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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Dec 02. 2023

행발의 시기

-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을 아시나요 -


행발을 쓰고 있다. 요새는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이라 행발이 아니지만, 그 옛날 행동특성 및 발달사항을 줄여 행발이라 부르기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내려와 행발로 통칭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담임의 권한(?)이 극대화되는 작은 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시각으로 아이에 대해 고작 몇 줄을 적는다. 좋은 건 더 좋게, 나쁜 건 좋아 보이게, 교사의 작문실력에 따라 같은 아이도 다르게 표현된다.  줄 한 줄이 조심스럽다보니 학교보다는 주로 집에서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시작한다.






약으로 조절해야 할 정도의 정신병증을 가진 아이에 대해선 한 문장을 쓰기도 어렵다. 아파서 그런 건데 이상하다고 쓸 수도 없고, 아프다는 말은 더 쓸 수 없고, 그럼 그냥 진짜 이상한 것만 남는데 다시 도돌이표처럼 아파서 그런 건데, 로 돌아간다. 진짜 이상한 건 맞나? 약 먹으면 괜찮은데, 괜찮은 것만 쓸까 하다 내가 그동안 감내한 시간들이 생각나 울컥한다.


방황의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를 보면 저러다 말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 마는 시기가 지금이 아니어서 좀 힘든 게 아닌가 싶다. 분명 괜찮아질 게 보이는데 괜찮다만 쓸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인생의 흑역사를 기록으로 남기는 게 맞나 의문이 생긴다.


학폭까진 아니지만 소소하게 친구들을 괴롭히는(요즘 애들 말로 꼽준다가 제일 정확하다!) 아이를 포장하기는 정말 힘들다. 공부도 제법 잘하고 교사에게 공손하기까지 한데 그런 고약한 면을 가진 아이는 장점만 써놓으려니 직무유기 같다. 그렇다고 야비하다 어쩐다 할 수는 없으니 말을 고르고 또 고른다.






한 명 한 명 고민하다 보면 대체 내가 뭐라고 이 몇 문장에 아이의 1년을 욱여넣나 싶은 생각이 든다. 내가 본 게 다 맞지도 않고 전부도 아닐 텐데, 또 계속 자라는 아이들이니 달라질 텐데, 지금이 그 아이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일 수도 있는데.


학교에서 한 거의 모든 활동을 다 적게 되어있는 현재의 생기부에 행발은 사족 같단 생각이 든다. 굳이 내가 쓸데없는 한마디를 덧붙여 잘 된 밥에 재를 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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