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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Dec 16. 2023

드뷔시, 달빛


아마도 드뷔시라는 작곡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곡이 바로 "달빛"일 것이다. 간혹 짐노페디와 헷갈리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달빛이라는 제목만큼은 누구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테다.


드뷔시는 대표적인 인상주의 작곡가로 분류되지만, 본인은 인상주의 작곡가라는 말로 불리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시각의 청각화를 구현해 내고, 프랑스적인 감성을 더하며, 새로운 화성이나 조성을 사용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드뷔시의 음악은 분명 이전과는 다른 차별점을 지니고 있다.


달빛은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3번째 수록곡이다. 드뷔시가 20대 때 작곡했다고 알려진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은 프렐류드, 미뉴엣, 달빛, 파스피에의 총 네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곡연도와 출판연도에 꽤 차이가 있어 많은 수정이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워낙 달빛이 유명해서 그렇지, 다른 세 곡 역시 충분히 아름답고 드뷔시 음악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달빛이라는 제목은 중의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태양에 반사되어 내뿜는 달빛 그 자체로도, 또 한편으론 그 달빛이  어딘가에 다시 반사되는 빛으로도 인식된다. 재미있는 건 연주자마다 표현하는 달빛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노오-란 달빛, 붉은 달빛, 푸른 달빛, 따스한 달빛, 시린 달빛, 서슬 퍼런 달빛.. 연주자가 그려내는 달빛을 따라가다 보면 마음속에 여러 개의 달이 떠오른다.





https://youtu.be/97_VJve7UVc?si=e5zhhVjbqQnBhlqn


고요히 떠 있는 달은 물에 닿으며 생명력을 얻는다. 달이 물에 떨어지는 순간, 그리고 바람, 흔들리는 물결, 그 속에서 달은 달빛이 되고 일렁이는 물과 함께 이지러진다. 악보에 그려진 달은 연주자의 손을 물처럼 매개로 삼아 청중에게 달빛으로 전해진다.


20대 조성진의 달빛은 보름달 같다. 물에 비친 달빛은 푸르고도 노랗다. 시린 겨울 동안 연마된 달빛이 봄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한 음 한 음을 공중에 띄워 달처럼 빛나게 하고, 그 빛이 모여 꽉 찬 보름달을 만들어 낸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청년이 아닌 조성진의 달빛을 들어보고 싶다. 그때의 달빛은 혹시 장엄한 산맥 위에 뜬 그믐달 같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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