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적 방법으로 공황장애 분석하기
2020년에 적었던 인류학 셀프 에스노그라피 과제물.
나는 같은 말을 여러번 돌려썼구나ㅋㅋ
과거의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면 그만큼 발전했음에 감사해하기.
인류학이 나를 어떻게 구원했는지 생각한다.
그 뜨거운 마음을 다시 만날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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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에스노그라피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나를 들여다봐야만 한다. 또한 셀프 에스노그라피의 목적은 단순한 개인적 성찰의 기록이 아니기에, 나의 삶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맥락에 대해 분석해야 한다. 이는 결코 유쾌한 작업이 될 수 없다.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나에게는 유독 힘든 일이었다.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항상 사회와 그 속의 나에 대한 분노와 굴복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셀프 에스노그라피 주제를 물색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주제를 심화하려 할 때마다 몸이 떨리는 불안과 공황이 찾아왔다. 그러다 문득, 이 자체를 탐구해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이 불안 장애와 공황 장애는 무엇이며, 어쩌다 내 삶의 일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처음 공황이 찾아온 것은 2019년 4월이었다. 나의 첫 번째 공황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시작됐다. 등굣길 지하철을 타기 위해 멍하니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던 와중, 나보다 한참 높은 곳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 순간 그 사람이 뒤로 넘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다음 나도 뒤로 넘어지고, 이 에스컬레이터의 모두가 뒤로 넘어져, 머리가 깨져 모두 죽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그다음의 기억은 없다. 그 날 나는 학교에 갔을까?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 이후로 한참을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지 못했다. 지하철을 놓칠지라도, 다리가 빠질 것 같을지라도, 앞에 아무도 없는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그런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그렇게 시작된 자기혐오는 끝이 없었다. 고작 에스컬레이터가 무서워서 통학 지하철을 놓치면서까지 계단을 오르는 내가 싫었고, 어두운 내용의 책을 읽다가 문득 집 안의 날카로운 것들을 숨겨야 하는 내가 싫었다. 내가 좋다며 다가오는 사람과 이별이 무섭다는 이유로 시작도 하지 못하는 게 싫었고, 여전히 청소년기의 꿈에 사로잡혀 이상만을 바라보는 게 싫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에는 구토가 나왔다. 수업 도중 찾아온 공황에 교실을 뛰쳐나와야 했던 경험만 몇 번인지 모를 만큼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하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정신과는 ‘비정상’들이 가는 곳이고, 나는 절대 그 ‘비정상’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시선이 무서웠던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병을 향해 개인의 의지 부족이라는 비난을 가감 없이 행한다. 그리고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정말 ‘비정상’인 인간인 것처럼 유난을 떤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 마음이 아프니 병원을 찾아갔으면 될 일이었는데, ‘정상’이고 싶어서, 정신력으로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으며 그 일을 미루고 미뤘다. 병원을 찾아가는 순간 내가 정말 ‘비정상’임을 용인하는 것만 같아 또 미루고 미뤘다. 그렇게 고통받던 어느 날, 이 아픈 밤에 영원히 갇힐 것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이 아플 바에야 몸이 아픈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의 과정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손목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나는 울고 있었다. 피가 흐르는 손목을 보며 깨달았다. “이 밤은 날 가두지 않았으니, 해가 뜨면 병원에 가자.”
그렇게 병원에 다니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손목의 흉터도 보이지 않는다. 이제 불안과 공황의 이유를 찾는 것은 굳이 필요한 작업이 아니었다. 약물치료가 가능한 일이기에 그저 착실히 약을 먹으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억압된 학창시절에도, 고립된 재수 시절에도 찾아오지 않던 병이 도대체 왜 지금 찾아온 것인지. 비로소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던 시간에 오히려 불행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는 예견된 불행이었다. 인류학을 배우며 지배문화의 힘을 알게 되자 차츰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사회는 학생들에게 자아를 탐구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러면서 당장 고등학교 2학년 때 문과 혹은 이과라는 이분법적인 범주로 학생들을 분류하고, ‘꿈’을 위한 진로 계획을 세우라 한다. 생활 기록부를 잘 채워나갈수록 대학 진학에 성공할 확률이 크기에, 꿈은 반드시 하나여야 하고 또 구체적이어야 한다. 꿈을 꿀 시간도 주지 않았으면서 학생들에게 ‘꿈’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의 말만 들으며 살아온 평생을 갑자기 하나의 꿈을 위한 길로 정리하는 게 쉬울 리가 없다. 정말 모순적인 것은, 그 와중에도 학생들은 독립적인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런 학창 시절이 끝나고 비로소 빛나는 새내기가 될 줄 알았던 나의 스물의 시작은 재수학원 구석 자리에서였다. 이 선택에는 두 가지 맥락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첫 번째로, 나는 ‘학벌주의’에 잠식되어 있었다. 평소보다 낮은 수능 점수로도 갈 수 있는 학교는 많았지만, ‘인서울’을 하지 않으면 대학 갈 의미가 없는 것이라는 극단적이고도 차별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목적 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고려하지 못하고, 학벌 만능주의라는 지배문화의 서사를 대리집행 한 것이다. 두 번째로, 제주도라는 ‘섬’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제주도의 고등학생 사이에서는 ‘제주대’를 진학하는 것이 `인서울 실패’의 다른 말로 여겨졌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인서울을 해서 ‘탈제주’를 하는 것만이 나의 성공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이는 단순히 제주도 학생들의 문제가 아닌, 미디어와 자본이 서울에 압도적으로 몰린 ‘서울 공화국’의 특성이 작용한 탓일 테다.
그런 시간이 끝나고 비로소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으니 나는 분에 넘치게 행복해야 했다. ‘성공’적으로, ‘잘’ 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혼자 처음 마주한 서울은 너무나 차가웠고, 잔혹했다. 제주도에서는 대학만 서울로 가면 성공이라고 했는데, 나는 전혀 성공적이지 못했다. 평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었다. 공황은 이렇게 찾아온 것이었다. 내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닌, 사회의 억압이 작용한 결과였다. 나의 공황은 서울공화국에서 비서울 지역 사람들이 갖게 되는 서울이라는 지역의 허상과, 대학 이외의 가능성은 철저히 배제하는 사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발악이었다. 평생에 걸쳐 나라는 개인의 개성을 지우기를 강요받다, 21살이 되어서야 진정한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불안과 공황이라는 방식으로 찾아온 것이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과주의 사회에서 ‘잘’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회가 제시하는 성공이라는 정형화 된 틀에 부합하는 것일 테다. 그런데 이 ‘성공’의 폭은 너무나 좁다. 성공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재산을 얻는 것을 떠올린다. 또한, 나잇대마다 가장 이상적인 성공의 양상이 존재하고, 우리는 끊임 없이 그를 추구해야 한다. 하지만 이게 진정 ‘잘’ 사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내 성공의 기준은 사회가 아닌 내가 세워야 한다. 우리는 개인적인 노력만 있으면 ‘성공’이 가능하다는, 사회가 은연중에 주입한 희망론에 사로잡혀 자신을 학대하고는 한다. 이런 사회에서 혹사당하는 개인은 사회의 기준을 따라가기 위해 한없이 자신을 검열하고 비난하게 된다. 지배문화의 횡포인 것이다. 나 역시 이 횡포의 피해자이다. 나의 불안과 공황은 삶을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아니라, ‘잘’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온 친구였다. 다만 그 ‘잘’ 사는 것의 기준이 얼마나 폭력적이고도 무의미한지를 몰랐을 뿐이다.
이런 지배문화의 힘을 깨닫기 전까지 나는 불안과 공황에 약을 먹어야 하는 나 자신만을 원망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회가 제시하는 틀에 부합하는 것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말이다. 우리에게 희망 고문으로 제시되는 “고등학교만 가면.”,”대학만 가면.” 등의 명제들은 모두 부질없으며, 인생은 그 명제들에 관한 결과가 아니라 그 과정임을 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구분 역시 너무나 폭력적임을 안다. 어쩌면 ‘비로소’하고 기다리는 것들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며, 이 순간순간들이 내가 그토록 고대한, 비로소 찾아온 순간들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숨 막히는 지적 성장통 끝에 알게 되었다. 타인과 나를 비교하며, 보다 나은 미래만을 기대해서는 행복해질 수 없다. 이런 깨달음은 대학에서 인류학을 접하면서 왔다. 나를 죽도록 힘들게 한 것도, 결국에는 나를 구원한 것도 모두 사회였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득 왜 에스컬레이터였을까 생각해 본다. 나는 나보다 한참 높은 곳에 서 있던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단지 그가 나보다 위에 서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가 나를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내 밑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 이제야 이건 단순히 에스컬레이터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알겠다. 내 첫 공황이 에스컬레이터에서 찾아온 건 참 무서울 정도로 상징적이다. 끊임 없이 타인과 나를 비교하게 만드는 사회이다. 하지만 비교는 절대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비교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꼭대기에 간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성공을 추구하고, 계급에 얽매이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비로소’ 하며 찾아올 미래만을 고대하며 현재를 학대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울과 불안으로, 숨이 막히는 공황으로 삶을 버텨내야 하는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우리들의 잘못이 아니다.” 숨을 고른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손잡이를 움켜쥔다.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