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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Mar 18. 2020

소심해서 좋은 이유

소심이의 관계 이야기

이따금 사람들은 내게 “뭘 그런 것까지 신경 써?”라며 핀잔을 준다. 나도 심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의 행동과 말에 작은 차이만 느껴져도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건지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할 때 얘기다. 화가 나있거나 서운한 게 있는데 내가 모르는 건 아닐까 하며 이리저리 사람들의 눈치를 살핀다. 단지 그 날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다른 안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는 것인데, 꼭 내 탓일 것만 같은 착각을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소심한 게 아니라 오히려 자의식 과잉 아니냐며 남을 의식하는 것을 줄여보라고 한다. 세상은 나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습성이 고쳐지지 않을 뿐이다.


 나도 물론 남들의 이목 따위는 신경 꺼버리고 살고 싶다. 사람들을 과하게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은 무척 피곤한 일이다. 매번 나의 생각보다는 남들의 반응을 먼저 고려하여 행동하고 말해야 한다. 어제는 웃으며 인사해주던 동료가 오늘은 얼버무리듯 대충 고개만 끄덕하고 가는 사소한 문제에 매번 큰 사달이 난 듯 신경 써야 하니 피곤할 수밖에 없다. 상대는 단지 피곤할 뿐이었는데 무슨 일이 있느냐며 과한 관심을 표하면 가뜩이나 피곤한 상대의 심기를 건드릴 때도 있다. 그래서 소심한 성격은 피곤하다.


 그럼에도 소심한 성격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가 있다. 과하지 않게 적당한 선만 유지한다면 섬세한 사람, 작은 것에서 큰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대이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지 전전긍긍하며 건네는 커피 한 잔이 기분이 우울하던 상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신경 써주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위안이 될 수도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고맙다는 상대의 인사에 나도 기분이 덩달아 좋아진다. 이번 일을 통해 다음에는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날 평소와 같은 동료에게도 커피 한 잔을 건네보는 요령이 생길 수 있다. 상대는 고맙다며 웃으며 인사할 테고 나도 같이 웃다 보면 안 좋은 기분을 고칠 수 있다. 작은 걱정을 통해 상대와 감정을 나누게 되고 나의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사소한 것들에서부터 관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다 보니 고민이 다양해지고 깊이도 폭도 커지게 된다.  사람들은 같은 것에서 다른 느낌을 받고 다르게 표현하고, 같은 느낌과 표현에도 다른 뜻을 숨겨버린다. 그래서 주의 깊게 보지 못하고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느새 엇비슷하게 엮어놓은 하나의 가치관으로 모든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오해가 쌓이고 오해는 아픔이 되고 상처로 남는다. 그럴수록 인간관계는 어렵게 느껴지고 새로운 만남을 꺼리게 된다. 그래서 사소함에 작은 행동, 짧은 말 한마디에도 감정을 느끼려 하고 생각을 읽으려 하는 노력들이 중요하다. 이러한 노력들은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해 주고 다르게 판단하게 해 준다. 그런 노력이 소심한 나는 자동으로 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소심함이 싫지 않다.


 사람들이 ‘그런 것까지’라고 생각해버리는 사소한 것에서 소심한 사람들은 큰 것을 얻을 수 있다. 많은 경험을 할수록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듯이, 사소한 것들이 크고 중요한 것들보다 그 수가 많고 다양하기에 더 많은 경험과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이따금 지혜를 얻는다. 그러니 소심해서 남들의 작은 반응, 시선에 신경 쓰는 것이 의미 없는 피곤한 일만은 아닌 것이다. 또,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다양한 것들을 느끼다 보면 세상의 강박에서 벗어난 눈으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느끼고 생각하는 법들에 얼마나 다양한 것이 있는지, 같은 것에 얼마나 다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는 건 앞으로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각을 높여줄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쓰고 있는 소심한 이야기들도 결국 작은 대화와 경험들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그런 작은 것들에서 나는 인생의 힘을 얻고 지혜를 얻고 위로받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가끔은 소심한 성격이 고맙다. 그러니 조금 답답하고 미련해 보여도 괜찮다. 소심함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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