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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JANE Feb 11. 2020

프랑스인들이 고양이와 사는 법

길고양이와 공생하는 삶


나는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지만 고양이에겐 별 관심이 없는 편이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주변의 프랑스 친구들은 한집당 하나씩 길고양이 밥그릇은 필수로 두고 있다. 내가 살았던 지구 저 편 프랑스의 코르시카라는 어느 섬 리조트에는 야생고양이 가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각 리조트 직원들의 스튜디오 발코니에는  1 캣 1 밥그릇이 놓여 있었다. 우리 집도 예외 없이 아침 여섯 시가 되면 제일 먼저 커다란 발코니 문을 열어 이 아이들의 우유를 따라주고 출근하는 것이 암묵적인 의무였다. 따로 고양이 접시라고 할 것도 없이, 딱 두 사람 사는 집의 단출한 식기 중 하나를 꺼내어 사람 몫 하나를 안 쓰는 셈 치고 내 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같은 모양의 밥그릇을 썼다.


끔찍하도록 세상 만물을 사랑하는 프랑스 남자를 둔 우리 집도 예외 없이 ,매주 장보기 목록에는 고양이 밥과 우유가 필수로 포함되어있었다. 어느 날은 기본 생존권을 보장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 남자가 장난감을 사주겠다며 발코니에 캣 모빌을 달아두었다.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온 동네 고양님들 다 모여 태어나 처음 만져보는 장난감을 가지고 신나게 짤랑 짤랑이고 있다. 그 모습을 보더니 우리 이웃 주민인 동료들이 옆 발코니에서 얼굴을 빠꼼히 내밀고 일제히 부러움과 박수를 보냈다. 왜 본인들은 진작 생각하지 못했냐며 자책 중이었더란다. 아니 저기요 그냥 길고양이 들일뿐인데요? (이미 길고양이 우유를 매주 쟁여둔다는 것에 이해 못했던 유일한 사람.나요 나.) 프랑스 남자는 그 모습을 비디오로 찍다가 행복해하며 이야기한다. 


이 아이들은 야생 고양이로 태어나서 내가 사주지 않았다면 평생 해보지 못했을 공놀이를 하고 있잖아? 단 몇 유로로 이 고양이들에게 내가 행복을 사줄 수 있어서 행복한 거지. 그게 의미 있는 거고.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렇게 또 이타적인 삶에 대해 배웠다 싶어 그 후론 나도 마음을 내어 간간히 빈 우유 그릇을 채워주곤 했다. 처음엔 밥만 먹고 잽싸게 도망가던 아이들이 점점 도망가는 속도가 느려진다. 우유를 다 먹고 발코니에 드러누워 있기도 하고, 그러다가 또 장화 신은 고양이 눈을 하곤 나를 가만히 쳐다보기도 한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시간 맞춰 아이들이 오지 않으면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모든 생명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제일로 여기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곳과 달리 길고양이의 밥그릇마저 꼴 보기 싫어 그들에게 염산을 붓고, 반려견을 집어던지고 하는 종류의 뉴스를 아주 자주 -본다.


우리는 대체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이럴 때마다 인간도 등급이 나눠지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생명의 가치는 똑같다고 했지만 인간에도 등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어떠한 조건도 없이 그저 생명을 가졌기에 응당 지켜져야 하는 이 작고 약한 것들의 존엄성은 어떻게, 누가 지켜줘야 하는 걸까?



저기요. 밥 주세요. 이렇게 쳐다보면 없던 우유도 만들어내야하는게 인지상정.




섬 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놀랬던 것은 길고양이들이 사람을 피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서로 간의 적당한 거리는 지켜가지만 사람이 두려운 눈을 하고 도망가는 일은 없다. 오히려 쓰다듬을 당하기 위해 먼저 다가온다.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가는 길에 마주친 작은 길고양이를 쓰다듬고, 안고, 그대로 앉아서 배를 만져주며 강아지처럼 장난을 치기도 한다. 그들은 약한 동물로 취급당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여겨진다. 으레 보이던 회색 줄무늬를 가진 아이가 하루만 보이지 않아도 이상하네? 어딜 갔을까? 오늘은 왜 우유를 먹으러 안 올까? 다른 아이들이랑 싸웠나? 동료들과 아침인사 후 나누는 다음 주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이들이다. 길고양이 가족을 걱정하는 것이 아주 당연한 사람들이 여기 있다.


자연스레 거기서부터 존재해왔고 한결같이 같은 곳에 존재하지만 그 존재를 거부당하는 현실을 어떻게 마주 봐야 하는 건지 복잡한 생각만 머리에서 맴맴 돈다. 나는 못된 말이 하고 싶었지만 내 옆에 그것을 지켜 줄줄 아는 따듯한 사람이 있다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작은 생명이 작지만 약하지 않은 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쁜 일을 볼 때마다 착한 일 하나씩, 그렇게 상쇄시키며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우리는 계속 너희들 몫의 우유를 매주 장바구니에 추가할 거야. 우리 그렇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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