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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말이 Mar 23. 2020

못난 나를 감춰주는 것

소심해서 다행인 이야기

“우리는 거울을 통해 모양을 보고 술을 통해 마음을 본다.” 


“등은 형체의 거울이고, 술은 마음의 거울이다.”


“술이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술이 밝혀준다.”


“술 한 잔이면 왕이 되고 술 두 잔이면 정승이 되고 술 세잔이면 개가 된다.”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주칠 때면 뜨끔하는 문장들이다. 나도 그렇다. 특히 나는 폭음을 많이 한다. 한 번 마시면 끝을 봐야 한다. 그러니 저 문장을 볼 때마다 온 몸이 따끔한다. 폭음의 뒤에는 늘 후회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나는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섭섭한 것을 털어내거나, 화를 주체하지 못해서 어색하고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적은 없...진 않지만 많지도 않다. 갓 술을 배울 무렵 몇 번에 그쳤던 것 같다. 대부분의 나는 좋은 기분을 주체 못 하는 쪽이다. 못하던 농담도 하고, 칭찬 봇이 될 때도 있다. 말도 길어지고 하지 않던 오지랖도 부려본다. 평소에 하지 않던 말과 행동들에도 술에 취한 나는 멈춤이 없다. 흥은 흥을 부르고 술은 숙취를 부른다.     


 다음날 아픈 머리를 부여잡으며 일어나는 순간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이불 밖으로조차 나가기 싫을 정도의 창피함이 몰려온다. 분명 분위기는 좋았던 것 같다. 그런데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내가 왜 그런 짓을 했지’하는 생각들이 밀려온다. 숙취를 핑계 삼아 창피함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를 보내버린다. 정말 나는 왜 그러는 건지 후회스럽다. 그렇게 하루를 버티다 숙취와 함께 창피함도 수그러들고 나면 휴대폰도 확인해보고, 샤워를 하며 정신과 마음을 추슬러 본다. 그럼에도 도무지 왜 그랬는지 용납하기 힘든 말과 행동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생각이 난다.     


“우리는 거울을 통해 모양을 보고 술을 통해 마음을 본다.” 


“등은 형체의 거울이고, 술은 마음의 거울이다.”


“술이 사람을 못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술이 밝혀준다.”


“술 한 잔이면 왕이 되고 술 두 잔이면 정승이 되고 술 세잔이면 개가 된다.”  

   

 며칠이 지나면 기억이 안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술에 취해서 했다는 것만으로도 부끄럽게 느껴지는 말과 행동들이 있다. 술에 취해서 했기에 더 적정선을 넘은 것만 같이 생각되는 것들도 있다. 술을 통해 드러내 보니 내 마음과 인격이 고작 그 정도였나 싶은 생각이 드는 말과 행동들도 머리속을 떠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한들 그것 모두가 나의 모습이다. 진짜 나의 모습인지,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말했던 것처럼 그러하면 안된다는 도적적인 자아의 힘이 너무 쎄서 꿈과 비슷하게 술에 취한 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능의 강한 반발의 작용으로써 발현된 것인지는 알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 나에게서 비롯된 것들이다. 술에 취했든, 정신이 없었든, 준비가 되지 않았든, 처음겪는 일이든, 어떤 일과 상황에서 일어나는 모든 나의 실수와 모든 나의 행동은 나를 표현한다. 그래서 더 적절한 행동과 말을 하지 못한 내가 실망스럽다. 그럼에도 또 술을 마시는 내가 싫다. 나 자신이 실망스러워 거울조차 보기가 싫어진다. 


 그러다 보면 소심해서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소심한 성격에 낮은 수준의 나란 인격체를 잘 숨기고 포장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조금만 덜 소심했더라면 적철치 못한 말과 행동들쯤 아무렇지 않게 해 버리고 매번 뒤늦게 후회하면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가끔의 폭음 후에 하던 가끔의 후회와 반성들을 매일 같이하며 살아간다면 견디기 힘든 일상이었을 테다. 다행히 소심한 성격 탓에 늘 일어나는 일이 되지 않았다는 것에 고마움까지 느껴진다. 정말 심한 후회가 밀려올 때면 이런 생각도 든다. 소심해서 인간관계가 어려운 줄만 알았는데 다행히도 소심해서 가까스로 인간의 탈을 쓰고 살고 있었구나. 나란 놈 소심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 안도감 속에서도 불안한 것은 언젠가는 술을 먹게 되고 그러면 다시금 발가벗은 내가 들킬 것이라는 사실이다. 술이 아니더라도 관계가 가까워지고 익숙해지다 보면 진짜 자신을 서서히 드러내기 마련이다.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상대를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결국 내가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높은 인격을 가지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아직 길어야 10년, 20년간 가면을 써오며 살아가면서도 피곤하고 힘든 인생이다. 얼마나 남았을지 모를 평생을 가면을 쓰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불행에 가까운 일이다.     


 하지만 일평생 공부한 공자님조차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라 하셨다. 일흔이 되어서야 마음가는대로 따라도 법도를 넘어서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아직 일흔이 되기에 멀었다. 공자님만큼 많은 공부를 할 자신도 없다. 그러니 언제 성인(聖人)이 될 수 있나 싶다. 과연 될수나 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행인것은 소심함이 부족함을 조금 덮어주고, 노력을 조금 유보시켜준다는 것이다. 아무런 의식없이도 소심한 마음에 내 모습을 보이는데 망설여진다. 그러면 내 부족함도 자연스레 숨겨진다. 그러니 성장의 노력도 조금 미뤄도 괜찮을수 있다. 그래서 소심함이 더 고맙다. 어쩌면 소심함이 인생의 가장 든든한 안정장치가 아닌가 싶다. 무한정 노력을 미루며 성장하지 않을순 없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세상으로 나가야하기에 소심함에 조금 기대어볼 뿐이다. 소심함이 그 댓가로 성장과 노력을 요구할 것이다. 소심함은 가면을 씌워주고, 나를 돌아보게 하고 그래서 노력하게 한다. 소심해서 참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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