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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 Oct 04. 2023

대학원생의 코로나

어쩌면 하늘이 내려준 휴가였을지도

정말로 쉬고 싶다.

"휴학하고 싶다."

휴학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를 입버릇처럼 말한다던 학부생들의 유머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학부생 때도 휴학을 고민해 본 적이 없고, 석사 때는 휴학이라는 제도가 없는 것 마냥 살았다. 

이러던 내가 박사과정 2학기에 난데없이 휴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공부도 재미없고 연구하기도 싫고 논문은 어떻게 써서 퍼블리시하는지 모르겠고.. 

주변에 이야기해봐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알지. 나도 알아. 다 다니기 싫겠지. 근데 나는 진짜란 말야!


잠깐 쉴까? 휴학하고 딱 1년만 일하다 올까? 교수님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허락해 주실까? 다녀와도 조교 장학금 받을 수 있을까? 


얻은 것은 휴학 대신 코로나

온갖 고민을 하던 차에 코로나에 걸렸다. 나름 경력자라고 몸이 안 좋을 때 바로 직감했다. 이건 코로나다.

셀프 테스터를 해도 계속 음성반응만 나오다가, 네 번째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하루동안 네 개나 해댔던 거 보면 코로나이길 바랐던 모양이다.


처음 이틀은 기침하느라 잠을 못 자고 열이 올라 힘들었다. 그래도 합법적으로 (원래도 불법이었던 적은 없지만) 누워있을 수 있다는 게 편안하고 좋았다. 


삼일째가 되자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를 정도로 몸이 회복하기 시작했고 나흘, 닷새가 되니 산책을 할 만큼 나아졌다. 



코로나라 쓰고 휴가라 읽기

몸이 회복하자마자 한 첫 번째 일은 집안일.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면서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냉장고, 냉동실 선반을 다 꺼내다 씻었다. 베란다 청소는 물론 베란다 창틀을 닦고 찻장에 안 쓰는 그릇, 뚜껑 안 맞는 반찬통도 정리했다. 손에서 걸레를 놓지 않고 여기저기 들쑤시다 보니 어느새 땀으로 몸이 젖었다. 샤워 겸 화장실 청소로 마무리.


반짝반짝 깔끔한 집 안에 누워 가을바람을 맞으며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이 소설, 저 소설 뒤적뒤적해보고 내가 문학을 읽은 게 얼마만이었나 지난날을 셈해보았다. 


코로나에 추석 연휴까지 겹쳐서 거의 열흘을 아무것도 안 하고 생산성 제로의 시간을 보냈다. 석사과정 때는 공부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연휴는 마치 쉬기만 해야 한다고 누가 정해둔 듯이 푹 쉬고 잠만 잤다. 편안하고 행복했다. 이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돌아올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지금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숨이 트이던지.


놀고먹고 쉬는 게 내 적성 같지만은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대학원인걸. 


어쨌든 이렇게 또 대학원의 고비를 넘기는구나.


고개를 넘어가듯 저마다의 고비를 넘고 있는 모든 대학원생들에게 위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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