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석 May 28. 2024

영원에 잇닿는 손

지옥이 정말 있나요?



“지옥이 정말 있나요?” 젊은 백인 여간호사 에른이 대화 중에 저에게 물어봅니다. 제가 방금 전 만난 환자에게서 느낀 점을 말해줬더니 이렇게 반문하는 겁니다.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돌려 말했습니다. 제법 오래 알던 간호사인데 정작 개인적인 종교성향을 할지 못해서 시간을 벌 요량이었습니다. 이 간호사는 대학병원에 오기 전에 장기 요양원에서 동료 간호사가 체험한 유령이야기를 하며 자신은 직접 경험해보진 못했지만 영의 세계를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옥이라는 것을 들으면 좀 무섭기도 하고, 사랑의 신이 그런 곳을 만들어 놓고 자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내버린다는 이른바 ‘예수천당’, ‘불신지옥’ 류의 교의를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제가 병실 안에서 느낀 ‘느낌 적인 느낌’에 관한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습니다.

 

에른의 호출을 받고 들어 간 병실에는 94살 할머니가 침대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과 두 손녀가 있었는데, 모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었습니다. 저를 소개하고 마지막 축복기도를 드리기 전에 이 할머니의 인생이 궁금해서 여쭤 보았습니다. 아들은 잠시 울음을 그친 뒤, 정말로 건강하고, 신앙심 깊고, 헌신적인 어머니, 자상한 할머니셨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로 치면 호상인데, 아들과 손녀들이 이렇게 슬퍼하는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연세는 많으셨지만 이렇게 뜻밖에 죽음이 찾아올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직 미세한 호흡이 남아 있는 것 같았지만, 담당의사는 가슴과 눈을 체크해 보더니 사망선고를 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할머니의 이마에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방금 숨이 멈춘 할머니의 이마에는 온기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그 가족들에게 축복하는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 머리가 속이 한 가지 생각과 이어지는 뚜렷한 이미지로 가득 차서 잠시 기도를 멈칫했습니다.


제 마음을 사로잡은 생각은 바로 제가 삶과 죽음의 경계면에 내 손이 놓여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이 작은 할머니의 몸이 영원에 잇닿아 있다는 생각말입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방금 숨을 거둔 이 할머니의 몸에서 나온 영은 이제 영원, 시간 밖의 시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영원 속에 안식하시는 하나님이 이 분을 영접하시는 모습이 잠시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평안하게 맞이해 주시는 주님의 모습이 강하게 느껴졌습니다. 마치, 자신이 돌에 맞아 죽을 때 보좌에서 일어나서 자신을 맞이해 주시는 예수님을 모습을 본다고 증언한 스테판 집사님처럼 말입니다 (행 7:55-56). 기도를 마치고 잠시 침묵하며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가족들에게 섣부르게 제 느낌적인 느낌을 말씀드리기 그래서 아무 말씀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이 뜻깊은 임종의 순간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3차원, 4차원 시공간을 떠나는 순간, 사람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무신론자들의 말처럼 영혼이라는 것도 물질인 뇌의 작용이니 결국 물질인 몸이 죽으면 모든 의식과 영혼이라는 것도 함께 끝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사람의 영은 물질에 있지 않고 죽음 이후에도 독립적으로 존재할까요?  물론 저는 후자 쪽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땅에서 자기 욕망대로 악을 행하면서도 천수를 누린 사람들은 반드시 심판받고 영원한 지옥불에서 죽지도 않고 그 고통을 느끼며 지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씀까지 드리지 않아도 우린 충분히 지옥을 맛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땅의 감옥’에서 욕망에 사로잡혀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더욱이, 이 지옥에서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데 제 몸은 계속 이 땅에 사로잡혀 있으니 어쩌면 좋겠습니까? 주님을 몰랐더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인데 … 구원받았다고 하면서 작은 예수로 살지 못하니 하루하루가 지옥입니다. 주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연인가 섭리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