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정 May 11. 2024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뿐이야.

그래서 대학원에 왔나 보다.

"내가 왜"라는 질문

내가 왜 대학원에 왔을까? 공부가 너무 좋아서.

내가 왜 공부를 안 할까? 공부가 너무 힘들어서.

내가 왜 이 브런치를 시작했을까?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서.



사실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다.

대학원을 그만두기로 어렵게 맘을 먹었지만 나는 사실 공부를 쭉 하고 싶었다.



대학원 생활을 벌써 햇수로 5년째 하고 있다.

정해진 기간이란 게 없고 더 긴 시간을 대학원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5년이 길다 말하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이 5년 동안 지쳤고 상처받고 힘든 상태였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너무 힘들 때였다.

학술적 글쓰기가 아니라 아무 글이라도 써봐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다시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힘들 때마다 와서 뭐라고 끄적였다.


대학원생활에 대한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너무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존버'가 언제나 좋은 게 아니란 것쯤은 아는 나이가 됐고 다른 길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맘을 먹고 나니 편안해졌다. 이 브런치에 들어올 필요도 없었다.


그러다 이 포스트잇을 발견했다.



책장을 정리하면서 온갖 클리어파일들을 버리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서 이 포스트잇이 나왔다.

언제 쓴 건지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한창 어피치를 좋아하던 때가 18~19년도였던 걸로 봐서 그즈음이 아닐까 싶다.


깜짝 놀랐다.

내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쓰려던 이야기가 정확히 저거다. 아이리스 매리언 영의 '사회적 연결모델'과 '정치적 책임' 이론으로 정책과정을 분석하는 것


사회적 연결모델: 미국의 정치철학자 Iris Marion Young이 제안한 모델로 개인과 사회 간의 연결을 설명한다. 상호연관성을 강조하면서 개인의 행동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결국 하나의 구조를 만든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에서 구조적 부정의에서는 선형적인 구도로 가해자, 책임을 찾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구조적 부정의를 초래하는 사회구조의 개별 행위자들의 행위가 모두 조금씩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책임: 구조적 부정의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으로 영은 구조적 책임을 강조하여, 사회적 구조와 제도가 불평등과 부당함을 생성하거나 유지할 때 해당 구조에 참여하는 개인과 집단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동 책임을 강조하여, 사회 구성원 전체가 공동으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하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의 가해자를 정하고 형을 받게 하는 법적 책임과는 반대되는 모델이다.



아 내가 대학원에 오기 전에도 이 문제의식이 있었구나.

아이리스 매리언 영도, 이론이나 개념도 몰랐지만 감각을 갖고 있었구나.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히 있었구나.

그리고 그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줄곧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다는 사실에 놀라우면서도 내가 왜 공부가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된 것 같았다. 나는 저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조금 슬프기도 했다.

난 꼭 저걸로 논문을 쓰고 싶었으니까.

대학원이 아니더라도 어디서든 하게 되겠지. 논문이 아니더라도, 학술적 글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라도 하게 될 거라는 확신도 생긴다. 이렇게 오랜 시간 내가 갖고 있던 이야기라면 사라질 리가 없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원생의 코로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