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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지마 Oct 19. 2023

수습 뗀 아기변호사의 첫 출정에 대하여

이때 당신이 어디 앉아야 하는지 서술하시오

내가 수습을 떼고 나서 첫 취업했던 펌의 대표님들은 성격이 나쁘다가도 좋은... 그런 분들이셨다. 뭐만 물어보면 알아서 하라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자기들이 봤을 때 내가 전혀 모를 것 같은 건 일부러 불러다 말해주기도 하셨다. 2021년 1월이었나, 그때까지도 내가 담당하던 사건들 중 기일이 잡힌 게 없자 돌연 복대리 사건 하나를 주시더니 가서 종결만 구하고 오면 되니까 부담 없이 첫재판으로 나갔다 오라고 하시면서 법정에 문열고 들어가는 법부터 나와서 문닫는 법까지 알려주셨다. 


근데 이거 모르는 채로 재판 가면 정말 울고 싶음.


*2023. 10. 20. 트위터 친구 v님의 도움으로 몇 가지 추가했습니다(가처분취소, 지각 등)




1. 기일 및 위임장/선임계 확인하기


전에 한 번 변호인선임계 안 들어간 거 알고 그날 아침에 사무실 뛰어가서 실장님!!!!!!!! 하고 급하게 뽑아간 적도 있다. 민사사건이면 그냥 사무실에 전화해서 전자소송으로 넣어주세용. 하면 되는데 형사소송 전자화는 아직도 요원하다보니... 


법무법인의 경우, 대리인/변호인으로 '법무법인'을 선임하는 것이라 '담당변호사 지정서'만 넣으면 되는데, 법률사무소의 경우 그곳에 소속된 변호사들을 하나하나 선임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내가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이를테면 내가 2023. 4. 1.에 입사했는데 2023. 1. 1.부터 진행되어 오던 사건이면 변호사 로지마에게 위임하는 위임장이 안 들어가 있을 수도 있겠지. 이런 건 통상 '실장님'이 알아서 해주시긴 하는데, 재판 가서 기절하기 싫으면 내가 한 번 더 확인해야 한다. 만일 담당변호사지정서 없이 출석한 걸 깨달았다면 오늘 내에만 제출하겠다고 한 번 빌어보자. 상대방 대리인이 양해해주면 당일 내에 제출하는 걸 조건으로 재판이 진행되기도 한다고 트위터 친구 v님이 말씀해주셨는데, 재판장 성향에 따라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지 싶다. 난 경찰서 조사입회 갔을 때 깜박하고 안 들고가서 사무실에 전화해서 팩스로 넣어달라고 한 적은 있다(원칙적으로는 팩스로는 안 되긴 하는데, 아주 까탈스럽지 않은 이상에야 경찰서에서는 팩스 선임계 정도는 넘어가주더라고).


그리고... 법원 위치... 수원가정법원은 수원지방법원 옆에 있지 않았고... 뭐 그런 것들을 잘 체크해두자... 서울에서 출발하는 지방재판이면 내가 예매한 티켓이 서울역/용산역/수서역 중 어느 역에서 출발하는 것인지, 고속버스터미널인지 동서울터미널인지 같은 것도 확인하고.... 당신의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농담 같죠? 제가 늦잠 자서 택시기사님이랑 어느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는 게 나은지 토론한 적이 있다는 것도 농담 같죠?


그리고 긴장 빡 하고 다닐 땐 그런 일이 별로 없는데, 간혹 기일을 놓치는 경우도 없진 않다. 이때를 위해서 로탑 구글캘린더 케이스마스터 기타 보조도구를 잔뜩 준비해놓자... 



2. 법정에 들어가기


법원마다 상당히 다른데, 쪼끄만 지원이나 시법원처럼 들어가자마자 1층에 민사법정. 형사법정. 심하면 법정. 이런 식으로 덜렁 있는 곳도 있지만 서울중앙지방법원처럼 건물이 수 개 있어서 그 안에서 건물과 입구와 법정을 찾아가는 게 일인 곳도 있다. 솔직히 난 아직도 중앙지법은 길 잘 못 찾는다. 중앙을 제외하면 어려운 곳은 없었던 것 같은데, 중앙이면 어딘지 꼭 확인하자... 이러다 몇 분 늦어서 불출석 처리될 뻔한 적도 있다. 4별관이 웬말이냐... 허... 교대역에서 거기까지 뛰었더니 재판 끝날 때까지 숨차더라...; 심지어 중앙처럼 '0관 0번출입구 이용' 까지 붙으면 외워서 가는 건... 난 안 되더라고... (다녔던 회사들이 어째 중앙재판이 거의 없었음)


건물에 들어갈 때 가방검사대와 금속탐지기가 있는데(작은 시군법원급에는 없기도 함), 변호사 배지를 달고 있으면 몸수색(금속탐지기로 훑는 것)은 안 한다(ㅋㅋㅋ) 혹은 변호사신분증을 제시할 수도 있다. 혹은 누가봐도 지친 변호사 같으면 안 한다...


아무튼 들어갔으면 법정을 확인하자. 요즘은 대부분의 법정 앞에 사건번호와 시간, 진행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전광판이 붙어있다. 오늘 간 시법원은 아직 전광판이 없어서 종이로만 붙어있긴 했다. 그럼 그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멍하니 기록이나 쳐다보고 있으면 된다. 담당 경위님들마다 조금 다르긴 한데, 미리 나와서 "2023가단0000 사건 대리인 나오셨나요?" 하고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신다. 만일 내 앞 재판이 조금 일찍 끝났는데 내 사건 상대방 당사자나 대리인도 나와 있으면 바로 진행할 수 있으니까 먼저 확인해두시는 듯하다. 


만약 늦는다면 상대방 변호사사무실에 전화해서 죄송한데 좀 늦는다고, 담당변호사님께 전달해서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말씀드려주실 수 있냐고 얘기해보면 된다. 오늘 우리 사무실도 이런 전화를 받았는데, 담당변호사님들이 연락을 안 받으셔서 상대방 대리인 불출석될 뻔했다...ㅋㅋ...(다행히 우리 사건이 같은 시간대 재판 중 가장 늦게 진행됐고, 그새 상대방 대리인도 오셨다는 듯) 만일 연락이 되지 않거나 상대방이 나홀로소송을 진행하는 당사자라면 재판부에 전화해보면 되는데, 재판이 있는 날의 재판부는 전화를 거의 못 받는다(다들 재판 중이니까;). 그럼 옆 재판부에 얘기해서 전달해달라고 요청해볼 수도 있다.


약간 일찍 들어가 있자. 문 열고 들어가서 법대를 향해 목례를 하는 게 예의이다(원래는 법정에 대한 예절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판사에 대한 예의가 된 것 같다ㅡㅡ). 참고로 어떤 판사들의 경우 목례 안 하는 변호사를 검색해보기도 한다고; 검색해서... 뭐에 쓰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목례하고 방청석 적당한 곳에 앉아서... 그냥 다시 기록을 보자... 경위님이 와서 무슨 사건 왔냐고 물어보면 사건번호랑 어느쪽 대리인인지 정도를 이야기하면 된다. 


첫 재판일 경우 조금 일찍 가서 앞 사건들의 진행을 보는 것도 괜찮다. 수습을 잘 키워주는 대표나 선배들이 있는 펌은 볼 만한 재판이 있으면 수습들을 데리고 다녔을 텐데, 그런 경험이 없으면 대충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미리 가서 앞 사건 2~3개 정도 구경하고 있으면 좋다. 


형사사건의 경우 피고인(의뢰인)을 데리고 가야 하는데, '법정 안에서 이야기하지 말 것', '휴대전화 무음으로  바꿀 것', '들어갈 때 목례하고 나올 때 목례할 것' 정도를 얘기해두면 좋다. 의뢰인한테 떠들지 말라고 이야기해뒀는데 갑자기 나한테 너무 길게 말 걸어서 쫓겨날 뻔한 적도 있었다. 으아아



3. 출석하여 자리에 앉기


때가 되면 재판장이 "사건번호 2023가단0000 원고 000 피고 000"하고 사건번호와 당사자를 말한다. 그럼 나가서 자리에... 앉지 말고 서 있자. 그럼 재판장이 "원고측 누가 나오셨나요" 하고 확인한다. 그럼 "(법무법인 소속변호사의 경우) 법무법인 00의 변호사 000 출석했습니다" 혹은 "(법률사무소 소속의 경우) 변호사 000 출석했습니다" 혹은 "(복대리의 경우) 복대리로 변호사 000 출석했습니다"라고 하면 된다. 피고측까지 확인이 끝나면 재판장이 자리에 앉으라고 하니 그때 앉자. 


그 전에 '어디에 앉는가'... 저년차 변호사들 오픈카톡방에서 자주 나오는 이슈이다(진짜임). 사실 먼저 앉고 말고를 떠나서 이게 더 어렵다. 1심 원고피고 자리는 아무도 안 헷갈린다. 판사와 마주보는 자리에 원고석 피고석 딱 보이니까(실수로 검사/피고인석에 앉지만 않으면 된다. 어차피 위치가 아예 달라서 이걸 헷갈릴 일은 별로 없다). 가처분 심리기일이 있을 경우 채권자 채무자 대리인으로 나가기도 하는데, 그것도 원고석 피고석과 똑같지. 근데 피고가 항소를 한 경우 원고(피항소인) 피고(항소인)... 피고가 항소했으니까 원고 자리에 앉는가? 이런 질문이 시작되면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이다(답: 그냥 1심 원고 피고 기준으로 앉으면 됨). 그리고 트위터 친구 v님이 하나 더 알려주셨는데, 가처분취소 사건의 경우 취소를 신청한 자가 원고 자리에 앉는다고 한다. 곧 할지도 모르는데 정말... 정말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이건 생각도 못 해봤거든.

그렇다면 보조참가인은 어디에 앉는가?(답: 원고보조참가인이면 원고 옆, 피고보조참가인이면 피고 옆)

그렇다면 형사사건에서 성범죄피해자변호사의 경우 어디에 앉는가? (답: 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ㆍ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 제5조 (피해자 변호사의 좌석) 피해자 변호사는 법관의 정면에 위치한다. 근데 명시적으로 '피해자 변호사' 자리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없으면 검사 부근의 가장 가까운 방청석 자리에 앉아서 재판장이 혹시 피해자 변호사 출석했냐고 물어보면 출석했다고 대답하면 된다고 하는데, 아직 성폭력피해자변호사로 기일에 출석해본 적은 없어서 확인하진 못했다)

게다가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을 데리고 가면 내가 법대 가까이에 앉아야 하는지, 피고인을 법대 가까이에 앉혀야 하는지도 고민이 된다(답: 변호인이 법대 가까이에 앉으라고 재판장이 시켰음. 공동피고인이 있는 경우 이름 부르는 순서대로 변호인1-피고인1, 변호인2-피고인2 순으로 앉았음).


이 이외에도 또 어려운 것들이 있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정 모르겠으면 가장 뒷줄에 앉아 있다가 기록 챙기는 척하면서 늦게 일어나면 된다. 그럼 상대방 대리인이 먼저 가서 자기 자리에 앉는다. ㅋㅋㅋ 고맙습니다 선배님들



4. 재판 진행되기


아무튼 자리에 앉았으면 재판장이 이것저것 진행한다. "원고측 2023. x. x.자 준비서면 진술하시고요", "피고측은 원고측의 2023. x. x.자 준비서면 송달 못 받으셨나요? 원고측 앞으로는 좀 더 빨리 제출하도록 하세요"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재판장은 미진한 부분에 대해 묻기도 하고, 추가로 제출할 서면이나 입증계획 등에 대해 묻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할 말은 짧게 하면 된다. 확실하지 않은 걸 잘못 말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만드느니, 정확하지 않으면 "추후 준비서면으로 제출하겠습니다"라는 매직의 문장만 떠올리면 된다. 갑자기 재판장이 모르는 걸 물어볼 때가 있기도 한데, 난 갓 수습을 뗐을 때나 갓 이직을 했을 땐 "선임된 지 얼마 안 돼서 그 부분은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당사자와 이야기한 후 추후 제출하겠습니다" 같은 식으로 둘러댄 적도 있었다. 사실 많았다.  ...... 


그리고 서면을 잘못 낸 경우, 이때 정정하면 된다. 나의 경우 의뢰인들에게 확인시키는 용도로 '이 부분 확인 요'와 같은 각주를 달아놨다가 그대로 내버려서 '각주 1은 진술하지 않는 것으로 해주십시오'라고 한 적이 있다. 그럼 조서에 그렇게 진술한 걸 남겨주신다.


사실 1~2년차에는 뭔가 많이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구두변론주의고 뭐고 간에 실제로는 기일에 말로 뭘 많이 하기가 어렵다. 일도 많은데 거기서 말 많이 해봤자 서로 기억도 못 한다. 간단하게 내고 서면으로 자세히 내는 게 낫지. 재판장도 별로 안 좋아하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상황에 따라 정리하자.


그럼 다음 기일을 잡는다. 재빨리 플래너를 꺼내서 확인하자. "2023. x. xx. 오전 시간 괜찮으신가요"라고 하면 내 일정 보고 체크하면 된다. 나중에 바꿀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서로 시간 조정하기도 어렵고 기일변경신청이 불허나는 경우도 있으니 지금 잘 확인해두는 게 좋다. 나와 거리가 상당히 먼 지역의 재판인 경우 "제가 어디서 오는 것이라 오전은 조금 어려운데 혹시 오후는 안 될까요" 같은 말을 해도 괜찮다. 이때 신경쓸 건 '내가 이 사건 준비하기까지 얼마나 걸릴 것인지'와 '의뢰인이 괜찮다고 할지(?)' 정도이다. 다음 기일에 간단한 반박 준비서면 하나만 내면 되면 좀 빨리 잡아주십시오 하는 거고, 오만가지를 다 수집해서 심혈을 기울여야 하면 그런 사정을 밝혀서 늦게 잡을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저 그날 재판 있어요 저 그날 조사입회 있어요 하면서 재판장이 잡아주는 기일을 죽죽 늦춰도 되고.



5. 나오기


기일을 정했으면 가라고(?) 한다. 그럼 살짝 목례하고 방청석으로 나오고, 문 밖으로 나오기 전에 문 옆에서 목례 한 번 하고 문 조용히 열고 나오면 된다. 혹시 수고하셨다고 인사해주시는 상대방 변호사님 계시면 같이 인사하면 된다(딱 한 번 뵈었음).


그럼 이제 슬쩍 노가리 까다 복귀하면 된다.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사무실에 보고할 것 있으면 하고, 지방재판이면 특산물(대전재판 갔는데 성심당을 들르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을 사서 복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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