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개월 넘게 함께 했던 40 대 여성 환자 제이미(가명)가 오늘 소천했습니다. 지난주에 만났을 때 많이 수척해지고 힘이 없어 보여서 일주일 후에 다시 볼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늘 아침 그녀가 있던 요양병원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그녀의 코끝에 호흡이 다한 뒤였습니다.
침대에 누운 그녀는 야윈 몸에 얼굴도 무척 수척했지만 정말로 평안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눈이 아직 완전히 감겨 있지 않았습니다. 조심스럽게 의료용 장갑을 끼고 그녀의 눈을 꼭 감긴 다음 잠시 기다리며 마지막 축복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다행히 사후강직이 완전히 진행되지 않아서 인지 눈이 제대로 감겨 마치 깊은 잠에 빠진 사람 같았습니다.
요양원 담당 간호사에게 들으니 제가 오기 1시간 전에 숨을 거뒀고, 지금 가까이에 있는 사촌이 오고 있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너무 이른 나이에 죽었다며 애도를 나타냈습니다.
제가 이 환자를 처음 만났을 때는 정말 곧 돌아가실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호스피스 병동을 나와 이 요양원으로 옮긴 뒤, 정신을 차리게 됐고, 저와는 짧은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뇌졸중(stroke)으로 수술을 하고 회복하지 못해 결국 40대 초반에 생명을 마감해야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온 뒤에도 줄곧 혼자서 TV를 보며 지내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습니다. 주말에 찾아오는 가족들, 그녀의 사촌들은 그녀를 위로하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하루는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서 TV를 보고 있는 그녀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히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우울해 보이냐고 물었더니, 죽음이 두렵지는 않은데 "외롭다"라고 말했습니다.
많은 경우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말하면 믿음이 없어 보일까 봐 목사 앞에서 거짓말을 할 때도 많습니다. 제이미는 거짓말 같아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려움과 외로움을 잘 분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녀의 뇌가 많이 아팠기 때문입니다. 입으로는 두렵지 않다고 하는데 그녀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녀에게 '애벌레 제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제 가방에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아끼는 비장의 무기가 바로 이 '애벌레 제이'입니다. 호스피스 일을 하기 전에 어린이 병원에서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사용했던 특수 인형입니다.
필자가 가지고 다니는 위 인형은 아마존에서 구입한 인형으로 큐블러-로스 박사가 쓴 인형을 본 따 만든 것입니다.
사실 이 인형은 지금 죽음학, 혹은 사생학의 효시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큐불러-로스 박사가 1960년대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에게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애벌레 모양을 하고 있는 인형의 배 부분에 지퍼가 있어서 이를 열어 뒤집으면 나비 인형으로 바뀌는 안과 밖이 다른 인형입니다.
죽음은 마치 애벌레가 고치 안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마침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과정과 같다는 취지의 이야깁니다. 즉, 죽는다는 것은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더 큰 세상, 완전한 자유를 향한 날아감이라는 뜻이죠.
또, 다른 영적인 뜻으로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뜻밖의 고난이나 고통의 이유를 당장은 알 수 없지만, 그 고난과 고통을 통과하면서 우리 자신이 변하여 어제의 나보다 더 성숙해지는 일을 은유적으로 나타냅니다. 마치 고치 속에서 애벌레가 다른 모양으로 탈바꿈하기 위해서는 죽음과 같은 어둠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제이미에게 이 애벌레 이야기를 나름 재미있게 들려주었습니다. 마침내 애벌레 인형이 나비로 바뀔 때 그녀는 활짝 웃었습니다. 지금도 그녀의 활짝 웃는 모습이 제 마음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비처럼 자유롭게 주님 품으로 날아갈 때 꼭 내가 해 준 이야기를 기억해 달라고 말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2 주 뒤 오늘 그녀는 떠났습니다.
'그녀가 반쯤 눈을 뜨고 나를 기다린 것은 아닐까? '
그녀의 눈을 완전히 감겨주고 축복하며 돌아 서는 제 마음속에 슬프게 번지는 눈물이 그녀의 환한 미소 위에 겹쳐집니다.
다시 만나는 날까지 자유롭게 날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