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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랑하늘 Nov 08. 2023

내가 좋아하는 집안일에 대한 이야기

+ '정리'에 대해 쓰며 떠오른 '힙한 성수동'

나는 청소와 정리와 빨래를 좋아하고, 굳이 따지자면 '빨래-정리-청소' 순으로 좋다. 빨래와 정리는 행위 그 자체와 결과 모두가 좋고, 청소는 행위 후의 결과 때문에 좋아한다.



빨래


건조기에서 갓 나온 빨래나 건조대에 널어서 말린 빨래의 포근한 향을 맡으며 옷을 보기 좋게 개서 각각 정해진 위치에 놓는 과정은 모두 날 기분 좋게 한다.

우리 집 빨래바구니는 무려 4단인데 편하게 세탁하기 위함이다. 제일 아래부터 1단에는 실내복, 2단에는 외출복, 3단에는 양말, 4단에는 애벌빨래가 필요한 옷을 분류해서 넣는다. 젖은 수건은 바구니에 그냥 넣으면 퀴퀴한 냄새가 나므로 반드시 각각의 바구니에 걸쳐 먼저 말린다.

실내복은 세탁 후 건조까지 모두 기계로 한다(참 좋은 세상이다!). 외출복과 (빨래망에 넣은) 양말은 세탁 후 건조대에 널고 선풍기와 제습기를 이용해 뽀송하게 말린다. 옷감 보호를 위해 건조기 사용이 가능한 소재라도 외출복은 일부러 자연건조를 시키고 있다.



정리


보이는 곳만 깔끔하게 정리하는 얄팍한 수는 쓰지 않는다. 수납장, 옷장, 수납박스 등 모든 공간의 보이지 않는 곳까지 정성을 들여 정리하려 한다.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린다. 언제 쓸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언젠간 반드시 쓸 것 같아 버리지 못하겠는 물건은 가장 손이 닿기 힘든 높은 곳이나 구석, 안쪽으로 보낸다. 가끔 쓰는 물건은 눈에는 덜 보이지만 꺼내기는 쉬운 쪽에 잘 정리해 둔다. 자주 쓰는 물건은 오와 열을 맞춰 앞쪽에 깔끔하게 배치한다.

오래된 물건을 정리하다 보면 나의 인생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버릴 건 버리고, 남길 건 남기고. (어떤 건 더 뒤쪽에, 어떤 건 더 앞쪽에 남긴다.) 버려야 함을 앎에도 끝내, 차마 못 버리는 것들도 물론 있다. 그래도 가끔씩 온 집안을 샅샅이 훑으면 나의 삶이 조금씩이라도 더 단정해지는 느낌이 든다.



청소


빨래와 정리를 할 때는 안 그런데 청소를 하기 전에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몸을 많이 움직여야 하고, 변수가 생길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수납장 위 먼지 닦기까지의 계획은 없었는데 먼지를 보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하게 된다던가 하는)

청소기를 돌리며, 걸레로 닦으며 내가 지날수록 깨끗해지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하지만 굳이 내가 했기 때문에 좋은 건 아니라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로봇 청소기와 로봇 물걸레 청소기의 도움을 받을 계획이다.) 어쨌든 청소 후 말끔해진 집을 감상할 때는 정말 기분이 좋고 상쾌하다. 아무래도 정리가 체질인 것 같다.






성수동을 걸으며 '힙하다'는 것에 대해 든 생각



6월부터 거의 매주 한 번씩 요즘 가장 힙하다는 성수동으로 일을 하러 가고 있다. 성수역에서 내려 일하는 건물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다. 오래된 건물에는 역시 오래된 것 같은 공업사와 정비소가 유난히 많고, 그 사이사이 요즘 생긴 것 같은 카페들도 많다. 또 좁은 골목길에는 자동차와 사람이 한데 섞여 지나가야 하는데 자동차도 많고 사람도 많아 위험하고 복잡하고 시끄럽다.



그런데 왜 인기가 있는 걸까?
또, 왜 힙하다고 하는 걸까?



전혀 내 취향이 아닌 그곳을 지날 때마다 든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문이 들 때마다 거리와 가게들을 보면서 나름대로의 답을 하나둘씩 쌓아갔다.



1. 힙하다는 건 보기엔 좋지만 불편하다는 걸 뜻하는 걸까?


- 딱딱한 철제 의자(그것도 사이사이 구멍이 뚫린 망사철로 된)

- 등받이 없는 벽돌로 쌓은 의자

- 매우 가까운 테이블 동선

- 걷다가 부딪칠 것 같은 오브제들


내가 유리창 너머로 본 성수동 카페들의 보편적인 특성이다. 언뜻 보기에 시선을 끄는 '쨍'한 느낌은 있지만 그 공간 안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카페는 사람이 아니라 테이블이나 의자, 오브제들이 주인인 것 같았고, 마치 '물건을 상전처럼 모시고 살아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물건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나의 신조와는 정반대인 듯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몇 군데 들어가 봤는데 설상가상으로 음악소리까지 너무 커서 내가 좋아하는 '편안함'과는 아득히 먼 거리감이 느껴졌다.



2. 힙하다는 건 똑 떨어지게 정리를 하지 않는다는 걸 뜻하는 걸까?


'불규칙'과 '비정형'. 성수동 거리를 거닐며 가장 많이 떠오른 단어이다. 외관도 내부 인테리어도 가게마다 제각각이었는데, 한 가지 재밌었던 건 그러면서도 일부러 정리되지 않은 듯하게 스타일링한 모습에서는 공통점을 띄고 있었다는 거였다. 



('정리'에 대한 부분을 쓰다가 정리가 잘 된 우리 집과 정리가 안 되어 보이는 성수동이 같이 머릿속에 떠올라 원래 각각 쓰려던 글을 하나로 엮어보았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빨래들



+) 공감, 댓글, 구독에 생각보다 힘이 많이 나더라고요. 모두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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