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가 어째서 승격 누락이야?(2/3)
[진심은 상황을 바꾸는 마스터키는 아니지만, 나를 세운다]
새로운 업무와 조직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에 팔로우 업 했던 업무의 인수인계 회의가 끝난 후 나는 사무실 전화 부스에서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함께 일하게 될 새 리더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밀려오는 억울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약간 상기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꼬박 일 년을 설계자와 함께 업체별 설계에 사용되는 툴을 비교 분석 정리해서 결과 보고만을 바로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바지 결과 보고를 그냥 그대로 놔두고 몸만 새로운 조직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일의 마무리까지는 하고 싶다는 간절한 요청도 묵살되었다. 다른 부서로 가는 것도 아니고 바로 옆 파트로 이동하는데, 마치 새엄마가 콩쥐를 쫒아내듯 하고 있었다. 바로 눈앞에서 빼앗기는 황망함과 이제까지 같은 편에서 돌변한 태도, 제대로 마무리 짓고 싶은 마음, 그리고 마음 귀퉁이에서 결과를 놓고 싶지 않음이 서운함과 억울함이라는 감정에 버무려져서 자기를 알아달라고 꿈틀대고 있었다. 그런데, 핸드폰 너머에서 ‘그냥 놓고 와도 된다. 그 일을 해왔던 사람이 나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라고 얘기하셨다. 그렇다. 조직 개편이었지만 업무 셋업을 위해 여러 인원을 갑자기 빼앗긴 셈이었던지라 그분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을 수도 있지 싶어서 마음을 내려놓았다.
여러 명이 업무의 변화를 겪는 새로운 조직은 노이즈를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그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업무 셋업에 대해 진급 누락에 대한 방어적 조치가 아닌 ‘H 상무님이 나를 예뻐하신다.’는 소문이 돌았다. 업무 변화를 함께 선택한 사람들과 조직에서 잘해내고 싶었다. 성과도 성과지만 즐겁게 일하고 싶었다. 기존의 PCB 설계 실력이 세계 최고였음에도 많은 개발자들이 기능이라고 치부하며 설계 변경사항을 전달 과정에서 존중보다는 당연하게 요청하는 모습과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한 업무 강도에 비해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안타까웠다. 더구나 자신의 기술력에 대해서도 자부심보다는 스스로 낮은 평가를 하는 듯 했다. 그래서, 리더 뿐 아니라 유관 부서로부터도 인정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설계 데이터 검토 업무를 셋업하며 이미 운영 중인 기존 파트와 새로운 구성원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업무를 조율해야만 했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층을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반복하고, 작은 일도 협의, 보고, 전달하면서 의견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혹시나 내가 잘못 결정하면 어쩌지? 하는 조마조마한 불안이 안개처럼 항상 있으니 긴장감을 늦출 수는 없었다. 구성원들은 설계 전문가였지만 나는 아니었다. 그들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자 해서 기존 업무에서 스스로 모험하며 선택한 업무였기에 리더로서 업무의 안정성을 만들면서 성과도 만들어야만 했다. 책임감과 성실, 친절함과 능력을 가진 열 명의 전문가들이 작은 쪽문의 문지기인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아서, 함께 위험을 감수하며 하루하루의 고비를 넘겨갔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단단한 터전이 없는 신생아 리더와 그 시기를 함께 해줬던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고마움이라는 따뜻한 기운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어떤 전문성일지라도 혼자의 노력으로 생긴 독립적 산물이 아니라 함께 했던 사람들 덕분에 얻게 된 사회적 합작품임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다. 순간순간 덕분에 하루도 무탈하게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감사함이 올라오고 더욱 겸손함으로 정진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긴다.
식물의 뿌리가 점점 깊고 넓게 뻗쳐감에 따라 화분의 흙은 더 단단해지고, 어느 정도 자라면 화분으로 분갈이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업무의 영역도 넓어지고 깊이를 더하면서 조금더 크게 분갈이도 되었고, 업무는 점점 단단해지면서 터전을 잡아가면서 다른 업무도 통합됐다. 보통은 한 파트에 하나의 업무가 전문적으로 다뤄지는데 우리는 서너 개의 다른 영역에다가 근무 지역이 다른 영역도 있었다. 기존에 다양한 영역을 다룬 경험이 있었지만, 내부에서 서로 다른 영역이 협업을 하면 누가 결과 보고서를 정리해서 결재를 상신하느냐에 예민해지기도 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인 촉석봉정(矗石逢釘)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두더지 망치 게임의 두더지가 될까 싶어서 주변인들의 눈치를 보거나 대세에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일에만 집중하고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 타인의 시선 따위를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지니 낭중지추(囊中之錐)처럼 주머니를 송곳이 뚫고 나와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이것이 거슬렸고 마음에 안 들었나 보다. 본래 내 의도와 관계없이 진심 어린 노력이 타인에게는 사심으로 비쳐질 때도 있다.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에서 의도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하는 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다. 그럴수록 더욱 진정성을 갖고 진심에 체중을 실어 나누고 공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전혀 딴판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진심이 상황을 바꿀 수는 없으며, 마스터 키도 아니다. 그러나, 진심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당당하게 세워준다.
[원한의 크기보다 더 큰 원을 만들다]
어느 날 오후에 K 상무님이 부르셨다. 사업부장 사장님께서 전화를 하셨단다. 누군가 사업부장께 문자를 보냈는데, 2년 전에 황망하게 눈앞에서 빼앗겼던 그 업무에 대한 얘기다. 설계 툴 비교 검토 결과로 모든 성과는 나 혼자 모두 가져가고 정작 설계자들은 툴 변경으로 고생을 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상무님은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전해준다고 하셨다. ‘괜찮다. 그럴 수 있다. 회사 생활하다 보면 별일 다 있지 않느냐’고 하시며 애써 진정시키려고 하셨다. 아니, 이런 클레임을 인사팀도 아닌 사장님으로부터 듣는다는 것도 황당했으며, 혹시 내 이름을 기억하면 어쩌지 싶고 앞으로 회사 생활은 내 생각과 다르게 불명예스럽게 끝날 수도 있겠구나 싶어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이제껏 이십년 동안 어떻게 하면 회사의 미래에 유익한 도움을 제공해줄까에 기준을 두고 사람들을 설득하여 결정하고, 욕 먹어가면서 혁신과 추진을 했던 모든 수고로운 과정의 회사 생활이 정말 한순간에 비눗방울 터지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야말로 맑은 하늘에 날벼락과도 같았다. 갑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서워져서 눈앞이 깜깜해졌고, 충격으로 인해 얼굴은 석고상처럼 굳어가고 낯빛은 거멓게 변하고 머리는 텅 비어져서 한마디로 정신이 나가 버렸다. 그러더니, K 상무님 앞임에도 불구하고 두 눈에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계속 흘러내렸다. 화장실에서도 한참을 울다가 자리에 앉았는데도 도대체 눈물은 멈추지를 않았다. 그렇게 두 시간이나 지났다. 상무님께 전화가 왔다. ‘너 이러면 안 되겠다. 밖으로 나오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사업장 밖에 있는 길거리 모퉁이 작은 카페에서 음료 한잔을 사주셨다.
며칠 동안 멍한 채로 업무 상 최소한의 의사소통을 제외하고는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회사를 버리는 거지, 회사가 나를 버리게 되는 상황은 상상도 못했었는데, 이 때 처음으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에서 회사를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이 연극이 아닌 실제 현실로 그제야 보였다. 나에게는 무서운 모함이고 음모였고 큰 충격이었지만, 누군가는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생각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그럼에도 마음 한쪽 귀퉁이에서는 삶이라는 하나님이, 어떤 큰 존재인 우주가 인생 레이스를 달리는 나에게 주는 옐로우 메세지 카드와도 같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부끄러웠고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 후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사내 오픈 게시판에 글이 떴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게시판 글 봤어? 아니 이거 몇 년 전 이야기를 이런 근거도 없이 올리는 사람이 있냐? 설계자는 아니네.’ 하고 여기저기서 글쓴이를 비난하며 웅성대기 시작했고, 나는 조용히 그 글을 읽고는 화면 그대로를 캡처했다. 글을 읽으면서 직감적으로 글쓴이의 정체를 알아차렸고, 그렇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순간에 슬며시 자기 자리로 이동하는 한 사람을 보았다. 그리고 몇 분후에 게시판에서 글은 삭제되었다. 사장님의 전화 이후로 K 상무님은 실제 설계자들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일대일 전체 면담을 시작하셨다. 함께 툴 검토했던 설계자에 대한 이야기도 들리고, 평소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C가 유력한 후보에 올랐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그런데, 그들은 아니었다. 아님을 알았지만 나는 모르는 척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이후로 편하게 인사하며 지냈던 설계자들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홀로 피해서 멀리 돌아가기도 하고, 10년 넘게 함께 일했던 툴 업체 엔지니어와는 오고가며 만나도 반갑게 인사를 하지도 않고 커피 한잔을 마시지 않았다. 혹시 함께 있는 모습이 어떤 비리로 오해 받기 싫어서 였다. 그러면서 내심 지난 세월동안 만날 때마다 내가 커피를 사서 얼마나 다행이냐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무서워서 마음도 피하고, 몸도 피해 다녔다. 글쓴이는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걸기도 하고 업무로 함께 잠깐씩 일하기도 했다. 물어보고 싶었다. 지난번에 협업한 결과 보고서의 본문에 분명히 글쓴이의 역할과 이름이 들어갔었는데도 다른 사람이 상신한 것이 그렇게 맘에 안 들었냐고. 그리고, 지속적으로 크고 작게 다른 사람들을 곤란하게 말을 만들어서 괴롭게 할 때마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야비하게라도 드러내야만 하는 구나, 저런 방법을 자꾸만 선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밉다기보다는 측은지심이 생겼다.
대학 1학년 첫 중간고사 기간에 전철 첫차를 타기 위해 걸어갈 때, 츄리링을 입은 정신질환 환자가 나를 따라온 적이 있었다. 내 뒤에서 걸으면 함께 걷고 뛰면 함께 뛰면서 20분 정도를 나를 쫒아 왔다.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너무 무서웠다. 청소부 아저씨가 보여서 ‘도와주세요.’ 하고 말하면서 뛰다가 보도블록의 턱에 걸려 넘어졌다. 아저씨는 모른 척 했다. 사람이 보이자 그 환자는 도망갔지만 너무 크게 놀라서 시험은 망쳤고, 사람들이 무서워서 전철을 탈 수 없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원망하지 않았다. 하나님께 맡긴다고 하면서 내 마음의 상처가 아물도록 돌보아 주지 않고 그저 참고 견디면서 그대로 방치했다. 나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하는지를 몰랐으며, 때로는 오히려 나에게 해를 끼친 상대를 걱정하고 배려했다. 이러한 태도는 나 스스로에 대한 무책임이며 방임이었다.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나의 마음과 감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고, 변호하거나 어떠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온전히 수용되지 않고 남아있는 감정적 찌꺼기가 흉터로 남아서 나 스스로를 공격하며 삶에서 내가 어떤 문제를 처리하는 암묵적 패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여름날에, 당시 오해를 받았던 설계자 C와 함께 1년을 검토했던 B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요청을 했다. 만나서 당시 이슈에 대한 솔직한 나의 상황과 심정을 말했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알았지만, 마음이 자유롭도록 내가 좀 더 일찍 풀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모두 괜찮다고, 잊었다고 했지만 그 이후로 나는 마음의 걸림이 없어져서 가벼워지니 다른 설계자들과도 인사도 할 수 있었고 눈도 마주칠 수 있었다. 글쓴이가 다른 조직으로 이동하면서 술자리에서 문자 보내고 게시판에 쓴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했다는 소식도 전해 들었다.
류시화 시인의 『시로 납치하다』에 소개된 에드윈 마크햄(1852-1940)의 ‘원’이라는 시처럼 내가 살아내기를 소망한다.
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그러나 나에게는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
원한을 품고 나를 원 밖으로 밀어낸 사람에게 그 원한보다 더 큰 원을 그려 놓고는, 사랑과 지혜가 가득한 원 안으로 나를 밀어낸 그를 초대하는 사람이 세상을 원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를 밖으로 밀어낸 그도 나와 같음을, 내가 그보다 더욱 못함을 알아차릴 때에야 나는 원을 더욱 크게 그려서 그를 초대할 수 있다. 이렇게 더 큰 사랑의 원, 극복할 수 있는 더 큰 지혜의 원을 그려가면서 사는 원만한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