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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쁨의 강물 Jun 08. 2022

#12. 내가 어째서 승격 누락이야? (1/3)

당신의 베이스캠프는 어디입니까?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다면, 베이스캠프는 방향이 될 것이고

어떻게 가야할지 묻는다면, 지도가 될 것이고

계속 가야할지 망설인다면, 용기가 될 것입니다.

베이스 없는 정상은 없습니다.  

- POSCO 광고, 베이스캠프 편(2014) -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조직 개편으로 부서장이 바뀌었다. 그리고 나는 수석연구원으로 승격할 때가 되었다. 8년이라는 기간의 수고와 성과가 그대로 반영된 고과 평가 점수, 부서의 승격 비율에 따른 우선순위에 따라 주로 승격이 결정된다. 타 사업부 인사부서에 있는 후배는 걱정하는 나에게 상위 고과가 그렇게나 많은 높은 점수로 누락은 있을 수 없다고 큰소리로 장담을 했지만 내심 불안했다. 그야말로 나는 성골이 아니었으며 바뀐 부서장은 나를 모르며 지금의 업무는 딱히 분명하지도 빛나지도 않으니 불리한 위치에 있었던 것만은 사실이었다. 


[순간의 뒤처짐이 인생 레이스 결과는 아니다]


승격 발표 전날, 파트장을 통해 비율 50%로 두 명 중에 내가 누락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자연스럽게 다음 날은 휴가를 냈다. 그리고는 집에서 밤새 대성통곡을 하며 울었다. 8년이라는 세월동안 빛이 나도록 갈고 닦으며 정성껏 다듬어서 쌓아왔던 온갖 공들인 탑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고, 승급할 때마다 나는 왜 이리 평탄하지 않고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인지, 어떤 사람들처럼 좀 쉽게 가지 못하고 죽어라고 노력하고 고생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고 여겨졌던 삶 자체에 너무 화가 났다. 그리고는 이제까지의 크고 작은 실패들, 의도와 다르게 진행되었던 지난 일들이 금새 머릿속을 가득 꽉 채우고는 전부다 원망이라는 한 단어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랬더니 분노가 치밀어 올랐고 너무나 당연하게 삶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화살이 돌아갔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면서 온갖 인상을 다 쓰며 울음과 기도를 가장한 거친 항의로 화를 냈다. 발표일에 부서장으로부터 세 번이나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아니 받을 수 없었다. 미리 면담을 통해 어떤 이유에서인지 설명을 듣지도 못한 판국인데 당일에 내가 무슨 말을 듣겠으며 혹시 어떤 말을 들었더라도 거기에 무슨 말로 대답을 하겠는가 싶어서다. 객관적으로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되었으므로 이번 승격 누락은 그간 열심히 회사를 위해 충성을 바친 나의 모든 치열한 시간을 짓밟아 버리는 모독처럼 느껴졌다. 


장거리 장애물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순간순간의 고비와 위기를 넘고 또 넘었다. 실망과 좌절을 치열하게 가까스로 겨우겨우 싸워 이겨내며 장애물을 넘고서 이제 결승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일등으로 달리던 선수에게 심판이 갑자기 호루라기를 불더니 실격이라고 선언했다. 그 이유도 모르고 납득도 안 되는 선수는 어이가 없어 경기장을 터벅터벅 걸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누군가는 겨우 한 번, 겨우 일 년이라며 긴 레이스(Race)에서 조금은 천천히 가도 된다며 위로한다. 연봉은 높으니 가늘고 길게 가려는 전략이라고 바꿔 생각하라고 한다. 누군가는 결과는 아쉽지만 과정이 워낙 아름다웠으니 내년이 또 있지 않느냐고 나름의 위로를 해준다. 그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마음의 강물에서 좌절감은 씻겨 내려가지 않았고 강물 한가운데 있는 돌 귀퉁이에 찢어진 채로 걸려있는 종이배처럼 답답하게 거기에 머물러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딱히 분명하지도 빛나지 않는 위치에 있던 사람이 승격 누락 명분을 가지고 수면 위로 올라왔으므로 바로 잡아야만 했다. 함께 일다운 일을 만들어서 해보자는 상무님의 호의가 담긴 제안에 따라 새로운 업무와 조직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일 수도 있었지만, 나의 장기적 커리어 관점에서는 승격이라는 일시적인 보상보다는 값진 선물이라 여겨졌다. 아니, 아니다. 어쩌면 이런 선물은 승격 전에 당연히 양성 측면에서 받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신 배려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은혜라고 생각했다. 때로는 당연한 것도 긍정적으로만 해석하는 내가 속상할 정도로 바보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치열한 경기를 다시 시작하려고 마음을 고쳐먹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우며, 앞으로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새로운 업무가 또다시 어떤 배움을 주게 될까, 어떤 경험과 성장의 약이 될까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해냈다. 종이배 한쪽이 돌에 걸려 헤지고 찢어져서 너덜너덜 한대도 괜찮은 척 또 강물의 흐름을 따라 최대한 빨리 흘러 내려가려고 애썼다. 


[치열한 것은 오래 살아남는다]


이러한 치열함은 좌절과 절망을 겪어 낸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일상과 같다. 치열(熾烈)함이란, 어떤 기세나 세력 따위가 불길같이 맹렬함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와 고비를 겪어 본 사람만이 치열함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겪어냄으로써 터득하게 된다. 더구나 겪어냄으로 아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 치열함의 순간을 즐길 수 있는 힘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 『공병호의 사장학』이라는 책에서는 사장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태도로 진지함, 성실함, 치열함, 치밀함(꼼꼼함)을 이야기하면서 목표에서 결과로 나아갈 때 과정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면서 ‘태도는 여러분 자신의 결정이다.’라고 덧붙인다. 어떤 과정에 충실한 삶을 산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결국은 목표에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 위기 때마다 나를 붙잡아 주는 힘과 내가 치열하게 살도록 만드는 내면의 힘을 우리는 어김없이 모두 가지고 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이루고자 하고 있을 때 만약 정체기가 없다면 그건 내가 정말로 열심히 하고 있는지, 했는지를 한번쯤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했다. 정체기는 치열하게 순간순간을 살아내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증거와 같은 선물이다. 정체기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침체기가 아니라 일보 전진을 위해 결의를 새롭게 다지며 도약하는 방법을 점검하는 성찰기다. 정체기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각성의 시간이며 이전과 다른 도약을 위한 내면적 탐색기다. 바로 지금이 자신의 정체기라는 증거가 나타난다면, 어제의 나를 돌아보라. 그리고 오직 어제의 나하고만 경쟁하라. 그러면, 빛나는 내일의 내가 웃으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정체기는 한 마디로 앞만 보고 달려왔던 그 동안의 노력을 베이스캠프에서 점검하면서 목표를 다시 새기고 정립하는 시기다. 


나의 삶의 여정의 베이스는 꾸준한 성실함과 책임감이었다. 그리고, 언제든 공허하고 좌절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머물게 되는 베이스캠프는 바로 깊은 내면의 안식처에서 하나님과 함께 머물고 있는 시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지 않아도 머리가 좋아서 일등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언제나 듣는 소리는 ‘참으로 열심히 한다. 성실한 노력파다. 뭐든 끝까지 해낸다.’ 와 같은 종류의 말이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닌 척, 모르는 척하면서 여태껏 외면하고 숨기면서 살았었다. 그런데, 내가 외면한 그 힘은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물을 때마다 묵묵히 나의 길을 가라고 말해 주었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물을 때마다 묵직하게 들려오는 내면의 해답이었으며, 망설이다 멈추려 할 때마다 언제나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서 시작할 발판의 힘이 되었다. 


당신은 어떠한가. 지금 어떤 위치에서 누구와 함께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상황이 어떻든 그건 상관이 없다. 그저 당신은 삶이라는 인생의 산꼭대기를 향해 오늘도 고군분투하며 앞으로 한걸음씩 내딛으며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런 당신을 움직이게 만드는 베이스는 무엇인가. 인생이라는 산에서 당신이 필요할 때마다 또는 어느 시기가 되면 언제든 돌아오게 되는 베이스캠프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당신의 베이스는 당신이 떼어 내려 해도 뗄 수 없는 자신의 싫어하는 모습 속에 감추어져 있는 진주일지도 모른다.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길에 너무나 가깝고 당연하고 항상 거기 있어서 지나쳤던 곳이 베이스캠프일 수도 있다. 베이스캠프는 정상에 오르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다 해도 좌절하지 않고 잠시 일보 후퇴해서 절치부심하며 다시 정상을 넘보며 머무는 내 마음의 안식처이자 에너지 충전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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