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3년의 4분의 1이 지나갔고 여름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간호사가 평생직장인지,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 청소년기에 사춘기를 겪지 않아서 이제 헤매나 보다.
머리도 말리지 않고 출근하는 일이 다반사고, 퇴근해서 겨우 한 끼를 먹는 날이 두 끼를 먹는 날보다 많다. 오프에는 하루종일 잠만 잔다. 유니폼을 입지 않은 나는 무기력 그 자체고 실제로 주변사람들은 "물먹은 미역 같다."라고 평한다.
나 역시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직한 곳의 환자분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간호사와 병원을 평가하는 편이다.
평가 내용이 가끔 게시판에 올라오는데 환자들이 보고 있는 내 모습을 자주 글로 보게 된다.
긍정적인 내용도 있고, 부정적인 내용도 있어 근무시간의 나를 돌아보게 된다.
다만 공통적인 내용은 딱 하나, "적극적이고 활기차다."
나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이런 피드백을 받았음을 믿지 못한다.
어쩌면 병원에서의 나는 활기찬 사람인 걸까? 유니폼을 입으면 힘이 솟나아는 걸까?
정답은 아직 찾지 못했다.
모두가 쉬는 그 시간에 일하는 것이, 북적북적 이리저리 치이는 삶보단 여기가 천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나이트 중에 바이탈을 하러 가다가 모두가 잠든 순간 고요한 찰나를 기억한다.
환자들의 뒤척이는 소리와 숨소리를 들으며
깜깜한 실내와 창밖의 가로등과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데이 출근길의 조명들을 기억한다.
화려한 조명들이 버스 창문을 뚫고 나에게 닿을 때
차가운 새벽공기와 안개가 피부에 닿는 느낌이 좋았다.
신규간호사 일 적에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을, 경력이 쌓여서는 체스말처럼 병원의 사정에 따라 여기저기로 옮겨 다녔다. 어떤 직장이 그렇지 않겠나 싶어 미적지근한 태도로 눌러앉은 게 이렇게 되어버렸다.
어쩌면 간호사라는 직업을 조금 사랑하고 있나 보다.
안녕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