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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Apr 28. 2020

치앙마이, 러이끄라통

핑강의 축제

일 년 중 치앙마이를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인 건기는 빛의 축제인 러이끄라통과 함께 시작된다. 긴 우기가 끝나가는 10월이 되면 치앙마이의 쇼핑몰에는 모직코트와 패딩이 등장하고 거리에는 후드티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갖가지 색의 등이 걸리기 시작한다. 물론 여전히 여행자들은 반바지에 민소매 티를 입고도 한낮의 더위에 거리에 나서는 게 두렵지만, 오랫동안 이곳의 주인인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겨울과 함께 러이끄라통을 준비한다.


태국의 기후는 열대몬순기후로, 3월부터 5월까지의 혹서기, 6월부터 10월까지의 우기, 그리고 11월부터 2월까지의 건기 이렇게 세 계절을 갖는다. 비록 낮에는 여전히 30도가 넘는 더위가 지속되지만 비도 잘 오지 않고 아침저녁으로는 20도 아래까지 기온이 내려가 제법 선선하다고 느낄 수 있는 건기가 이제 시작되는 것이다.


물의 축제인 쏭크란과 함께 태국의 가장 큰 명절인 러이끄라통은 태국의 음력으로 12월 보름에 열린다. 음력인 탓에 매년 날짜가 틀리긴 하지만 양력으로 계산하면 대부분 10월 말부터 11월 중에 날짜가 잡힌다. 쏭크란이 한 해의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라면, 러이끄라통은 한 해의 끝머리에 작은 연꽃 모양의 그릇인 끄라통을 만들어 강물 위에 띄워 보내면서 지금까지의 잘못과 액운을 멀리 보내고 다가올 새 해의 행운을 기원하는 축제다. 물론 지역 행사가 아니라 국가적인 명절이므로 태국 어디에서나 이 날의 축제를 볼 수 있지만 러이끄라통이 시작된 수코타이와 치앙마이의 러이끄라통이 가장 성대하다. 특히 치앙마이의 러이끄라통은 강물을 따라 흘러가는 끄라통의 불빛에 밤하늘을 가득 뒤덮는 눈부신 풍등의 행렬이 더해져 전 세계인들이 모이는 축제가 된다.


올해 러이끄라통의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자 내가 머물고 있는 콘도의 직원들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콘도 입구를 비롯한 곳곳에 큰 바나나 나무 잎으로 만든 아치가 세워지고 색색의 등이 달리더니 삼삼오오 모여 앉아 끄라통을 만드는 모습이 보인다. 끄라통의 받침은 바나나 나무줄기를 잘라서 만든다. 여기에 바나나 나무 잎으로 받침을 감싸고 연꽃 모양의 잎을 만든 다음 그 안에 향초나 향을 꽂으면 된다. 


끄라통을 띄우는 장소가 딱히 지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조용히 혼자만의 의식을 치르고 싶은 사람은 집 근처 하천에서 끄라통을 띄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데 모여 서로의 의식을 확인하고 축하해 주며, 강물 위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군무에 한 점을 보태며 환호한다. 그중에서도 치앙마이에서 가장 화려한 빛의 장관을 볼 수 있는 곳이 핑강이다.


태국의 서쪽 지방에서 치앙마이와 람빵을 거치며 남북으로 도시를 이어가는 핑강은 나콘사완에서 동쪽으로부터 흘러내려온 난강을 만나 차오프라야강을 만들며 방콕으로 흘러들어 간다. 물의 도시 방콕의 그 아름다운 풍광을 만드는 주인공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핑강인 셈이다. 핑강은 강폭이 50여 미터에 불과한 작은 강이지만, 좁은 강폭에 힘껏 물을 채워 치앙마이를 키워 왔고 오늘은 축제를 담기 위해 자신을 내어주고 있다.


작년까지의 예를 보아도 러이끄라통이 시작되는 오늘, 핑강 주변 중에서도 가장 사람이 많이 모일 곳은 나라왓 브리지다. 올드시티의 타패게이트에서 핑강까지 이어지는 도로인 타패로드가 핑강과 만나는 나라왓 브리지에서는 교통이 통제되고 축제의 개막을 알리는 행사가 열린다. 이 나라왓 브리지를 중심으로 상류 쪽의 풋 브리지와 하류 쪽의 아이언 브리지가 축제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장소다. 사람과 차량이 몰려들 곳이라서 접근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나 역시 목적지를 이곳으로 정하고 숙소를 출발한다. 집이 어디든 모두들 오늘은 걷기를 각오해야 한다.


핑강 주변을 지나는 노선버스는 일찌감치 노선변경을 통보한 채 운행을 중단했다. 그랩을 불러 최대한 정체를 피할 수 있는 곳까지 가서 그다음부터는 걸어가야 한다. 조금 욕심을 내서 무리를 했다가는 꼼짝없이 차에 갇혀서 하늘에 떠오르는 풍등만 바라보는 신세가 된다. 핑강 방향으로 가려는 그랩 택시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행사 중심지와는 넉넉하게 떨어져 있는 곳을 하차지로 설정하자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응답이 왔다. 얼마 후 도착한 기사는 차가 많이 밀린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단어 몇 개를 나열하는 영어이지만 태국식 영어 발음은 여전히 알아듣기 힘들다. 내가 내릴 곳은 풋브리지에서 상류 쪽으로 두 번째 다리인 라타나코신 브리지의 동쪽 강변이다. 좀 멀긴 하지만 여기에서 내려 걸어가면서 나의 축제가 시작될 것이다.


자동차가 외곽 순환도로를 따라 시내 쪽을 향해 조금 달리자 역시 정체가 시작된다. 기사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무시하고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순환도로를 벗어나 곧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다. 기사의 예상은 맞았다. 가다 서다는 반복되었지만 그래도 조금씩 차는 움직인다. 요금이 타기 전에 미리 정해지는 방식이라 차가 아무리 밀려도 기사는 정해진 운임 이상 받을 수가 없다. 인상이 날카로웠던 기사의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행히 오늘의 정체는 기사도 뻔히 예상할 수 있었던 상황이라 분위기가 이상해질 정도의 불편함 없이 목적지인 핑강 동쪽 강변에 도착했다. 인도는 없이 찻길만 있는 도로다. 이 도로를 따라 차들과 함께 걸어가면서 치앙마이 러이끄라통의 끄트머리를 찾아간다.


행사 시작까지는 아직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시간이 너무 일러서인지 행사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인지 걸어가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 10분쯤 걷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골목에서 나와 합류를 한다. 오른쪽에 흘러가고 있을 핑강은 강변에 널찍하게 자리 잡은 주택과 음식점들 때문에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왼쪽으로는 골목 사이로 서민들이 사는 소박한 주택과 사무실로 보이는 낮은 건물들이 나무들 사이로 자리를 자리 잡고 있다. 조용하고 오래된 동네이다. 간혹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낡은 집들이 카페에 장소를 내주긴 했지만 주인도 오늘은 축제 중인지 문은 닫혀 있다. 이제 날은 어두워지고 있다.


자동차와 스쿠터가 내뿜는 매연을 맡으며 한참을 걷자 멀리서 긴 막대기 같은 것이 색색의 불빛을 내며 번쩍거린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사원이다. 사원 입구에는 작고 예쁜 등불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밝게 불을 밝힌 사원 맞은편으로 강가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경찰 몇 명이 의자에 앉아 들어가는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나는 길을 건너 경찰들 사이를 지나 강가로 내려간다. 벌써 끄라통을 띄운 사람이 제법 있는지 맞은편 강가에 작은 불빛들이 떠다닌다. 해는 이미 자취를 감췄지만 아직은 어둠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아 불빛이 희미하다.


물가에는 끄라통을 쉽게 띄울 수 있도록 나무로 얼기설기 짜 놓은 다리가 강물 쪽으로 낮게 붙어 삐져나와 있다. 한 사람이 나무다리에서 작은 끄라통을 들고 물에 띄우려 하고 있고 그 모습을 또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느라 열심이다. 강물과 거의 붙은 채로 이어져 있는 길은 먹거리를 파는 노점들로 빈틈이 없다. 꼬치를 굽는 냄새가 연기를 내뿜으며 진동을 한다. 껍질도 벗기지 않은 옥수수가 통째로 구워져 있고 짭짤한 찐 땅콩이 비닐봉지에 담겨서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식사 시간도 아니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아서 음식을 준비하는 주인들만 분주하다.


맞은편 강가에는 운동장의 스탠드처럼 시멘트로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구경하듯 그곳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그냥 평평한 흙바닥인 이곳보다는 오늘의 축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기에는 더 나은 장소처럼 보인다. 그곳으로 가려면 나콘핑 브리지를 건너야 한다. 나는 다리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길 왼쪽으로 불을 환하게 밝힌 레스토랑이 보인다. 핑강의 풍광을 볼 수 있는데다 음식 맛도 좋아서 여행 가이드에도 소개되어 있는 유명한 레스토랑이다. 창가에는 이미 손님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고 야외 잔디밭에 설치된 테이블에도 성장을 한 사람들이 앉아 와인잔을 기울이며 이쪽 강가를 바라보고 있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은 종업원들이 테이블 사이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어둠이 좀 더 내려왔다. 강가를 따라 흐르는 끄라통의 불빛이 뚜렷해지고 그 수도 많아졌다. 상류에서 서서히 내려오는 불빛들이 보인다. 핑강으로 흘러 들어오는 어느 시골의 하천에서 띄워 보냈을 것이다. 나는 이제 강 둔덕을 올라 나콘핑 브리지로 이어지는 강변도로를 걷는다. 다리로 향하는 길은 차량으로 가득하다. 조그맣게 겨우 자리 잡고 있는 인도는 오가는 사람들로 빼곡하고 곳곳에 틈만 있으면 상인들은 자리를 깔고 끄라통을 팔고 있다.


나콘핑 브리지를 거의 건너가자 북을 연타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떼를 지어 무언가를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강가로 내려가려고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그 주인공들이 보인다.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들이다. 인도를 점령한 채 끄라통을 잔뜩 펼쳐 놓고 소리를 외치며 북을 쳐댄다. 학생들이 쭉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보니 한 학교가 아니라 여러 학교에서 나온 것 같다. 마치 운동장에서 응원을 하듯이 경쟁적으로 소리를 질러댄다. 목에 걸려 있는 작은 상자에 영어로 도네이션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끄라통을 가져가고 기부금을 내라는 것 같다. 학생들의 열기에 서서히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강가의 계단 쪽으로 내려가니 비닐봉지에 치어를 넣어 파는 사람들이 보인다. 방생 용인 듯하다. 듬성듬성 사람들이 앉아 있어 아직 자리는 넉넉하다. 나는 상류와 하류를 모두 볼 수 있는 맨 위쪽에 자리를 잡는다. 살짝 강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한강변의 풍경이 언뜻 떠오른다.


어둠이 깊어졌다. 주위에 사람들은 점점 많아지고 강가는 반짝거리는 끄라통의 불빛들로 눈부시다. 물살 때문에 끄라통은 강물 가운데로 나가지 못하고 강가를 따라 흐른다. 하류를 향해 흐르는 끄라통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멀리 나라왓 브리지 근처에서 불빛 하나가 하늘을 향해 떠오르고 이어서 몇 개의 불빛이 따라 올라간다. 사람들의 탄성이 터진다. 그 불빛 위로 커다란 보름달이 환하게 떠올라 있다. 이제 구름 하나 없는 청명한 하늘을 보름달과 별을 닮은 불빛들이 채우려고 한다.


시간을 보니 아직 시작 시간인 7시가 되지 않았다. 성질 급한 몇 사람이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먼저 시작한 것 같다. 계단 밑에는 끄라통을 띄울 수 있는 나무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한 서양 노인이 손에 끄라통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고 그 뒤를 중년의 태국 여성이 뒤따른다. 계단을 내려가는 노인의 발걸음이 불안하다. 이를 본 태국 여성이 발걸음을 재촉해서 노인 옆으로 다가가 몸을 부축한다. 다리 옆에 선 노인은 촛불이 흔들거리는 끄라통을 들고 잠시 눈을 감는다. 그 옆에는 유치원에나 다닐 법한 남자아이가 아빠, 엄마와 함께 끄라통을 띄우려고 고개를 숙인다. 촛불이 꺼질까 조심하며 초를 바라보는 아이의 얼굴이 진지하다.


건너편 강가에서는 폭죽이 터지기 시작한다. 강으로 향해 몇 미터 나아가다 폭음만 내며 떨어지는 것이 있는 반면 제법 하늘 위로 올라가서 불꽃을 밝히는 것들도 있다.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폭죽을 터트리는 모양새가 장난기 가득한 어린 학생들이다. 커다란 폭음이 신경을 거스른다고 느끼는 순간 수백 개의 풍등이 동시에 하늘로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 나라왓 브리지 쪽에서 보이기 시작한다. 수많은 주황색 불빛이 반짝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어둠 속 하늘을 향해 돌진해 간다. 이제 축제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끊임없이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풍등의 행렬을 바라보며 나라왓 브리지를 향해 걷는다. 핑강은 이제 나의 왼쪽에서 흐른다. 강 아래는 끄라통을 띄우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상점마다 신선하고 값싼 과일을 팔던 강변길은 노점들과 밤하늘의 등불을 바라보며 이동하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다. 와로롯시장이 있는 풋 브리지에 가까이 가자 풍등을 날리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여기에서부터 풍등을 띄우기 시작해 나라왓 브리지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직 여기는 초입이다. 막 날아오르기 시작하는 것부터 저 먼 하늘에서 하나의 점이 되어 반짝거리는 것까지 이미 하늘에는 수천 개의 풍등이 춤을 추며 올라가고 있다.


이곳에서 풍등을 날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행자다. 역시 여행자로 보이는 한 여자가 풍등을 들고 강변 난간의 사람들 뒤에 서 있다. 사람들 사이를 적당히 뚫고 들어갈 기회를 보던 여자가 하늘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 사이에 슬쩍 발을 들여놓으니 사람들이 적당히 자리를 비켜준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여자와 동행인 듯한 남자가 끼어들고는 미안한 듯한 미소를 짓는다.


접혀 있는 풍등을 펴면 거의 어른 상반신만한 크기가 되어서 누군가 펴진 풍등을 잡아 주지 않으면 불 붙이기가 쉽지 않다. 불을 붙인 다음에는 뜨거운 공기가 풍등 안에 충분히 채워질 때까지 잘 붙잡고 있어야 한다. 그전에 손을 놓으면 제대로 날아가지 못하고 떨어진다. 여자가 양 손으로 풍등을 잡고 남자가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자 순간 불이 확 붙어 오르며 열기가 풍등 안을 뜨겁게 덥힌다. 남자가 신호를 보내자 여자가 풍등을 잡고 있던 손을 뗀다. 커다란 풍등은 약간 기우는 듯하더니 바로 자세를 잡은 다음 서서히 하늘로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타오르는 불빛이 하얀 등을 밝히고 어둠을 물리치며 나아간다. 긴장해 있던 여자의 얼굴이 점점 더 환하게 펴진다. 남자의 손이 하늘로 향하고 그의 입에서도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점점 더 열기가 달아오르는 풋 브리지를 떠나 나는 다시 나라왓 브리지를 향해 길을 재촉한다. 이제 이곳부터는 바로 머리 위에서 수많은 풍등이 올라가고 있다. 나라왓 브리지로 향하는 길 양 옆은 갑자기 노점들로 점령된다. 치앙마이의 길거리 음식이 총동원된 듯 온갖 종류의 먹거리들이 오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노점의 행렬은 강변의 공원으로 향하며 계속된다. 공원에는 이미 수많은 푸드트럭들이 자리를 잡고 있고 곳곳에 놓인 간이 테이블은 시장한 배를 채우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 공원의 다른 한쪽에서는 야바위꾼들이 크게 장을 벌려 놓고 마이크로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을 부르고 있지만 불행히도 그다지 재미를 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강가와 잇대어 있는 공원 한쪽은 끄라통을 띄우려는 사람들로 수선스럽다. 사람들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보니 수많은 끄라통들이 희미한 불빛을 반짝거리며 강물 위를 서서히 나아가고 있다. 물빛에 반사된 불빛이 어둠 속에서 더욱 애잔하게 보인다. 앳되어 보이는 두 남녀가 작은 끄라통에 불을 밝힌 채 끄라통을 띄울 자리를 찾는다. 내가 자리를 비켜주자 가볍게 목례를 한 여자가 강가 쪽으로 나가고 남자가 손을 잡아 몸을 지탱해 준다. 손을 잡는 것이 어색하고 조심스럽다. 오래된 연인이 아니다. 끄라통을 잡은 손을 길게 뻗자 겨우 물에 닿는다. 물결에 살짝 흔들리던 끄라통은 다행히도 자리를 잡고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둘의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이제 작은 항해를 시작한 끄라통처럼 이들의 사랑도 이제 막 시작되나 보다.


갑자기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니 풍등 하나가 나무에 걸려 있다. 풍등은 올라가려 애쓰지만 제멋대로 뻗어 있는 가지 사이를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풍등을 날린 사람의 표정이 어둡다. 풍등이 멀리 날아가지 못하면 좋지 못한 일이 일어난다는 속설을 믿지는 않아도 하늘로 뻗어 가는 풍등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개운치 못한 일이다. 나무가 많은 공원이어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나무에 걸리기 쉽지만 딱히 장소를 확보하지 못한 사람들은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없다. 나무에 불이 붙을 위험은 그리 많지 않다. 아마도 저 상태로 있다가 그냥 불이 꺼져 버릴 것이다. 나는 이제 공원을 나온다. 


오늘의 목적지인 나라왓 브리지 입구 사거리는 전광판과 조명 때문에 대낮처럼 밝다. 이 아수라장 속에서도 촬영을 하는지 늘씬한 모델들이 풍등을 들고 하늘을 바라보며 포즈를 잡는다. 차들이 다니던 길을 막고 곳곳에서 풍등을 띄우는 사람들로 다리는 가득 차 있다. 한쪽에서는 막 풍등이 떠오르고 있고 그 옆으로는 머리 위로 올라가는 풍등을 향해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성을 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풍등을 날리는 온갖 순간들이 스냅사진처럼 보이고 하늘 위로는 수천 개의 불빛이 반짝거리며 크고 작은 별빛을 만든다. 모두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짓고 그 웃음에 떠밀린 풍등들이 빛의 행렬을 이루며 하늘을 덮고 있다. 난데없이 터지는 폭죽 소리에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함께 실려 퍼져 나간다. 


강물 쪽을 바라보니 아까 지나온 풋 브리지 쪽에서부터 흘러 내려오는 끄라통의 행렬이 화려하다. 끄라통은 물살 때문에 가운데로 나아가지 못하고 강기슭을 따라 촘촘히 줄을 지어 흐른다. 위에서 내려오는 끄라통 때문에 강가에서 띄우는 끄라통이 좀처럼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자 한 남자가 물에 뛰어들어 끄라통을 강 안쪽으로 밀어낸다. 허리까지 물에 잠긴 남자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강변 레스토랑에서 울리는 일렉트로닉 기타의 격렬한 비트와 함께 섞여 축제의 음악을 만든다.


다리 난간에 기대어 있는 여자를 마주 보며 한 남자가 서 있다. 남자는 여자의 눈을 쳐다보고 잘 들어보지 못한 언어로 무언가를 말한다. 남자의 말이 끝나자 둘은 뜨겁게 키스를 나누고 이번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여자의 말이 끝나자 또 한 번의 키스가 이어지고 다시 남자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리 아래에서는 끄라통의 불빛이, 밤하늘에는 풍등의 불빛이 이들을 비춘다. 사랑이란 원래 이렇게 맹목적이고 유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듯 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의 의식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러이끄라통은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만의 것은 아니다. 강변의 끄라통 불빛을 피해 어두운 강 한가운데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는 저 남자는 어쩌면 연인과 함께했던 작년의 러이끄라통을 추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쪽으로 물러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의 물결을 바라보고 있는 저 여자는 자신의 슬픔을 저들의 기쁨으로 밀어내고 싶은 사람인지도 모른다. 아마도 누군가는 끄라통 하나에 미처 담지 못한 많은 회환과 후회를 핑강을 비추는 수많은 끄라통 불빛에 함께 떠나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나라왓 브리지를 떠난다. 뒤를 돌아 바라보는 다리 위는 이미 추억이 되었다. 축제의 장을 떠나는 길은 쓸쓸하다. 치앙마이의 밤은 어둡고 주위는 적막하다. 길에는 벌써 자기 할 일을 다하고 추락해 있는 풍등이 보인다. 불빛은 사그라지고 공기가 꺼진 채 오가는 차량들에 밟히며 길 한쪽으로 밀려 있는 풍등의 잔해는 스산하다. 뜬금없이 폭죽은 터지고 썽태우를 찾는 내 눈이 바빠진다. 집에 돌아와 창문 밖을 보니 어두운 밤하늘 위를 풍등 하나가 저 멀리서 홀로 반짝이며 지나간다. 나는 머뭇거리며 오래 감춰 둔 나의 소망을 풍등에 실려 보낸다. 나의 러이끄라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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