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로 좋았음 근데 모두에게 좋을지는 모르지
나는 혼자 단독법률사무소로 개업하거나, 별산으로 들어가거나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친구가 어쏘로 일하는 사무실과 이야기가 잘 돼서 방 하나 쓰는 식으로 별산으로 들어오게 됐다. 5개월차, 있어보니 생각보다 좋다.
일단 장점.
1. 사무실을 비워도 안 불안하다.
나는 어쩌다보니 개업과 계엄이 겹쳐서(;;) 사무실을 비워놓고 밖으로 나돌아다닐 일이 많았다. 평일에도 맨날 동십자각 서십자각 돌아다니고 있으니 희망법의 박모 변호사님이 나더러 "일 안 해? 왜 맨날 여기 있어?"라고 물어보셨다. 아니 일이야 핫스팟 잡아서 여기서 해도 되는 거지; 그러는 당신도 여기 있잖아!!
근데 문제는 전자소송화되지 않은 영역이 충분히~ 있다는 것. 그리고 의뢰인이 원본으로 보내야 하는 서류는 등기로 온다는 것. 이런 것들을 직원 분들이 받아주신다. 살다보면 며칠씩 사무실에 못 갈 일이 있는데, 우체국 직원분이 등기 못 받았으니 내일 올게요~ 하고 붙여놓고 가신 딱지가 바람에 날려 사라졌을까봐 불안해할 일이 없다. 법원등기는 당사자나 사무직원이 아니면 안 주는데, 그런것도 다 받아주시니 너무 좋다(이게 공유오피스의 단점이다. 법원등기를 못 받는다고 한다 ㅠㅠ).
*이건 물론 사무실마다 다르긴 하다. 우리 회사는 별산이어도 다같이 잘 지내는 분위기인데다가, 그정도는 해주시기로 하고 들어간(?) 거라서 해주시기도 한데, 다른 곳은 어떤지?
**요즘 법원 앞 공유오피스들은 리걸서비스라고 해서 변호사들이 필요로 하는 걸 맞춤으로 뭔가 해준다고들 한다. 근데 뭘 어떻게 해주는지는 못 들어봄. 법원등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건가?
2. 처음부터 모든 비품을 갖추고 시작할 필요가 없다.
처음에 사무실 차리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하다. 책상 책장 컴퓨터 모니터 내 머리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헤헤 하고 생각하기엔ㅋㅋ 테이블 정수기 복합기ㅋㅋ 그리고 또 많은 것들... 이미 준비된 곳에 월세만 내면 다 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수가 없다. 사랑해요 대표님. 집회 다니다가 만난 모 시민단체 상근자랑 이런 얘기를 했더니 그가 나더러 "혼자 개업하면 복합기가 뭐야, 금속활자 찍어야 돼"라고 했다. 하하. 금속활자 하니까 생각나는데, 예전엔 의뢰인 도장 없을 때 의뢰인 이름 한 글자씩 조합해다가 만드는 조립식 도장이 있었다(요즘도 오래된 사무실 가면 있다). 요즘은 도뉴로 만들면 되지, 옛날엔 돋보기 끼고 집게로... 마 임마 나때도... 수습 시절 사무실엔...
*물론 사무실마다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진 계약에 따라 다르다. 생각해보니 나도 빨간종이 파란종이는 써도 되는지 얘기를 안 했고 지금까지 쓸 일이 없어서 안 썼는데, 슬슬 pdf 파일 달라고 해서 주문해야 하는데.
**처음엔 생각도 못 했는데, 심지어 '증 제 호증', '참고자료' 같은 도장도 하나하나 사야 한다. 안 사도 되는 건 달력 정도지. 변협에서 주니까...
***물론 이것도 공유오피스 들어가면 어느 정도 해결되는 부분이긴 하다. 근데 비상주는 해결이 안 되는 부분이 꽤 있기도 하고.
3. 의뢰인이 보기에 부족해 보이는 부분이 없다.
선배들이 가장 많이 얘기했던 부분이 이거다. '법률사무소보다 법인을 선호하는 의뢰인이 많다', '그래도 회의실은 있어야 한다' 같은 것들. 나는 별로 신경 안 쓰는데(그리고 현재 나의 의뢰인들도 별로 신경을 안 쓰는데), 언젠가는 신경을 쓰게 될 터이니... 다만 딱 하나 신경쓰이는 부분이 있다면 우리 사무실의 전문분야 정도?; 나랑 아무 상관이 없다. 해명하는 게 조금 귀찮다. 다행히 명함디자인에는 안 들어가 있다.
그 외에 우리 사무실의 좋은 점이 있다면 공증이 된다는 것? 왠지 다들 좋아하더라고. 우리 사무실에서 할 것도 아니면서(?).
4. 등기를 안 할 경우 근로자 상태가 된다(?)
대표님이 등기 안 해도 된다고 하셔서 안 했는데, 그랬더니 근로자 상태가 되어 있다...? 그럼 내 월급을 적당히 n원으로 맞춰 놓고 급여명세서 주시는 대로 월급을 법인통장에서 빼가면 된다. 여기서 생기는 장점들이 있는데 자세히 쓰자니 뭣하군...
단점도 있다.
1. 사건 수행 시 자유도가 떨어진다.
등기를 하지 않은 경우, 파트너변호사와 함께 담당변호사지정서를 넣어야 하기에 사건의 성질에 따라 파트너변호사 눈치를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등기를 했더라도 법인 눈치를 봐야 하는 경우가 간혹 있는 것 같다. 대외활동을 할 때, 단순 외부위원 활동은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정치적 이슈가 있으면 조금 곤란해지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나는 대표님이 뭘 하든 아무 신경 안 쓴다고 해서 들어왔다). 법인에 따라서는 로톡을 금지하는 경우가 있다고도 한다. 네이버 엑스퍼트는 구조상 대표가 가입하고 소속변이 그 아래로 들어가야 하는데, 대표님에게 해달라고 하기 귀찮다.
2. '법인' 특유의 신경쓸 것들이 많다.
법인은 법인통장 만들어서 써야 하는데, 이걸 맘대로 쓸 수가 없다. 개인사업자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법인은 수임료/실비 등 계좌를 잘 나눠서 써야 한다. 지금 누가 수임료 실수로 더 줘서 환불해줘야 하는데 그냥 수임료계좌에서 의뢰인 계좌로 입금해줘도 되는지 아니면 환불 절차가 있는지 물어보러 가야 한다;
3. 공유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물어봐서 파악해야 한다.
나는 직원 없이 혼자서 하는데, 세금계산서 발행 처음 할 때 법인공인인증서가 필요하다는데 어... 이게 머고... 누구한테 가서 뭘 해달라고 해야 하지... 했다. 근데 대체로 이런 건 사무실마다 >실장님<이 계셔서 그분한테 여쭤보면 어디로 가라고 계시를 내려주시긴 한다.
잘 생각하면 이미 갖춰져 있어서 좋다는 뜻도 되지. 내가 안 만들어도 되니까.
4. 쓸쓸하다.
사람마다 다른데 혼자 별산으로 들어가면 쓸쓸할 수도 있다... 특히 '방장사'하기로 유명한 별산들은 더 그럴 듯하다.
나는 이 사무실에 친구도 있고 친구의 사장님인 대표님도 나 이뻐해주고 직원분들도 친절하고 다 좋은데... 그래봤자 직원 없이 나 혼자거든... 진짜 인사 한 마디만 하고 퇴근하는 날도 많어... 우리 사무실이 서로 꽤나 친한 편인데도 그래... 사실 여기는 내가 점심시간 전에 출근해서 사람들이랑 밥을 같이 먹으면 되는 일이긴 한데...
+) 방값 정하기가 조금 어려운 경우도 있다. 나는 이미 공유오피스를 많이 알아봤던지라, 이 이상이면 못 들어간다는 선이 있었고 그 선이 대표님이 제안하시는 선과 얼추 맞아서 잘 들어왔다.
생각해보니 열심히 알아보고 덜렁 들어온 것치고는 잘 들어왔다. 이제 읽던 거 마저 읽고 퇴근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