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 도먼의 이유 있는 긍정의 힘

"아들 대신 내가 고통 겪어 감사, 친부모 중 누굴 닮았는지 궁금해"

by 박재석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제 다리와 팔을 잘라내더라도 살아야 할 이유는 바로 제 아들 루크입니다. 그를 엄마 없이 자라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난달 23일, 8개월 만에 다시 만난 사라 도먼 씨 (47, 이후 사라)가 내게 전한 힘은 엄청난 종교적 체험이나 신비적 경험이 아니었다. “내 아들”이라는 말에 그녀의 눈은 어느새 촉촉이 젖어 있었다.


마침 학교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루크(16)는 사춘기라 인터뷰는 사양했지만, 함께 사진을 찍어주었다. 최근 운전면허를 딴 그는 엄마가 재활치료를 받으러 갈 때 직접 운전해 주기도 한다고 사라가 귀띔해 주었다.


“저는 아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늘 말합니다. ‘나는 너 때문에 돌아왔다’라고요. 제가 깨어났을 때도 당신(채플린)이 제 아들을 격려해 주셨던 걸 기억합니다.”


사라 씨가 최근에 이사한 시카고 북쪽에 위치한 작은 도시, 먼델라인 집에서 레이, 사라, 루크와 함께


나는 올해 3월, 병원 채플린으로서 사라 가족을 처음 만났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세균성 감염으로 응급실에 들어왔고, 곧 병세가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때 병실 앞에서 풀이 죽어 있던 남편 레이를 만났다. 그의 모습에서 심각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감했다. 잠시 곁을 서성이다가 말을 걸었고, 그는 내가 혹시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그는 서툰 한국어 발음으로 인사를 건네며 주한미군으로 근무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 인연으로 우리는 더 가까워졌고, 그의 아내가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sepsis)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담당 의사는 앞으로 12시간이 고비라고 전했다. 그리고 사지를 모두 절단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25년간 항공사 승무원으로 일하며 하늘을 누볐던 사라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평생 두 팔과 두 다리로 승객을 모시고, 주말에는 봉사활동과 주짓수로 체력을 단련하던 그녀에게 사지절단이라니...


“그 순간 제 머릿속에 절단이라는 건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이나 당뇨병 환자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그런 일이 닥쳤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지난 3월 사지절단 수술 뒤 회복 중인 사라의 모습, Gofundme.com 에서 내려받음.



사라를 다시 만나기 전 나는 이 이야기가 단순히 ‘포기하지 않으면 극복할 수 있다’는 식의 긍정의 힘으로 포장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대화를 이어갈수록 그녀의 긍정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버티기’나 '낙관적 태도'가 아니라, 그녀의 삶 속에서 뿌리내린 성향과 출생의 비밀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저는 늘 긍정적인 사람이었고, 어린 시절 고아원에 있을 때도 다른 아이들을 먹이고, 옷 입히고, 돌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돌보고 견디는 성향은 제게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태어난 날과 장소 등 9살이 될 때까지 자신의 출생의 비밀조차 알지 못했던 한 소녀는 1978년 3월 즈음에 태어나 한 보육원에 맡겨졌다고 한다.


1년 정도 지났을 무렵인 1979년 5월, 사라 (한국이름: 정은혜)는 한국인 기독교 가정에 입양되었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파양이라는 또 다른 시련을 겪게 된다.


당시 인터뷰를 담당했던 입양기관 관리자의 평가를 보면, 한국인 입양가정의 고지식한 훈육방식이 자유로운 성격을 가졌던 사라의 성품과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한국인 양부모 가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사라는 1987년 입양심사를 거쳐 다시 미국가정으로 입양되었다.


“그때까지도 저를 파양하고 미국으로 보내려는 엄마를 진짜 엄마로 믿었어요. 그래도 저는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 했다고 믿었어요. 아이를 낳아 길러보니 그런 마음을 이해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처음에는 화가 많이 났지만요.”


단순히 쿨한 미국인의 말처럼 들리지 않았다. 사라의 눈빛에는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라 노먼씨가 한국인 기독교 가정에서 미국으로 다시 입양 될 때 작성한 입양서류 첫페이지, 안타깝게도 사라씨의 실제 생일과 친부모의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사라 노먼 제공)


그녀는 또, 친모에 대해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구 어딘가에 자신과 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꼭 만나보고 싶다며 호기심을 나타냈다.


“저는 사랑이 넘치는 미국 가족과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랐기 때문에 친부모를 만나고 싶다는 갈망은 없었습니다. 다만, 그분들이 어떻게 생겼을지, 내가 엄마를 닮았을지, 아빠를 닮았을지 궁금할 뿐이에요.”


어린 시절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을 낳고 힘들어했을 어린 엄마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제가 가족을 떠올릴 때는 늘 엄마였지 아빠는 아니었어요. 아빠는 제 삶에 없었고, 엄마는 혼자 저를 키우다가 결국 포기해야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싱글맘은 손가락질을 받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녀는 그 어린 엄마의 희생에 감사했다. “물론 어린 시절에는 분노도 있었어요. 일기를 쓰며 ‘왜 나를 버렸냐,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야 했냐’고 울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부모가 된 입장에서, 그때는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해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가? 성경은 사람이 빵으로만 살 수 없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고 했다.


사라는 특별한 말씀을 인용하지 않았다. 다만, "어린 아들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고 내가 겪어서 감사하다"며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하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시험을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강인한 군인정신을 가진 남편 레이를 허락해 주셨고, 삶의 이유가 된 아들을 주셨으며, 무엇보다 어려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인내를 자신의 인격에 심어주신 것 같다고 했다.


특히, 회복과 재활 과정에서 보여준 가족과 친구, 회사동료들의 사랑의 도움은 사라와 가족들이 견딜 수 있는 이유였다. 무엇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도움(GoFundMe에서 아직 모금이 진행 중, https://gofund.me/b5ce41faf)이 오늘도 그녀를 강하게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매주 세 차례 재활훈련을 받으며 보조장비를 하고 걷는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들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사라를 둘러싼 커뮤니티의 힘 때문이다.



나는 최근에 호스피스 케어 병원로 옮겨 매일매일 죽음 앞에서 조금씩 무기력해지는 인간의 무력감을 맛보고 있다. 하지만 사라의 이야기는 이 가운데 맛보는 단비 같은 인간 승리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우리가 있기에, 그것이 바로 사라 노먼 씨의 ‘이유 있는 긍정의 힘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