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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Mar 17. 2020

기회를 놓쳐버려 다행이다

소심해서 다행인 이야기

 걸어온 길을 굽이굽이 세심히 돌아보다 보면 지나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들을 뒤늦게서야 발견할 때가 있다. 가까이서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예쁜 꽃송이를 멀리서 지켜만 보자니 아쉬움이 밀려온다. 그렇다고 되돌아가기에는 무거운 발과 많이 흐른 시간이 가던 길을 재촉한다. 그럼에도 끝내 남는 아쉬움은 소심함에 돌아보지 못했던 굽이와 소심함에 멈춰 서지 못했던 굽이들 때문이다. 잘할 수 있다고 나서지 못해서 놓쳤던 기회들은 두고두고 후회되기 마련이다. 그리 좋은 실력이 아니라도 자신감 하나로 부딪혀보는 사람이 많은데 반해 소심이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해 놓친 기회가 많다.


 그렇게 놓친 기회들이 쌓이다 보면 어느샌가 행복과도 연관된다. 소심함에 놓친 기회들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였던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때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나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 준비가 부족해서였다면 수긍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지 앞에 나서지 못해서 놓쳐버린 기회에는 땅을 치며 후회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만 앞으로 나갔어도, 손 한 번만 번쩍 들었어도 잡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준비도 돼있었고, 실력도, 재능도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소심한 성격뿐이었는데 잃은 것은 너무 크게만 느껴진다. 그럴수록 삶은 우울해진다.    

 

 매년 열리는 소년체전은 미래의 체육 선수들을 길러내는 장이다. 내가 다녔던 학교만 그랬던 건지,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에서는 저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종목을 말해주면 참가하고 싶은 학생이 손을 들어 지원하는 방법으로 최초 참가자를 정했다. 최초 지원자들은 몇 차례의 경쟁을 통해 선수로 선발된다. 그때쯤의 나는 운동에 자신이 있었고 특히 멀리뛰기를 잘한다고 생각했었다. 놀이터에서 동네 형들과 친구들이 모여서 할 때는 꽤나 잘하는 편이었다. 두 살 많은 형들과도 비슷하게 뛰었던 것 같다. 하지만 타고난 소심함에 어린 나이의 수줍음까지 겸비했던 나는 손 한 번을 들지 못해 지원조차 하지 못했다. 해보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잘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는 선생님의 말이 아주 무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멀리뛰기에 참가하지 못한 나는 다른 학생들이 운동장에 모여 여러 차례 실력을 겨루고, 그중에 선발된 친구들은 연습을 하고, 다른 학교와 교류를 하고, 시 대회를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러움만 느낄 수밖에 없다. 나도 저 중에 하나가 되어 훗날 유명한 선수가 되었을 텐데 소심함에 발목이 잡혀버렸다. 그때는 소심함이 뭔지도 몰랐지만 손을 들지 못했던 것 자체가 분하고 창피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멀리뛰기 선수가 되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내가 멀리뛰기 선수가 될 만큼의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동네에서 조금 잘하는 수준에 불가했던 것이다. 그것을 아는 것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체육시간, 체력검증 등 학교생활 중에서 멀리뛰기를 해볼 기회는 여러 번 있었고 늘 1등은 내가 아니었다. 그래서 세계적인 멀리뛰기 선수가 될 수 있던 기회를 소심함에 놓쳐버린 안타까움이 사라지는 데는 채 몇 주도 걸리지 않았다.   

 

 소심하지 않아서 당당히 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워낙 덜 뛰어난 실력이었기에 한두 차례의 경쟁에서 떨어져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가 실패를 맛보는 뼈아픈 경험은 하지 않았을 테다. 하지만 자연스레 내 실력을 파악하는 과정보다는 더 큰 창피함을 맛보았을 것 같다. 손을 들지 못했던 창피함보다도 큰 창피였을 것이 분명하다. 멀리뛰기뿐만 아니라 사랑, 친구 관계 등 많은 것들에서 소심함 때문에 기회를 놓쳤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먼저 나서지 못해서 가까워질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을 빼앗겼다 생각하고 친구와도 가까워지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은 편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된다. 결국 그 사람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거나 그때의 내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임을 알게 된다. 


 소년체전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고 얼마 뒤 선생님은 나에게 상장 하나를 건네주셨다. 교내 독후감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게 된 것이었다. 참가상에 가까운 상이었지만 처음으로 글을 써서 받았던 상이기에 아직도 뜻깊게 느껴진다. 그때부터 글을 쓴다는 것에 재미를 가졌으니 말이다. 그런데 내가 멀리뛰기에 지원했더라면 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소년 체전에 지원한 학생들은 몇 차례의 선발 과정을 거쳐야 했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독후감을 내지 않아도 되는 혜택을 주었었다. 게으른 나는 절대 두 가지를 같이 하지 않았을게 뻔하다. 멀리뛰기에 지원할 기회를 놓쳤기에 잡을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이다.


 물론 시도해보지 못하고, 도전해보지 못하고, 다가서 보지 못하고 기회를 잃는다는 것은 손해이다. 대부분은 막상 해보았다 실패해도 잃는 것도 없다. 실패의 창피함도 크지 않다. 작은 리스크임에도 그중에 몇 번은 성공의 기회일 수 있고, 평생의 짝일 수도 있다. 그래서 소심함에 시작해보지 못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하지만 불행 중에도 작은 위로가 되는 것은 소수의 성공을 제외한 다수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고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도 다른 기회들이 언젠가 또 찾아온다. 멀리뛰기 기회를 잃고 잡았던 독후감 경진대회라는 기회가 아주 좋은 기회였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더 좋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글쓰기'때문에 다른 기회를 놓지버린 건지도 모른다. 아직 '글쓰기'를 통해서 빚어낸 좋은 결과물도 만족감도 없기에 이것조차 좋은 기회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더욱 놓친 기회에 대한 미련을 깔끔히 지워버릴 수 있다. 그렇게 몇 번의 기회를 걸러 내다 보면 놓치지 말아야 할 기회를 보는 눈도 성장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기다리던 좋은 기회를 만났을 때 소심함보다 확신이 앞설 수 있다. 그때를 기다리며 천천히 나를 성장시켜가면 된다. 놓쳤던 몇 번의 기회를 통해 준비가 필요함도 알게 되었다. 소심함 때문에 놓친 기회들로 나와 더 잘 맞는 기회를 더 많이 준비된 내가 맞이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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