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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JANE Feb 25. 2020

친절한 사람들의 도시에서   

캐나다에서 결혼을 하기 위해서는 두 명의 증인이 필요하다. 결혼식 당일에는 프랑스에서 가족들이 오기로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지만 결혼 신청 서류의 시작부터 우리의 결혼을 증언해줄 누군가 필요했다. 운이 좋게 프랑스 남자의 -캐나다에 와서 첫 사귄 캐나디안- 학교 친구가 기꺼이 우리 결혼의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고맙다고 몇번을 이야기하며 우리는 친구를 안아주었다. 퀘벡 사람들은 다른 주에 비해 좀 더 폐쇄적이고 여기 날씨만큼이나 냉담하다고 했다. 듣기와는 다르게 사람들이 너무 친절해 좋다며 프랑스 남자는 호들갑을 떨었고 나는 아직 오버하지 말라며 타박을 했다.


다미앙이 처음 캐나다에 도착한 지 며칠 채 되지 않아 차도 없이 슈퍼마켓에서 장보고-집으로 가져다 두고-다시 장보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세네 번쯤 했을 때에, 지나가던 어떤 차는 그를 멈춰 세우고 어디를 가냐 물었다. 정 반대 방향임에도 굳이 집까지 태워주겠다며 그렇게 길가던 모르는 남자에게 무료 택시 서비스를 받았다. 어떤 친구는 혹독한 캐나다 겨울 라이프에 도움이 될 거라며 200불짜리 부츠를 그냥 건넸다. 보스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직접 적은 손카드와 비싼 초콜릿 선물을 건넸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그것이 '파리에서 날아온 프랑스 남자' 에게 한정적인 특혜라고 말했다.  


"네가 남자이고, 프랑스인이고, 불어 네이티브니까 당연히 웰컴 어서 오세요지. 불어 못하는 동양인 여자에게도 같은 결과일까?  그 사람들 나한테는 안 친절할걸. "


인종차별 레이더를 24시간 켜 놓고 사는 나 스스로도 영어만 할 줄 아는 아시안 여자를 환영할 거라는 장담은 없었다. 언어 구사 능력이 갖춰지는 순간부터 우리는 수준 낮은 저급의 차별들에서 벗어나는 현실을 본다.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가장 기본자세는 언어를 배우는 일이다. 그렇기에 어차피 어느 정도의 차별은 감당하고 온 여정이었다. 지독하게 겪은 인종차별 경험치가 이미 끝판왕이니 캐나다가 나이스 함이라는 단어 같은 걸 내세우는 건 정말 우습다고 생각했다. 사실 인종차별이란 것이 얼마나 공기처럼 존재하는지 깨닫게 된다면, 첫째, 내가 '아시안'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이 머리 노란 백인이 나를 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새삼 놀랠 노자 인 거지.


남이 들으면 캐나다 살면서 왜 불어 능력에 대해 걱정을 하느냐 싶겠지만 여긴 아무도 영어를 안 쓴다. 샴푸의 앞면엔 영어가 뒷면엔 불어가 적혀있는 것이 법이지만 우리 동네에선 영어로는 영화 상영도 안 한다. 영어는 거의 남의 나라 말이다. 내 프랑스어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갓난아이처럼. 아장아장, 쥬 브 프헝 드- 쥬 도아, 더듬더듬. 그러다 어느 날 아파서 의사를 만났다. 쥬 쒸 말라드다. 생각지도 못한 첫 일대일 대면이다. 의사는 나에게 영어를 하는지 불어를 하는지 묻고는 친절하게 되지도 않는 영어로 약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시작했다. 손, 발 다 써가며 메디컬 용어를 설명하다가, 핸드폰을 켜서 사전을 찾다가 말다가 한참을 머리를 싸매며 문장을 짜냈다. 밖에 나와서는 쓸데없이 마중까지 해준다. 혼자 서류 처리를 하러 간 시청에서는 종이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나를 집에 보낼 생각을 않는다. 대부분은 프랑스 남자와 함께지만 이렇게 홀로 부끄러운 프랑스어를 내보여야 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다. 프랑스 남자에게 그렇듯 공평한 친절함이 나에게도 나눠졌다.


그 사람 영어를 못 하더라고. 근데 너무 과하게 친절해서 놀랐어. 알잖아? 호주에 살 때 병원에서, 경찰서에서, 관공서에서 얼마나 많은 무시를 당했는지. -너랑만 있으면 당할 일 없는 그 불공평함을- 여기는 불어만 하면 네가 흑인이건 아시안이건 그냥 다 퀘벡쿠아인 거지. 그러니 이렇게 혜택받으며 살고있는 거고.




정말 사랑스러운 동네. 추우면서 예쁜 건 그냥 춥기만 한 것보다 훤씬 살만하다.


그들의 친절은 가진 삶의 여유에서 오나 혹은 잘난 복지국가를 가진 국민들의 선진의식인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모두가 삶에 여유가 있다고 하기에 여기는 그다지 wealthy 한 곳은 아니다. 20대를 오로지 여행과 경험에 올인을 했던 우리는 서른 살이 됨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마자 캐나다 유학 겸 이민길에 올랐다. 돈을 아끼기 위해 대학교 앞 도보 3분 거리 제일 저렴한 원룸에 살고 있고 이 곳은 주로 우리처럼 자취하는 대학생들이 사는 곳이다. 어린아이들이 여럿 있는 대 가족들도 이 곳에 산다는 걸 보고 사뭇 놀랬다. 냉장고와 화장실의 거리는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다. 아빠와 아이는 유모차를 힘겹게 들고 낑낑대며 비좁은 2층 계단을 올라온다. 굳이 이 곳의 월세가 얼마일지 궁금해하지 않아도 사실 우리는 그들의 행색에서 모든 걸 알아챌 수 있다.


당신의 삶이 완전한 부를 가졌건 아니건, 옆집에 사는 어느 아저씨는 퀘벡 초짜인 우리를 지나치려다가 다시 멈춰 서서 몰랐다면 낭패였을 것들을 굳이 알려주고 지나간다. 눈 때문에 바퀴가 헛돌아 고생 중일 때는 츄리닝만 입은 윗집 남자가 영하 10도의 날씨에 갑자기 커다란 삽을 들고 어디선가 나타난다. 만난 지 몇 개월도 채 되지 않은 친구는 수업까지 빼먹어가며 이 외국인 둘의 결혼식에 기꺼이 증인이 되어주겠다고 같이 나선다. 사람들이 계속 도와주고 싶다고 자꾸 묻는다.


이유 없는 친절들이 반복되어 갈 때에 나는 그것들을 차곡차곡 쌓아 다시 사람들을 바라본다. 정말 부유함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걸까? 가난과 결핍은 그 자체로 기쁨과 환희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충분히 부유하지 않은 삶이 우리를 꼭 불행하게만 만든다고 말할 수 있나?

의외로 답은 쉽게 찾아진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을 여기서 본다. 겹겹이 겹쳐있는 이 비좁은 원룸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모두 웃는다. 나는 항상 이유 없는 친절은 불편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의도를 모르겠는 선행은 나를 불편하게끔 만드는 것. 그러나 가끔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


당신이 나를 향해 웃는 것은, 그냥 웃는 것. 당신이 모르는 나를 향해 친절을 베푸는 것은 그냥, 당신이 좋은 사람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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