해도 지겹지 않다. 같은 것일지라도 볼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한다. 익숙함이 또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그것이 취향과 바람을 만들어내고, 삶에서 오래도록 자리 잡았으면 싶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날씨는 뒤로하기로 했다.
당연함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오래 걸렸다. 아직도 온전히 그러하다고 하기 어렵다. 과거보다 아주 조금 발전한 것이 있다면 “어쩔 수 없지”라는 체념에 묻어가는 일에 거부감이 없다는 것. 동시에 적절한 적극성이 발휘된다.
그동안은 그것을 어찌해 보려고 애썼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말과 시선은 날 서 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기에 그런 날도 아침을 보내고 집안을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 보면 오후가 되었다. 가만히 머물러 있기보다는 움직임이,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숨 쉬게 했다.
대신 내가 이날 얻어갈 수 있는 걸 찾았다. 이런 날이어서 괜찮은 건 무얼까? 따끈한 국물과 후루룩 쉽게 넘어가는 우동으로 정했다. 그것도 튀김우동. 모두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를 조금씩 튀겨서 우동에 올리기로 했다.한 조각 남은 닭가슴살과 냉동새우 몇 개, 풋고추를 튀겼다. 해야 할 일이 많으면 시작 전부터 부담스럽지만, 양을 줄이면 만드는 과정이 간단하다. 그건 마음과 몸을 가볍게 한다.
흐리고 습한 날 튀김 냄새는 특별한 역할을 했다. 공기를 맛있는 냄새로 바꿔놓았다. 평소였으면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보이는 모든 문을 열어서 환기하는 일에 부지런히 움직일 것이다. 아직도 한풀 꺾인 듯하지만, 여전히 더운 날씨에 집안 문은 열려있으니 가만히 있어도 되었다. 애쓰지 않아도 얼마가 지나면 사라질 고소하고 바삭한 분위기를 즐겼다.
우동은 탱글탱글한 면발도 중요하지만 이에 뒤지지 않는 게 국물이다. 냉장고에 있는 쯔유를 꺼내어 냄비에 있는 물에 부었다. 물과 소스를 일대 삼 비율로 하는 게 좋다 하지만 대부분은 맛을 보면서 맞춰 나간다. 양조간장과 맛술까지 동원했다. 이렇게 소스를 적절히 사용하면 음식을 만드는 일이 쉬워진다. 다분히 주관적인 내 입맛을 믿을 뿐이다.
깔끔하고 담백한 맛을 위해 청양고추 하나를 어슷썰기 해서 국물에 넣었다. 매운맛 대신에 어딘지 모르게 나타날 불편한 맛을 미리 차단해 준다. 냉동 면을 끓는 물에 일 분 정도 데친 다음 그릇에 면과 원하는 튀김을 하나씩 올린다. 마지막으로 따끈한 국물을 부어준다.
맛있는 음식 앞에서는 종종 모두가 말을 하지 않는다. 적당한 허기를 달래주는 따뜻한 우동 한 그릇이어서 가능한 소리 없는 아름다운 대화다. 가끔 이런 날이면 말은 청각을 통해서만 전해지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한다. 함께 머무는 동안 오감으로 다가오는 공기의 온도가 오히려 더 깊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저마다 한 주간의 무게를 안고 머물러 있을 것이다. 물어보고 싶지도 않다. 그저 그러할 거라고, 그건 살아가는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우동 한 그릇으로 토요일 점심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