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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May 07. 2023

대학원 병행 직장인, 팀장과 싸우다.

모든 게 서러웠던 날

대학원-직장 병행이라는 미친 짓

대학원 합격 후, 단축근로를 신청하고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일반대학원에 전일제 학생만 뽑는 학교 특성상, 내가 직장인이라고 공부를 덜 할 수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매주 주어지는 엄청난 양의 리딩 리스트를 소화하고 매주의 과제와 2~3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발제를 해내려면 하루에 3시간을 자도 부족했다. 거기에 강아지 돌보는 일에 애인까지 챙기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런 스케줄로 몇 주를 지내다 보니 얼굴과 마음이 전부 푸석해졌다. 화장을 한 게 언젠지 기억도 안 나고 얼굴에 뭐가 나도 마스크팩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그즈음 같이 사는 친동생에게 매일같이 뾰족한 말들을 했다. 직장에서도 그냥 다 짜증났고 맘에 안 들었다. 누가 이름만 불러도 속으로 "아 왜 또 불러"가 나오고, 내가 맡은 공동 업무를 마쳤냐는 질문에도 "그럼 안 했겠냐?" 같이 공격적인 말들을 삼켜가며 매일을 보냈다.


그러던 중 일이 났다.


난 충분히 잘하고 있거든

어느 날 아침, 사무실에는 8시에 출근한 나와 팀장만 있었다. 팀장도 나도 외근이 잦고 내가 단축근로 중이기에 팀장과 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던 터라 둘이 있는 것이 기회다 싶었다. 업무 관련하여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던 곳은 교육 사업을 운영하던 시립 시설이었다. 나는 교육 신청을 받고 강사들에게 교육을 배분해주는 업무를 하고 있었다. 몇 달간 근무하면서 교육 신청 시스템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교육 신청을 유선으로 받았는데 안 그래도 외근이 많은 내가 단축근로까지 하니 유선 교육 신청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그래서 교육 신청 시스템을  온라인 신청 폼이나 메일 등을 활용해야 누락, 혼선 등의 문제를 방지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던 참에 팀장과 둘이 있게 됐다. 잘됐다 싶어 위 이야기를 팀장에게 전달했다.

 "제가 생각해봤는데요."로 시작한 말은 "지금 그 얘기를 왜 하시는 거예요?"로 끝났다. 

팀장이 교육 신청에 대한 내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웬 생뚱맞은 대답을 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온도차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저는 단축근로 중인 ~~씨를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A사업도 ~~씨 없이 저희끼리 맡아서 진행 중이고요."  


안 그래도 예민했던 나는 폭발해버렸다. 팀장은 내 말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오히려 내게 뭘 더 바라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일이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으로 만들다니.


나는 단축근로를 하면서도 한 번도 내 일을 밀린 적도 없고 업무에 차질을 만든 적도 없다. 오히려 수없이 많은 회의를 소집하는 팀장에 맞춰 회의 준비를 해가고, 주말에 집에서 일을 해가면서 직장도 대학원도 문제없이 해내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었다. 정작 회의 준비를 안 해오던 건, 회의에 늦던 건, 주어진 업무를 듀 데이까지 마치지 못한 건 팀장이었다. 그래도 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나에게 저런 말을 한다고?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언제 일이 힘들다고 줄여달라고 했느냐, 나는 단축근로와 상관없이 더 나은 시스템을 제안한 것이다, 또 나의 단축근로로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단축근로에 직원들 모두가 동의했던 것 아니냐 등등 잔뜩 화가 난 채로, 아주 낮은 목소리로 팀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팀장은 당황한 티가 역력해져서 나를 달래려고 했지만 당연히 나의 화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대화를 어떻게 마쳤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씩씩대며 오전을 보냈고, 나의 저조한 분위기를 눈치챈 직원들은 내게 말도 걸지 않았다.


공부 좀 하겠다는데 서러워서 정말.

점심시간엔 팀장을 보는 것도 짜증나서 회사 밖으로 나왔다. 공원을 걷다가 공원 평상에 누워 하늘을 봤다. 가을 하늘은 높고 해는 쨍쨍했다. 자전거 타는 사람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 산책 나온 유치원생들이 꺄르르 거리며 내 옆을 지나쳤다.


갑자기 내 신세가 처량하고 서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나만 이렇게 힘들게 공부하는 기분이었다. 이 넓은 공원에, 이 세상에 나 혼자인 기분이었다. 왜 내 인생은 쉬운 게 하나 없을까. 내가 이렇게까지 돈을 벌고 이렇게까지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눈이 너무 부셔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글썽이던 눈물이 흘렀다. 


그대로 가만히 누워있다가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후다닥 일어나서 회사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후를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아무튼 퇴근 때까지 기분이 안 좋았다. 5시가 땡 하자마자 자리에 일어나 나서려는데, 아뿔싸. 카드지갑이 없다. 


주머니에 넣어둔 카드지갑이 사라졌다. 아마도 평상에 누워있을 때 주머니에서 빠진 모양이었다. 눕기 전에 주머니에 있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 공원으로 뛰어가 평상을 다 뒤졌다. 당연히 없었다. 공원에 있는 지구대에도, 공원 관리소에도 물어보고 주변을 다 뒤졌다. 역시 없었다.


왠지 카드지갑을 잃어버린 것도 팀장 탓인 것만 같았다. 팀장과 싸우지만 않았더라도 내가 공원 평상에 눕지 않았을텐데. 하면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투덜댔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카드지갑에 내게 유난히 특별했다. 당시의 애인이 나의 어린 시절 아픈 이야기를 듣고, 위로의 마음을 담아 선물해 준 거였는데, <Children should live in the peaceful world>라고 쓰여 있었다. 그 카드지갑을 받고 한참 울었던 것이 생각나서 더 서러웠다. 

오랜만에 보는 카드지갑, 이렇게 생겼었구나.



인성은 체력에서 나오는 거야

이렇게 사람이 힘드니까 별의별 부정적인 생각을 다했다. 누가 이름만 불러도 화가 나고, 평소였으면 침착하게 설명했을 일도 "왜 나한테 이래"하는 마음으로 뾰족하게 답변을 하고, 내가 잃어버린 물건에도 남 탓을 하게 된다. 아마 기억나진 않지만 이보다 더 한 일들도 있었을 게다.


그때의 나를 버텨주고 용서해 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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