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하늘이 내려준 휴가였을지도
정말로 쉬고 싶다.
"휴학하고 싶다."
휴학하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를 입버릇처럼 말한다던 학부생들의 유머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나는 학부생 때도 휴학을 고민해 본 적이 없고, 석사 때는 휴학이라는 제도가 없는 것 마냥 살았다.
이러던 내가 박사과정 2학기에 난데없이 휴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공부도 재미없고 연구하기도 싫고 논문은 어떻게 써서 퍼블리시하는지 모르겠고..
주변에 이야기해봐도 다 그렇게 생각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알지. 나도 알아. 다 다니기 싫겠지. 근데 나는 진짜란 말야!
잠깐 쉴까? 휴학하고 딱 1년만 일하다 올까? 교수님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허락해 주실까? 다녀와도 조교 장학금 받을 수 있을까?
얻은 것은 휴학 대신 코로나
온갖 고민을 하던 차에 코로나에 걸렸다. 나름 경력자라고 몸이 안 좋을 때 바로 직감했다. 이건 코로나다.
셀프 테스터를 해도 계속 음성반응만 나오다가, 네 번째 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하루동안 네 개나 해댔던 거 보면 코로나이길 바랐던 모양이다.
처음 이틀은 기침하느라 잠을 못 자고 열이 올라 힘들었다. 그래도 합법적으로 (원래도 불법이었던 적은 없지만) 누워있을 수 있다는 게 편안하고 좋았다.
삼일째가 되자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를 정도로 몸이 회복하기 시작했고 나흘, 닷새가 되니 산책을 할 만큼 나아졌다.
코로나라 쓰고 휴가라 읽기
몸이 회복하자마자 한 첫 번째 일은 집안일.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면서 구석구석을 청소했다. 냉장고, 냉동실 선반을 다 꺼내다 씻었다. 베란다 청소는 물론 베란다 창틀을 닦고 찻장에 안 쓰는 그릇, 뚜껑 안 맞는 반찬통도 정리했다. 손에서 걸레를 놓지 않고 여기저기 들쑤시다 보니 어느새 땀으로 몸이 젖었다. 샤워 겸 화장실 청소로 마무리.
반짝반짝 깔끔한 집 안에 누워 가을바람을 맞으며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었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괜히 이 소설, 저 소설 뒤적뒤적해보고 내가 문학을 읽은 게 얼마만이었나 지난날을 셈해보았다.
코로나에 추석 연휴까지 겹쳐서 거의 열흘을 아무것도 안 하고 생산성 제로의 시간을 보냈다. 석사과정 때는 공부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불안하고 우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 코로나-연휴는 마치 쉬기만 해야 한다고 누가 정해둔 듯이 푹 쉬고 잠만 잤다. 편안하고 행복했다. 이 연휴가 끝나고 일상이 돌아올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지금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숨이 트이던지.
놀고먹고 쉬는 게 내 적성 같지만은 어쩌겠는가. 내가 선택한 대학원인걸.
어쨌든 이렇게 또 대학원의 고비를 넘기는구나.
고개를 넘어가듯 저마다의 고비를 넘고 있는 모든 대학원생들에게 위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