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이 갓 넘은 딸의 임종을 지키는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앉아 있습니다. 그녀의 딸은 이미 뇌사 판정을 받고 수술실로 향했지만, 2시간 동안 심장 박동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장기기증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병실에서 이제 조금씩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딸의 손을 잡고 쓰다듬고 있는 어머니께 제 소개를 하자 앉을자리를 내어 줍니다. 어머니께 애도를 표하고 한 참을 말없이 곁에 있다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지금 뭐가 가장 힘드세요?"
환자의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 쉬더니, "이건 말이 안 돼요!" "이건 말도 안 돼!"라고 반복하며 울먹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우리 모두가 이 세상을 살고 죽음을 지나 천국에서 만날 소망을 갖고 살지만 이건 아니지 않느냐는 뉘앙스였습니다. 또, 그녀는 말했습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내 아이가 나보다 먼저 떠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저는 말 문이 막혔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순간입니다. 침묵이 금입니다. 기도할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그저 그분의 마음에 있는 감정들을 최선을 다해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지만, 다시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기에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주님은 항상 기다려 주시니까요.
중환자실 문을 나서는데 다른 간호사에게서 콜이 왔습니다. 믿는 분들은 아닌데 가족들이 많이 모여 있어 가능하면 들러 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근데 너무 힘든 상황이어서 숨을 좀 돌리기 위해 자주 가는 스탭 라운지에서 찬물을 한잔 마시고 숨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담당 간호사를 만나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근데, 처음 들었던 얘기와 달리 가족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했지만, 환자의 상태를 보니 심각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트레이크(목에 직접 연결한 호흡장치)를 했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해 보였습니다. 임종 상황이라고 하는데도 의식이 상당히 또렷해 보여 조금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기분이 어떤지, 특히 죽음이 두려운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전혀 두렵지 않다는 식으로 머리를 가로저었습니다. 또, 가족들도 아주 열심히 자신을 도와주고 힘이 된다는 것에 머리를 끄덕이며 동의했습니다.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은 있어서 그런지, 기도 가운데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에게 하는 표현이 입에서 나오지 않고 그냥 "죽음"이라는 말대신, "위기, 고통"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툭 튀어나왔습니다. 혀가 꼬이는 이상한 상황이었죠. 그렇게 저렇게 기도를 마치고 나왔는데요...
아뿔싸! , 다시 확인해 보니 제가 콜을 받은 환자 방은 22호실인데 저는 32호실에 들어간 거였습니다. 간호사 모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녀 왈, "주님이 목사님 입을 막으셨네요 ㅎㅎ" 첫 방문의 감정을 잘 가다듬지 못하고 들어간 방문이라서 그랬는지 병원 전문 목사로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했습니다. 병원 목사 초년병시절에는 죽은 환자가 살아 있다고 기도했다가 가족 가운데 한 분이 천국에서는 살아 있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가까스로 황당함을 넘긴 적이 있긴 하지만, 채플린 7년 차에 한두 번 겪는 위기상황도 아닌데 임종 환자가 아닌 회복 중인 환자에게 가서 임종기도를 하려다 혀가 꼬인 이 황당한 상황... 아무튼 다시 임종 환자 병실에 가서 주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믿지 않는 가족들까지 모두 '아멘'으로 화답하는 기도를 인도했습니다만...
사무실에 돌아와 커피를 마시며 컴퓨터에 나타난 날짜를 보았습니다. 4월 16일!!!
십년 전 일이지만, 자식을 바다에서 잃은 부모들은 아직도 바다를 보면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라 바다를 볼 수 없고 특히 하나님을 믿는 분들은 성경에 바다라는 단어만 나와도 고통을 호소한다고 들었습니다. 2016년에 팽목항을 지키던 미수습자 가족들을 만난 일을 기억합니다. 미국서 온 병원 목사라 인사드리고 이야기를 듣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런데, 2022년에는 대한민국 수도 한복판 용산 이태원에서 젊은이들이 또 죽어가는 참사가 있었습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 저는 솔직히 감당이 되질 않습니다. 그냥 엄청 아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이건 말도 안 돼"라고 밖에는 토해내지 못할 것 같은 마음입니다. 지금도 교회 안팎에서 지난 참사들에 대한 값싼 위로와 무자비하고 무심한 말들을 듣습니다. 모두가 '내 자식이 내 손주가 죽었다면' 그래도 그런 무도한 말들을 전하고 내뱉을 수 있을까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참사'로 자식을 잃은 분들께 제 글이 누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 기억하고 기도하며 보다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