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동말이 Feb 18. 2020

호의와 호구의 경계선

소심이의 우정 이야기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영화 '부당거래'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소심한 사람들은 이 대사를 떠올리며 속을 끓인 기억이 많을 것이다. 조심성이 많은 소심이들은 거절에도 소심하다. 내 거절에 상대가 실망할까 봐이다.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될까 걱정도 된다. 하지만 한 번 부탁을 들어주고 나면 주변의 어려움을 혼자 떠안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불만은 없다. 눈치가 보여서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이지만 들어줄 만한 부탁이었고, 들어주고 싶은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상대에게 좋은 평가도 들을 수 있고 호의로 더 가까워질 수도 있는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갈수록 부탁의 강도가 세진다. 쉬운 부탁이지만 사정이 허락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서 미안한 감정으로 거절을 하게 된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상대가 짜증을 낸다.

“이 정도도 못해줘?”

“잠깐이면 되는데 왜 그래?”

같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분명 자신도 조심스레 물어온 일인데 거절당했다고 화를 내니 어이가 없다. ‘이 사람에게 나는 뭔가?’하는 질문이 불쑥 떠오른다. 이때까지 들어준 부탁들도 떠오른다. 차를 태워주기도, 돈을 빌려주기도, 밥을 사주기도 했다. 과제를 대신해주기도 했고, 컴퓨터를 고쳐주고, 화장품도 골라줬었다. 내 시간과 돈 어느 하나 아깝다 생각하지 않고 도와줬는데 이번 한 번의 거절에 그렇게 짜증을 내다니 황당하다. 날 호구로 봐왔던가보다. 우리 관계도 내가 호구기에 유지되었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릴 때 친척집에서 치킨을 먹은 적이 있다. 사촌 형 두 명과 누나 그리고 나까지 4명이서 닭 한 마리를 먹으려 했다. 그런데 너도 나도 닭다리를 먹으려고 싸워댔다. 그래서 나는 다리를 좋아하지 않으니 셋이서 나눠 먹으라고 했다. 입이 예민하지 않은 탓에 다리살이든 가슴살이든 맛 차이도 몰랐거니와 다들 그렇게 좋다는데 한 번 안 먹는다고 큰일이 날 것 같지도 않았다. 결국 다리는 하나씩 날개는 두 개를 먹는 걸로 셋이서 합의를 봤다. 다들 만족하며 맛있게들 먹었다. 그러고 얼마 있다가 집에서 치킨을 먹게 되었다. 누나가 나는 다리살을 좋아하지 않으니 가슴살만 골라줬다. 내가 먼저 먹겠다고 하지 않았는데 가슴살만 먹게 되었다. 맛 차이가 나는지도 몰랐지만 이상하게 화가 났다. 먹다 남은 것을 받아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나 했다. 그렇게 치킨이 맛없었던 날도 없는 것 같다.

     

 한 번의 호의였을 뿐인데 오랫동안 다리살을 못 먹게 만들 줄은 몰랐다. 차라리 “내가 양보할게.”라고 한 마디 했다면 다음에는 나에게 닭다리가 돌아왔을 것이다. 다리를 양보하는 모습에 감동도 줬을 것이다. 그런데 에둘러 표현하니 상대도 알 길이 없다. 정말 내가 다리살을 싫어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서 오해가 시작되고 오해가 커지면 상대를 의심하다. ‘나를 호구로 보나?’ ‘호의가 계속되니 권린 줄 아네?’ ‘나를 호구로 보고 만나나?’ 같은 의식의 흐름이 진행된다. 상대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정을 떼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하지만 그런 결과를 만들어낸 것은 나다. 한 번의 거절이 어려워서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었거나, 부탁을 들어주면서도 한사코 별 거 아닌 척했다.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위해서였다. 상대의 부담을 지워주기 위해서였다. 그게 소심이들의 잘못이다.     


 이제는 부탁을 들어줄 때는 꼭 이유를 만들자. 오늘은 비가 오니까, 오늘은 추우니까 특별히 태워준다고 꼭 얘기하자. 그러면 화창한 날 뜬금없이 귀찮다는 이유로 태워달라는 친구의 거절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꼭 내가 어려운 일을 해주었음을 표현하자. 20분 걸리는 거리를 10분밖에 안 걸린다고 괜스레 마음 써 얘기할 필요 없다. 꼭 20분 거리는 20분 거리라고 얘기하자. 그래야 상대도 나의 힘듦을 한다. 대게 에둘러 표현하면 평화로운 분위기가 유지된다. 상대의 기분도 평온해진다. 하지만 꼭 나하나만큼은 불행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희생 없는 호의는 없다. 하지만 그 희생을 숨기는 것만큼 서로에게 오해가 쌓일 것이다. 쌓인 오해는 관계를 어긋나게 할 뿐이다.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아는 사람보다 침묵으로 자신을 호구로 만드는 소심이가 더 나쁘다.

작가의 이전글 잔소리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