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애월 한담마을 장한철 산책로에서
제주에서의 아침은 유난히 느리다.
햇살은 성급하지 않고 바람은 늘 제멋대로다.
그 느긋함 속에서 나는 오늘도 코코와 함께 산책을 나선다.
하얀 털이 반짝이는 코코는 작은 리드줄을 끌며
앞장서 걷는다. 이른 아침의 한담마을, 그 고요한
공기 속에서 발끝에 닿는 모래와 파도의 리듬은
그 어떤 음악보다 완벽하다.
장한철 산책로 입구에 다다르면 검은 현무암 돌담 사이로 햇살이 스며든다.
‘표해록의 작가 장한철의 생가.’
그 표지판 앞에서 코코는 잠시 멈춰 선다.
마치 그 옛날, 거센 바다를 건너 생을 기록했던 한 사람의 용기를 느끼기라도 하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나는 그 순간이 좋다.
과거와 현재, 인간과 반려견, 그 사이에 흐르는 시간의 결이 조용히 어우러지는 느낌이 든다.
돌담 너머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은 바다의 냄새를 머금고 햇살은 코코의
털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생각보다 길고 그 길 위엔 아무도 없다.
들려오는 건 파도 소리 그리고 리드줄이 살짝
흔들릴 때 나는 코코의 작은 목걸이 소리뿐이다.
나는 코코에게 말을 건다.
“코코야, 이 길이 참 좋지?”
코코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본다.
그 눈빛엔 말보다 더 많은 대답이 담겨 있다.
‘응, 이 길을 기억할게. 네가 옆에 있으니까.’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의 하얀 날개들이 천천히 회전하고 하늘과 바다가 같은 색으로 녹아든다.
그 광경 앞에서 나는 숨을 고른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바다겠지만 내게는 매일이 다르다.
어제보다 조금 더 짙은 푸름, 조금 더 투명한 햇살.
그리고 코코가 함께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가 이 풍경을 특별하게 만든다.
코코는 바닷가로 내려가려는 듯 앞발을 살짝 내민다.
모래가 부드럽게 발을 감싸고 파도의 잔물결이 스치듯 다가왔다가 사라진다.
코코는 그 물결을 향해 뛰어들 듯 몸을 낮춘다.
나는 웃으며 리드줄을 조금 더 길게 늘여준다.
그 순간, 코코는 세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존재처럼 보인다. 이 섬의 바람과 햇살, 파도와 모래,
모든 것이 코코를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아침은 나를 오늘에 머물게 한다.
육지에서의 일상은 늘 다음을 향해 달렸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지금이 좋다.
파도 소리에 묻히는 마음의 소음 그리고 코코의
숨결에 맞춰 느려지는 호흡.
이 순간이 바로 사는 일의 본질이 아닐까.
산책로 끝자락에 이르러 뒤돌아보면 코코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길게 남아 있다.
그 자국은 파도에 의해 이내 사라지겠지만 내 마음속엔 오래도록 남는다.
함께 걸은 시간, 함께 본 바다, 함께 들은 바람의 소리.
이 모든 것이 내 삶의 문장 한 줄이 되어 쌓여간다.
돌아오는 길, 코코는 피곤했는지 내 옆으로 다가와 천천히 걷는다.
나는 손끝으로 코코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그 부드러운 온기 속에서, 나는 다시 다짐한다.
언젠가 이 섬을 떠나야 하는 날이 오더라도 오늘의 이 아침만은 영원히 내 안에 머물리라.
코코가 걸어가는 모래길에 햇살이 내려앉고 그 그림자는 따뜻한 파스텔처럼 번져간다.
나는 그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그저 걷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힐링’이란 이런 게 아닐까.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는 순간.
코코는 다시 한번 나를 쳐다본다.
‘오늘도 잘 걷고 있지?’라는 눈빛.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래, 우리 오늘도 잘 걷고 있어.”
그 짧은 대화 속에 제주살이의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
언제부턴가 내 하루는 코코와 함께 시작되고
코코와 함께 끝이 난다. 제주의 바다는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진다.
더 단단해지고 더 유연해지고 더 따뜻해진다.
삶이란 어쩌면 이런 작고 사소한 아침들의
연속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아침마다 코코가 내 곁에 있다는 것,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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