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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Sep 26. 2022

책방무사에서 책 만들기1

무슨 이야기를 쓰고 싶을까?

  ‘나중에 돈가스 유랑기를 쓰고 싶다.’

  고 2013년쯤 용산역에 있는 한 일식당에서 돈가스를 먹으며 생각했다. 그리고 종종 친구들에게도 말했다. 친구들은 다들 마음이 좋아서 그래그래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렇지만 몇 년 뒤에 장애물이 생겼으니 그건 바로 대부분의 현대인이 조금씩 앓는 위장장애였다. 위염, 위경련, 위궤양, 역류성 식도염 등을 앓았다. 2017년쯤에는 기름진 걸 먹으면 바로 토하는 상황까지 벌어져 단념하고 말았다. 돈가스는 안 되겠구나….

  글 쓰는 것을 좋아한 것은 부모님이 이혼하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어영부영 아버지랑 오빠랑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밤늦게까지 안 들어오실 때도 많았고 오빠는 고등학생이라 야간 자율학습을 하다 늦게 들어왔다. 혼자 있을 때는 인터넷 소설을 많이 읽었다. 게임을 하거나 약간의 집안일, 드물게 숙제를 할 때도 있었지만 주로 남이 쓴 글을 읽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인터넷 소설을 쓰는 친구를 따라 나도 한 두 편 써보기도 했었다.

  등장인물에는 나와 내 주변 인물이 투사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런 걸 모르고 재미 삼아 썼었다. 내가 만든 인물들이 말하는 게 재밌었고 사람들이 읽어주는 게 좋았다. 33살 때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잠깐 소설 써 본 적이 있다고 말했는데 상담 선생님이 물었다.

  “어떤 내용이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더라. 잘 생각은 나지 않았지만,

  “어린 소녀가 너무 힘들고 괴롭지만, 나중엔 잘 되는….”

  말하면서 왈칵 눈물이 고였다. 그 당시 나의 희망이었던 것이다. 그때는 부모가 이혼했다는 게 너무 슬펐지만, 소풍 때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 없는 게 속이 상했지만, 더러운 점퍼를 입고 학교에 가는 게 부끄러웠지만, 나중에는 잘 될 거라는 내 바람과 희망과 소망을 가득 담은 글이었(을 것이)다.

  이처럼 글은 내 마음을 정화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20대 초반부터는 꾸준히 일기를 썼다. 나중에는 일기 쓰느라 하루가 다 가버리는 지경이 되어서 점차 내용을 줄였다. 안 쓰는 날도 늘었다. 그렇지만 쓰고 나면 좋았다. 여행을 가도 여행기를 꼭 남겼고 심지어 제품을 쓰고도 제품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어서 블로그를 했다. 가끔 내가 쓴 여행기나 단상을 읽을 때 너무 재밌어서 혼자 킬킬대다가 ‘이런 걸 책으로 낼 수 있을까.’ 막연하게 꿈만 품었다.

  책방무사 서울점에서 책 만들기 모임(워크숍)을 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신청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일하고 있는 회사 사무실은 혼자 쓰고 있으므로 사람과의 교류가 거의 없다(물론 장점도 많다). 게다가 1인 가구여서 집-회사만 왔다 갔다 하는 내 일상에는 새로운 물결이 없다. 좀비처럼 ‘사람…. 사람….’하며 새로운 모임을 소극적으로 물색했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영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는 타입이라 웬만한 주제의 모임은 다 심드렁했다. 그렇지만 책 만들기라니! 내 돈가스 유랑기의 소망을 어쩌면 실현할지도, 라는 약간의 희망이 불씨를 지폈다. 

  총 6회기로 진행되는 모임이었는데 포도밭출판사에 최진규 대표님이 이끌어주셨다. 첫 만남에서 ‘기획서’를 쓰라고 하셨는데 진실로 책을 낼 생각은 아니었기 때문에 2018년에 포틀랜드에 간 여행기를 떠올리며 대충 써냈다. 근데 그 기획서 내용에는 ‘우울’이라는 단어가 어찌나 많이 들어가던지 쓰면서도 놀랐다. 이유는 포틀랜드 여행 자체가 너무 우울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 휴가로 놀러 가면서도 우울해했다는 게 나중에는 웃겨서 책으로 내야지 생각했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책으로 낼 수 없었다. 인스타나 블로그에 올리는 용으로는 딱 맞았겠지만, 책으로 엮기에는 내용이 빈약했다.

  내용이 빈약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이걸 읽고 어떤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정보를 준다기에도 미약하고 재미를 준다기에도… 유머 코드가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 같았다. 이 일기를 바탕으로 다시 글을 조직화하면 되겠지만 ‘포틀랜드 여행기’는 이미 몇 편 있고 여행 마니아들(혹은 여행 에세이 마니아들)에게는 이미 좀 지루한 여행지가 아닐까? 자신이 없었다.

  또한 여행기가 이렇게 우울해도 될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물론 답으로 ‘우울해도 됩니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또 우울해하며 책 만들기 모임 두 번째 시간이 왔다. 두 번째 모임은 북 디자인에 대해 다루었지만, 머릿속에는 어떤 콘텐츠가 좋을지 물음표만 가득했다.


  글을 쓴다면 먹는 얘기나 여행 얘기, 여행하면서 먹는 얘기를 쓰고 싶었다. 직업이 심리상담사니까 심리와 관련된 자기 계발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집단상담이나 개인 상담에서 들은 얘기나 겪은 경험담에 상상을 보태고 각색하여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자기 계발서, 소설을 낸 심리상담사도 꽤 많다. 그렇지만 난 자기 계발서를 쓸 생각은 없었다. 일부겠지만 자기 계발서 특유의 교시적이고 피상적인 느낌이 싫었다. ‘이렇게 느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와 같은 에세이가 좋았다. 소설은 생각하고 구상할 게 많아서 더욱 쓰질 못하겠다.

  먹는 얘기를 쓰고 싶은 이유는 먹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종일 ‘뭐 먹지’ 생각하고 하루에 1~2시간은 요리하느라 혹은 맛집 찾느라 시간을 쓰고 요리하는 TV 프로그램을 본다. 정성 들여 요리하는 걸 보고 있으면 마음도 정갈해지는 기분이다. 먹을 때는 향과 맛으로 자극을 받으니까 좋다. 먹고 나서는 맛이 있네, 없네, 내 맘대로 판단해버리는 것까지 좋다. 심리상담자로 있다 보면 내담자들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먹을 때는 마음껏 판단하고 평가해버릴 수 있으니까 좋다. 일종의 나의 공격성인가?라고까지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가 뭘까. 그리고 그걸 굳이 책으로 편집하고 싶은 이유가 뭘까. 쓰고 싶긴 한데, 엮어내고 싶긴 한데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찾은 이유는 ‘재밌어서’인데 그럼 뭐가 재밌는 걸까? ‘내 생각과 경험을 말하고 공유하는 게 재밌다.’가 사실인데 이걸 이유로 들이밀어도 될까. 사실 좀 공감받고 싶은 것도 있는데 이런 걸 얘기해도 될까? ‘다른 사람 입장만 헤아리고 공감해주다 보니 지쳐요. 나도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어요!’ 이런 유치한 마음인데? 


  매일 꿈을 꾸니까 꿈 얘기를 쓸까. 가끔 꿈 일지를 쓰고 있는데 이 꿈을 쓰고 융의 분석심리학을 바탕으로 자기 분석을 해보면 어떨까. 상담하면서 상담자로서 느낀 점을 글로 쓸까. 어쩌면 이렇게 삶이 처절한지, 그런데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태도나 말은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어떨 때 내담자가 좋고 미운지…. 이런 걸 솔직하게 말해보면 어떨까. 근데 느낀 바들이 너무 단편적이어서 어떻게 글을 엮어내야 할지 모르겠다.

  내담자들에게 편지를 쓰면 어떨까? 상담자로서 미처 말하지 못한 바가 많았고 어떤 분들에게는 꾸준히 격려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 멋진 점도 많았다. 위로하고 싶고 품어주고 싶기도 했는데 그런 걸 글로 남기면 어떨까? 하지만 내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건 너무 중요한 일이니까 그런 정보를 빼고 글을 쓴다면 글이 너무 밋밋해질 것 같다……. 옛날에 여행 갔던 것들을 토대로 해서 느낀 점들을 써볼까. 각각의 여행은 나의 상태에 따라 다 달랐으니, 내 얘기도 하게 되고 여행지 얘기도 하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근데 그걸 언제 다 조직화해서 글을 쓴담. 

  내가 본 영화와 책에 대해 얘기를 할까? 아니면 그런 콘텐츠에 나온 인물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가상의 상담을 해볼까? 매일매일 소소하게 깨달으니까 리빙 포인트처럼 나의 깨달음 일지를 써볼까? 어딘가는 깨달음 덕후가 있어서 읽어보지 않을까?  작은 아이디어들이 떠올랐지만 꿰어지지는 않았다. 소재는 조금씩 다르더라도 책 한 권을 관철하는 큰 주제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고민이 많았지만 바쁜 일상에 곧 묻어두었다.


Image: Photo by Nathalie Stimpfl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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