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야속하지만 감사해
갑자기 불어닥친 일 앞에서
2주 전, 재밌어야 할 곳에서 갑자기 한 사건을 겪었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일이라 당시에는 상황을 파악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고 하며 상황을 파악하는 와중에 주변을 챙기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챙기느라 해결방식을 결정하기도 어려웠다.
다음 날, 그 다음 날이 되니 조금씩 사건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내 상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수치스럽고 화나고 짜증나고 역겹고 억울했다. 그러면서도 왜 당시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가, 왜 공동체니 주변이니 남을 챙기느라 나를 못 챙겼는가 하면서 나 자신이 바보천지 멍청이 같았다.
그런 와중에 사건을 해결할 루트를 결정하고 증거를 모으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필 그 시기는 내가 가장 바쁜, 가장 할 일이 많은 때여서 그전 주부터 긴장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계획된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나 자신도 싫었다. 이게 무슨 대수라고 일 하나 제대로 못해? 하면서 나를 원망했다. 그러면서도 억울하고 서럽고 힘들어서 갑자기 눈물이 죽죽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비빌 언덕이 있었기에
정신없이 휘몰아친 일정 속에서 비빌 언덕들이 여기저기 있었기에 2주를 버텨냈다. 내 일상을 살아냈다. 주변에 친구들은 "널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할 거야"라고,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응원해"라고, "너는 엄청난 지원군과 치어리더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줘"라고 말해줬다.
표현이 어려운 친구들은 기프티콘을 보내주고, 빙수를 사다줬다. 그리고 동생은 필요하다면 날 위해 기꺼이 적금을 깨리라 다짐을 보여주었다.
변호사인 친구는 선뜻 나의 법률대리인을 맡아주기로 하면서 이것이 나를 위한 '장학금'이라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을 주었다. 거기에 덧붙여 일상을 잃지 말고 열심히 살으라고, 일상을 살지 못했던 지난 1주는 내가 못나서가 아니었다는 꼭 필요한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내가 지난 2주를 버틸 수 있었던 반짝이는 순간들을 하나씩 기록하고 싶었다. 정신없고 너무 힘든 2주였는데 큰 무리 없이 살았다. 어떻게 가능했나 하니 주저앉은 자리에, 다시 뒤돌아 서면 저기에, 고개 돌린 그곳에 비빌 언덕이 있었다.
가끔은 비빌 언덕이 있다는 것이 야속하다. 20대 초반 언젠가, 이런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소설 '은교'에 나오는 "대륙을 횡단하느라 지친 어린 새"가 마치 나같이 느껴지는데, 나는 그냥 횡단하는 것도 아니고 내 날개 위에 커다란 돌이 얹어진 것만 같다고. 자꾸만 추락할 것 같고 날갯짓이 너무 버거운데 정신 차려보니 내 날개에 줄이 있어서 누군가 내 날갯짓을 돕고 있었다고.
그냥 줄을 놓아버리지, 그냥 돌이나 더 얹어서 추락하게 두지 왜 나를 도와서 살게 하는지 야속하고 서러웠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이게 내 삶인 것을.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날자, 하고 살다 보니 오늘이었다.
바람 잘 날 없는 내 인생이 버겁고 서럽지만 그래도 이 삶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내 날개의 줄, 나의 비빌언덕들 때문이다. 언제나 주변에서 나를 살펴주고 도와줘서 하루를 버티고 한 주를 버티고 한 달을 버텨 29살이 되었다. 이들에게 언제 빚을 다 갚나. 갚을 때까지 잘 살아야지.
인생이 야속하지만서도 복 받았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