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하게 숨통 틔기
<책방무사 서울점>에서 진행되는 책 만들기 모임은 총 6회 차로 구성되었다. 모임의 인원은 약 7~9명. 첫 번째 시간은 출판 기획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뤘다. 출판 절차나 비용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매회 관련 서적을 추천해주시는데 이때 정상태의 『출판사에서 내 책 내는 법』과 가와사키 쇼헤이의 『중쇄미정』을 읽었다. 정상태의 책은 출판사에 기고하기 위한 기초적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소개해주고 가와사키 쇼헤이의 책에서는 편집자의 마음이나 출판사의 구조적 문제에 이입할 수 있다.
고등학생 때 장래희망을 물으면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란에는 작가를 적었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출판사 직원?”이라고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물음표를 붙인 게 포인트다. 정말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몰랐지만, 방향은 잡아야겠다는 압박이 외부에서, 내부에서 있었다.
생각이나 감정, 그리고 글을 다루는 직업을 원했던 것 같다. 이야기에 얽히고 이야기를 담는 직업을 떠올렸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까? 항상 궁금했다. 타인이 궁금했던 것은 아마 소외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이지 않겠냐고 해석한다. 생각이 같든 다르든 연결감을 느끼고 공감하거나 다른 관점을 배운다. 표현하고 싶은 욕구도 강했던 것 같다. 그때 꿈꾸던 직업과는 달리 지금 직업은 심리상담사인데 확실히 생각과 감정을 주로 다룬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지만 나를 표현하는 일이 주된 업무는 아닌 것 같다.
표현하는 게 왜 이렇게 중요할까? 표현하는 게 꼭 직업이어야 할 필요도 당연히 없다. 여러 학자가 표현의 의미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나에게는 너무 느끼는 것이 많기 때문인 것 같다. 속에서 생각과 감정이 표류하는 정도가 아니라 꽉꽉 차는데 이걸 ‘표현’ 하지 않으면 갑갑해진다. 가끔 일기장에 그림으로도 그리는데 그림으로 다 표현이 안 되어서 더 갑갑해졌다. 글쓰기가 훨씬 나았다. 춤도 표현방법 중 하나일 텐데 익숙하지 않아서인지 잘 안 된다.
책 만들기 모임 3회 차 때 돌아가면서 근황에 관해 말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의 근황을 순간적으로 떠올렸을 때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제가 일하고 있는 곳은 갑이라는 회사가 을이라는 회사랑 수주계약을 맺습니다. 저의 소속은 을입니다. 이 계약은 1년 동안 진행되는데 올해 업체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업체가 바뀌면서 근무 시간, 근무 형태가 약간씩 달라지고 이에 대한 논의가 일방적인 통보여서 화가 났습니다. 아직도 계약서를 쓰지 않은 채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계속 일은 이어지고 있었고 갑 회사는 실적을 내라고 닦달합니다. 고용 안정이 되지 않아 불안합니다.’
안 돼. 너무 구구절절하다. 또 무슨 일이 있었더라, 재빠르게 생각했다.
‘(고용 안정이 되지 않으니까)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박사 진학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려하고 있던 교수님께 박사 진학 컨택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으십니다. 수신확인은 10분 이내로 되었던데 지금 4일째 답장이 안 오고 있습니다. 이게 거절인지, 깜빡하신 건지 구분이 되지 않아 헷갈리고 약간 화도 났습니다. 만약에 컨택한 교수님 연구실로 박사 진학을 하지 못하면 전 또 다른 학교를 알아보거나 새로운 연구주제를 생각하거나 원하지 않던 곳으로 진학해야 하거나 그도 아니면 여러 회사를 전전긍긍할지도 몰라서 불안합니다. 그리고 우울해요. 인생은 왜 이렇게 제 맘대로 풀리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질까요.’
안 된다. 하소연하다가 눈물을 흘릴 수도 있겠다. 벌써 내 차례다. 왜 여기 앉았을까.
“근황은…. 뭐 크게 별일 없이 지냈습니다. 매일 회사에 갔고요. 제가 여기서 만들고 싶은 책 주제를 좀 바꾸려고 하는데요…. [이하 생략]”
내 감정에 관한 얘기는 쏙 빼놓고 글에 관한 얘기를 했다. ‘화나고 불안하고 우울했다.’가 내 근황인데 왜 ‘매일 회사에 출근했습니다.’와 같은 심드렁한 사실만 얘기했을까? 이유는,
[1] 부끄럽다.
[2] 사람들이 내 얘기에 관심이 없을 것 같다. 구구절절 얘기하면 시간을 너무 잡아먹을 것 같다. 얘기를 시작하면 더더욱 구구절절해지고 싶으니까 미리 방지.
[3] 두렵다. 나라는 사람이 쉽게 판단될까 봐. 혹은 나의 뜨거운 분노와 소중한 불안과 두툼한 우울함이 수용받지 못할까 봐.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쑥스럽고 부끄럽다. 더군다나 이렇게 데면데면한 사이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얘기에 관심이 없을 것 같다는 건 언제나 가지고 있는 생각인데 이 생각은 나를 외롭게 만들고 움츠러들게 한다. 사람들과 친밀해지고 싶지만 친밀해지기 어렵게 만드는 생각이라는 걸 안다. 사실은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는 걸 안다. 알면서도 잘 안 된다.
알게 된 건 집단상담에서였다. 참여한 집단상담은 게슈탈트 치료를 기반으로 하는 교수님이 주도했다. 어떤 집단원이 내 걱정을 해줬다.
“걱정을 해줘서 고맙긴 한데…. 미안하기도 하고….”
“염려하는데 미안하다고요? 염려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약간 그랬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났냐 하면 나는 방석을 두들겨 패며 꺼이꺼이 울었고 방석에 앉아있는 가상의 아버지에게 화를 내며 내 허벅지를 내려쳤다. 허벅지를 내려친 게 기억에 남는 이유는 이후에 어떤 집단원이 ‘허벅지를 내려치는 모습에서 얼마나 화가 났는지가 느껴졌고 가슴이 아팠다.’라고 공명해줬기 때문이다. 다른 몇몇 사람들도 울었던 것 같다.
이렇게 강렬한 경험으로 깨우친 나의 ‘앎’은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다만 글로 옮기긴 쉬웠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계속 읽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덮으면 된다. 직접적인 비판과 판단을 약간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즉 말하는 대신 글을 쓰는 것은 [이유 1]은 해결을 못 해도 [2]와 [3]은 조금 우회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실제로 출간하는 게 아니라 책을 만드는 연습이니까 어떤 글도 괜찮습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글 콘텐츠에 얼마나 빠져 있었는지 들킨 것 같아 순간 머쓱했다. 이미 머릿속으로는 출판까지 한 거로 모자라 출판 기념으로 집단상담 모임을 열었다. 그렇지만 연습이고 괜찮다고 하니 한 김 식으면서 안심이 되었다.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아야지.
누웠는데 ‘아까 쓴 글에 괄호를 닫았나?’ 신경이 쓰였다. 가스 불 잠갔나 걱정하는 것보다 아주 약간 덜 심각했을 뿐이다. 이쯤이면 난 정말로 글을 좋아하고 글 쓰는 행위를 사랑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아하면서도 그렇게 많은 책을 읽지는 않고 작가나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첫 모임에서 기획을 하는 편집자의 역할에 대해 알았을 때 동시에 난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도 알았다. 3회 차에서 교정·교열을 보는 편집자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그게 바로 내가 아는 편집자의 전부였다.
심리상담사를 꿈꿨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학 때도 연계 전공으로 상담을 공부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심지어 대학원 진학도 처음에는 상담 전공이 아닌 발달 전공으로 시작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듣는 것에 왜 공부가 필요한지 이해할 수 없었고 나아가 심리적 문제를 치료한다는 건 사이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 직업을 갖게 됐다. 가끔 누가 나에게 ‘상담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묻는 것처럼 작가나 편집자는 어떻게 되는 건지 묻고 싶다. 근데 쑥스러워서 요조 님이나 대표님에게 못 물어볼 것 같다.
물어보기 전에 이 세 직업의 공통점을 계속 떠올리다 보니 깨달았다.
난 돈 못 버는 직업을 좋아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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