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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프셉 May 19. 2023

5월 5일 (#3 D22) : 환자파악

마음속의 마인드맵

병원에 처음 입사한 간호사들을 트레이닝하다 보면 백이면 백

"어디서부터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뭘 공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라는 질문을 한다. 이전에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요즘은 요령이 조금 생겼다.


일단 지금 배정받은 환자들부터 완전히 파악하기부터 해 보자.

'환자 파악'은 간호사들마다 하는 방법이 다르니 내가 하는 방법은 참고만 하자.

내가 하는 방법은 쉽게 말하면 마음속에 마인드 맵을 그린다고 생각하면서 인계를 받는다.


1. 진단명을 본다.

진단은 생각보다 많은 힌트를 준다. 각 진단에 따라 치료 방법의 매뉴얼들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다음엔 그렇게 하겠지?'하고 추측하면서 다음을 넘어간다.

예시)
#Pancreas Ca. #DM
췌장암의 경우 췌장이 하는 역할들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혈당조절에도 문제가 자주 생기는 편이다. 통증이 심해 식이가 원활하지 못함에도 혈당조절이 잘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혈당 target 자체를 다른 환자들보다 높게 잡고 식이를 격려한다.


2. 입원 목적 또는 주호소를 확인한다.

같은 질환으로 왔어도 목적이 다르면 처방의 방향이 달라진다. 의사와 환자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입원의 주호소를 확인해야 한다. 외래차트나 응급실 기록지를 보면 나온다. 또한 입원 시 입원초기기록에도 기록하게 되어있다.

예시) 위의 췌장암환자는 다음과 같은 입원 목적을 가질 수 있다.
- CTx
- pain control
- PTBD insertion or removal or reposition


3. 오늘 내가 간호할 시간 동안은 어떤 단계에 와있는지 확인한다.

방금 입원해서 치료를 계획하고 있는 단계인지, 실행하고 있는지, 실행 후 특이 소견이 없는지 관찰하는 단계인지, 이제 퇴원을 고려하는지 알아본다.

예시)
-항암화학요법을 하러 온 췌장암 환자는 이미 이전에 다양한 검사를 통해 regimen이 결정된 상태일 확률이 높고 항암동의서에 '몇 차를, 몇 mg의 용량으로, 이 약과 이 약을 투여하겠다.'는 내용으로 작성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임상에서 GP나 FOLFOFINOX를 많이 보게 되며 순서대로 투약, 항암화학요법 종료 후 심한 구토, 오심, 설사 등의 증상이 없다면 퇴원을 고려한다.
-통증조절을 하러 온 췌장암 환자는 통증 호소마다 의사와 상의하에 속효성 진통제(short-term pain killer)를 투여하고, 전일의 속효성 진통제 투약량을 확인하여 지속성 진통제 (long-term pain killer)를 증량한다.


4. 내가 반드시 먼저 해야 할 것을 확인한다.

 주치의들은 당직이 아닌 이상 오후 6시에 퇴근한다. 고로 오후 6시 이전에 확인이 필요한 내용, 수행해야 할 내용을 확인한다.

예시)
- 혈액검사 결과 확인 후 항암화학요법이 결정될 환자의 혈액검사 수행
- 보호자 면담 후 전원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보호자와 주치의를 연결
- 퇴원을 위해 서류가 많이 필요한 환자 (특히 슬라이드 대출은 3일 이상 소요된다.)
- 처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이나 확인을 못한 내용이 있는 경우
- 활력징후가 불안정하고 임종이 예고된 환자의 보호자 면회와 노티의 범위 확인

 

이렇게 하면 환자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환자를 직접 눈으로 보면서 마인드맵을 완성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우리는 책상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다.

 

 또한 환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방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수행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은 수행은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항생제나 항암화학요법, 심전도, 혈액검사 등 어렵고 자세한 부분을 계속 따로 공부해야 한다. 반복해서 얘기하지만, 처방이 '그냥' 되는 경우는 없다. 모든 처방은 이유가 있고 타당한 근거에 따라 변경된다. 처음에 공부할 때는 막막하지만, 계속 보다 보면 '이래서 저렇게 하는구나.' 하는 안목이 생긴다. 공부할 때는 판매하는 책 중에 가장 얇은 책으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보다는 필요하거나 겪어본 일과 연관 있는 부분부터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게 기억에 훨씬 많이 남는다.


이렇게 얘기해도 사실 신규선생님들은 일어나서 출근하는 것부터 벅차 보인다. 꾸역꾸역 출근해서 하루종일 정신없이 수행-수행-수행만 하다가 퇴근하곤 한다. 집에 가서 공부라니, 잠자기 바빠 보인다. 하지만 현재의 임상은 그렇게 하도록 계속해서 재촉한다. '너의 위에도 그랬고, 그 위에도 그랬는데 너는 왜 못하냐.'는 식으로.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바뀌고 있는데 눈치도 없이 이곳에서의 시간만 천천히 흐르나 보다.

 간호법이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곳에서의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있나 보다. 눈치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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