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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Jun 14. 2023

직장-대학원 병행, 갑자기 궤양이 웬 말인고.

대학원 다니다 처음으로 운 날

직장과 대학원을 병행한 지 세 달째에 처음으로 크게 울었다. 


갑자기 궤양이라니, 무슨 말이야.

직장에서 시켜주는 건강검진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건강검진하는 김에 자궁경부암 검사를 같이 했다.

검사 시에도 눈으로 보기에 이상이 없었고 나 역시 딱히 큰 문제는 못 느꼈지만, 2년에 한 번 하는 국가 검진이니 그냥 받는 게 좋겠다 싶어 받은 것이었다.


일주일 뒤,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오라는 문자를 받았다.

내일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대음순이 약간 따끔했다.

심각하진 않아 그냥 뭔가 상처가 났겠거니 생각했고 내일 결과지 받으러 가는 김에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하루를 보냈다.


다음 날

씻을 때, 옷 입을 때, 걸을 때 따갑고 쓰라렸다.

뭔가 문제가 생겼겠거니 했지만 병원을 다녀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고 일주일 사이에 특별한 이벤트가 없었기 때문에 별 문제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병원에 가서 이야기하자 의사 선생님이 무슨 일이냐며 깜짝 놀라셨다.

지난주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일주일 새 어떻게 갑자기 궤양이 생겼냐고 하셨다.

'그것은 제가 묻고 싶은 것입니다. 선생님'


궤양? 단순 상처나 뾰루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궤양이라니.

난생처음 겪는 일에 깜짝 놀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의사 선생님이 바이러스 검사를 해야 하니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했고, 간호사는 내 무릎을 잡았다.


궤양을 벌려 작은 카메라를 넣어(뭔지 자세히 모르겠다) 사진을 찍고 궤양을 다시 벌려 면봉으로 무언가 채취하고 소독을 했다. 웬만한 아픔은 잘 참는데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지르고 못하겠다고 외쳤다.


이게 산부인과에서 진료 중에 제일 아픈 거라며 좀만 참으라고 다했다고 다독였지만, 간호사가 내 무릎을 토닥이며 진정시켰지만 등에서 땀이 흘렀다.


진료실에서 궤양 사진을 보여주었지만 봐도 뭔지 모르겠고 그냥 정신이 없었다.


선생님은 면역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으니 수액을 맞고 가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게 좋겠다고 대답하던 찰나에, 30분 뒤에 수업이 있고 마침 내가 발제라는 게 퍼뜩 생각났다.

"아.. 오늘 안 될 것 같아요. 제가 수업이 있어서요."

"대학원생이시죠? 스트레스도 많고 면역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잘 먹고 잘 쉬어야 돼요."


난 공부가 하고 싶었을 뿐인데

모든 의사가 하는 말.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잘 먹고 잘 쉬라는 말.

대학원생에겐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집에 돌아와 부랴부랴 노트북을 켜고 줌 수업을 준비하려는데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게 생각났다. 오후 2시가 되어가는데 먹은 게 없다니. 먹은 게 없는데 배고픈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냈다니.


급히 시리얼을 꺼내 우유에 말아 대충 떠먹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렇게 고생을 하는가 싶었다.


멀쩡하던 피부에 일주일 만에 궤양이 생기다니. 건강 빼면 시체였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시리얼 그릇을 싱크대에 던져버리고 거실에 앉아 눈물을 훔쳤다. 강아지가 와서 내 손을 핥았다.

맘 편히 울 시간도 없었다. 5분 뒤면 수업인 데다가 내가 첫 발제였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눈물을 참으며 발제문을 읽었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생각했다.

퇴사해야겠다.

내 몸을 더 이상 망칠 수는 없다.


일주일 뒤 다행히 궤양은 바이러스성이 아니고, 정말로 피곤해서 생긴 단순 포진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주일 동안 이상한 바이러스면 어쩌지, 하고 한참을 걱정했었는데 너무너무 안도했다.


그렇지만 한 편으로는 언제 또 어떤 병이 갑자기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그 뒤로는 잠을 자기 시작했다. 리딩을 다 못 했더라도 12시가 되면 그냥 잤다.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했지만서도 정말 공부를 하고 싶은데, 공부가 좋아서 온 대학원인데 열심히 할 수 없다는 게 너무 속상했다. 


그럴수록 생각했다.

퇴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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