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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의 발걸음에 담긴 삶의 리듬

+122, 송악산둘레길에서

by Remi

지난 주말, 짧은 일정으로 남편과 시어머니가 제주에 내려왔다. 공항에서 만난 두 사람은 손을 흔들며 다가왔는데 그동안 영상통화로만 보던 얼굴들이 눈앞에 닿자 묘하게 낯익으면서도 어딘가 멀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익숙함도 결이 바뀌는 법이다.





시어머니는 여든을 향하는 연세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의심하게 만들 만큼 허리는 곧고 보폭은 균일했다. 평소 하루에 2만 보를 걷는 생활습관 덕분인지 산책로와 오름 둘레길 정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듯 가볍게 웃으셨다. 나는 그 모습이 놀랍기도 하고 어딘가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나도 모르게 품었던 걱정이 서서히 풀리는 느낌이었다.


송악산에 가까워질수록 바다는 진해졌고 창밖 풍경이 열리자 차 안의 대화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람의 방향을 확인하듯 잠시 서 있었다. 파도로 번지는 소리가 바닥을 타고 올라왔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길 위로 걸음을 옮겼다.




나무데크가 길을 안내했고 형제섬과 산방산이 눈길을 붙잡았다. 아이들은 가벼운 몸짓으로 중간중간 앞으로 뛰어가 먼 풍경을 먼저 확인한 뒤 마치 밝은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 뒤를 따라 시어머니는 일정한 호흡으로 천천히 걸었고 발끝이 흐트러지지 않은 걸음은 오랜 세월의 성실함을 조용히 드러내는 듯했다. 그 모습이 눈에 오래 남았다.



방목된 말은 바람을 맞으며 느긋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아이들은 울타리 사이로 조용히 지켜보며 바람에 흩날리는 갈기까지 눈에 담았다. 시어머니는 그 풍경 앞에서도 많은 말을 하지 않으셨고 그 대신 풍경의 여백을 가만히 바라보며 시간을 천천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런 모습이 오히려 긴 문장보다 더 많은 의미를 전달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스쳐갔다. 남편은 다섯 남매 중 막내다. 그래서인지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단순한 세대 차이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세월의 간극이 있었다. 처음부터 나는 며느리라는 이름보다 오히려 큰손녀 같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무엇이든 배우는 쪽에 가까웠고 다정함을 다루는 방법을 미처 익히지 못한 채 그저 조심스러움만 늘어놓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결혼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챙겨드리지 못한 순간들이 송악산의 굽이쳐 이어진 길처럼 불현듯 떠올랐다. 주머니 속으로 미뤄둔 인사들, 사소한 안부 전화를 망설였던 날들, 바쁘다는 핑계 뒤에 숨겼던 마음까지. 그 미안함이 바람에 실려 서서히 떠올랐다. 마음속 깊은 곳에 고여 있던 감정이 이제야 조금씩 모양을 드러내는 듯했다.



둘레길을 걷는 동안 아이들은 사진을 찍어주었다. 카메라에 담기는 얼굴보다 그 순간의 공기가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시어머니는 풍경을 바라보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 그 호흡에는 오래 버티고 견뎌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나는 그 무게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 듯했다. 누군가의 인생은 설명보다 호흡이 먼저 말해준다.



길의 마지막 구간은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불었다. 억새는 바람의 결을 따라 일렁였고 우리는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옮겼다. 그렇게 걷고 잠시 멈추고 다시 걷는 방식으로 이 길 위에 우리만의 리듬을 남겼다. 풍경은 반복되는 듯 보였지만 보는 사람과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른 표정을 지었다.


주차장으로 돌아왔을 때 큰 인사나 소란스러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는 정도로 충분했다. 짧은 여행의 여운은 말로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들듯 남도록 두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창밖 풍경은 서서히 닫혔다. 그 순간 한 줄 문장이 마음에 떠올랐다. 지금부터라도 천천히, 조금 더 따뜻하게 마음을 건네고 싶다고.

늦지 않게 손을 잡고 싶다고.


가족은 완성되는 존재가 아니라

이렇게 서로의 속도를 맞추는 과정 속에서

다시 연결되는 사람들

오늘 비로소 조금 더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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