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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May 08. 2020

치앙마이, 도이뿌이 몽족마을

몽족 없는 몽족마을

살짝 커튼을 제치고 쳐다본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푸르다. 치앙마이에서 이렇게 푸른 하늘을 본 게 얼마 만이던가. 저 멀리 푸른색이 그 푸름을 조금씩 빼 나가는 모습이 눈부시다. 


창문 밖으로 그 찬란한 하늘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늘도 공사장으로 출근하는 미얀마 인부들이 보인다. 합숙을 하는지 원색의 티셔츠를 똑같이 차려입은 사람들이 한 무리씩 차를 타고 와서 내린다. 이들을 실어 나르는 차는 승용차나 버스가 아니다. 포터에서부터 대형 트럭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짐차들로부터 물건이 쏟아지듯 인부들이 쏟아져 내린다. 


목에 수건을 걸친 인부들은 색이 다 바랜 큼지막한 플라스틱 통을 저마다 하나씩 들고 자재들이 쌓여 있는 공사장 안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저 통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이국에서 길고 고단한 열대의 하루를 책임질 물과 밥이다. 인부들은 오늘 그 물과 밥을 먹으며 내일 먹을 물과 밥을 위해 노동을 할 것이다.

 

게으른 여행자의 눈으로 그들을 훔쳐보는 나의 마음은 무겁다. 그러나 오지랖 넓은 나를 탓하듯 그들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부부인 듯한 한 쌍의 남녀는 서로의 손을 맞잡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이 고된 노동의 현장에서도 발랄하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이 충만할 수 있는 그들을 나는 닮아야 한다.


오늘의 목적지는 도이뿌이에 있는 몽족 마을인 반몽이다. 치앙마이를 대표하는 산인 도이수텝을 거쳐가야만 도이뿌이로 갈 수 있다. ‘도이’란 ‘산’이란 뜻이니 도이수텝은 수텝 산, 도이뿌이는 뿌이 산이란 말이다. 치앙마이의 서북쪽에 자리 잡은 도이수텝과 도이뿌이는 높이가 각각 1676미터와 1685미터. 한라산이 1947미터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산인 셈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오늘의 목적지까지는 찻길이 나 있다. 나는 치앙마이대학교 정문 앞까지 가서 그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썽태우를 타고 이곳으로 가기로 한다.


한낮의 치앙마이대학교 정문 앞은 한산하다. 하지만 밤에는 이곳에도 큰 야시장이 열려서 낮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후문 쪽인 랑머가 주로 먹거리를 파는 노점 위주라면 이곳은 의류와 각종 잡화까지 취급하는 제법 시장다운 모습을 갖춘 야시장이다. 


정문을 지나 도이수텝 방향으로 조금 걷자 곧 여행객들을 모집하는 입간판과 빨간색의 썽태우들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운전기사인 듯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한 사람이 나를 보고 일어서더니 입간판을 가리키며 영어 단어를 나열한다. 코스와 요금 이야기다. 코스가 같은 사람으로 인원이 차야만 출발한다. 몇 명이 모여야 출발할지는 물론 기사 마음대로다. 목적지를 말하자 일단 길가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차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았는지 기다리는 사람은 나뿐이다. 


도이수텝을 오르는 길은 관광객들을 실어 나르는 차들로 바쁘다. 웃음소리를 남기며 지나가는 스쿠터 뒤로 사람을 가득 태운 썽태우가 뒤를 따른다. 아마 여행자끼리 인원을 맞춰 대절한 듯하다. 가끔 가다 최신식 이층 버스가 커다란 덩치로 거리를 가득 채우며 올라가기도 한다. 맞은편 길 또한 관광을 마친 사람들의 차량으로 분주하다. 하릴없이 길을 바라보며 삼십 분쯤 지나자 마침내 대기자가 7명으로 늘어났다. 기사도 이쯤이면 움직일 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출발을 한다. 


토요타 하이럭스를 개조한 썽태우가 치앙마이 동물원을 지나자 도이수텝의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포장이 잘 되어 있는 3차선의 도로는 오르는 길에 두 개의 차선을 내주고 서서히 경사를 높이며 휘어져 간다. 썽태우는 기사가 원하는 대로 반응을 하며 별로 힘에 부치는 기색 없이 고갯길을 오른다. 길 옆으로 들어차 있는 수림은 아직은 잡목 수준이다. 헝클어진 잔가지를 삐죽 내민 나무들이 아무 틈새나 찾아 제멋대로 자라고 있다. 


한참을 씩씩하게 나아가던 썽태우가 한번 심호흡을 하더니 기어를 바꾼다. 어느 정도 올라왔으니 잠깐이나마 평지가 나올 만도 하지만 길은 쉴 새 없이 오르기만 한다. 10여 분 정도 오르자 나무들 사이로 치앙마이 전경이 슬쩍 보였다가는 사라진다. 아직은 나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정도다. 남녀 한 쌍이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간다. 몸은 지쳐 보여도 얼굴은 밝다. 트래킹 코스가 따로 있어서 이렇게 찻길을 따라 걷는 사람은 드물다. 아마도 도중에 지치면 썽태우를 세워서 타고 갈 심산일 것이다.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런 탈출 계획이라도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오르는 사람의 속셈을 나는 알 수가 없다. 도이수텝 정상에 있는 치앙마이의 대표적 사원인 왓프라탓이 있는 곳까지는 썽태우가 부지런히 올라가도 20여 분이 걸리는 거리다. 게다가 보통의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경사를 가진 언덕길은 자전거를 타고 몇 미터도 오르지 못한다. 그 고갯길을 헬멧을 쓰고 몸에 착 달라붙는 라이딩용 옷을 차려입은 채 페달을 밟으며 오르는 괴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끊임없이 계속 휘어지는 길에 현기증이 나기 시작할 때쯤 곧 길이 넓어지며 상점들이 쭉 늘어선 광장이 나타난다. 도이수텝을 다 오른 것이다. 왓프라탓에 가려면 여기에서 내려 걸어서 올라가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목적지는 이곳을 지나 좀 더 가야 한다. 


관광버스와 승용차들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피해 속도를 낮추던 썽태우는 길이 열리자 다시 힘을 내어 달리기 시작한다.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이 서늘하다. 확연하게 기온이 떨어진 것이 느껴진다. 길은 이제 완만하게 나아가고 차선은 편도 1차선으로 줄어들었다. 썽태우는 깊은 숲 속을 달린다. 길가의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둥치들도 아주 튼실하다. 숲은 점점 더 깊어지며 나무들 사이로 햇빛은 기력을 잃는다. 조용하던 길이 어수선해지더니 태국왕의 별장인 푸핑궁전 앞을 지나간다. 


푸핑궁전을 지나니 곧 차선이 없어지고 도로는 시골길이 되어 버린다. 포장을 한 지가 꽤 오래된 듯 군데군데 패인 곳도 많고 자갈들이 튀어나와 있다. 픽업트럭 한 대가 썽태우 뒤를 바짝 따라오기 시작한다. 추월을 하고 싶어 겁을 주는 듯하지만 썽태우 기사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트럭을 뒤에 달고 오르락내리락하며 달리던 썽태우는 오던 길을 버리고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도이뿌이의 숲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거대한 바나나 나무들이 보이고 계곡의 나무들은 푸른 이끼를 붙이고 늘어져 있다. 멀리 보이는 산들은 첩첩이 겹쳐서 이어져 가고 우리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열대의 밀림 속을 헤쳐 나가고 있는 듯하다. 맞은편에서 썽태우 한 대가 올라오자 우리가 탄 차는 길 옆으로 바짝 붙는다. 마치 한쪽 바퀴를 허공에 놓고 있는 듯 창밖으로는 계곡 밑이 보인다. 나의 눈은 온통 푸른색으로 가득 차고 싱그러운 공기는 가슴을 채운다. 


왓프라탓의 관광버스들을 피해서 원시의 풍경 속으로 들어오기까지는 불과 이십 여 분이다. 썽태우는 이제 작은 공터에 빽빽이 들어서 있는 자동차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시동을 끈다. 태국의 여러 고산족 중의 하나인 몽족들이 사는 마을, 반몽이다. 울창한 숲을 가진 산이 마을 공터를 빙 둘러싸고 있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치앙마이에 들어와 이렇게 시원하다는 느낌을 가져보기는 오늘이 처음이다. 


공터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로 들어서자 양 옆으로 상점이 늘어선 오르막 길이 이어진다. 이 길을 지나가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나온다.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몽족의 전통문양이 들어간 것 말고는 치앙마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간혹 할머니들이 상점 앞에 앉아 손으로 바느질을 하면서 작은 소품을 만드는 모습들이 보인다.


상가가 있는 골목을 벗어나니 곧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산비탈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그 길 옆으로 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누군가 틀어 놓은 텔레비전 소리가 조용한 산골에 울려 퍼지는 사이에 튼실하게 생긴 수탉이 목을 빼며 울어댄다. 사람들의 집은 낡고 흐릿하지만 초라하지 않고 산을 등지고 깊은 골짜기를 바라보는 모습이 의연하다.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꽃나무가 들어서 있고 작은 난과 양치류 식물들이 깨진 플라스틱 그릇이나 나무 조각에 붙어서 자란다. 작은 화분에서나 보았던 포인세티아가 관목이 되어 빨갛게 잎을 물들이고, 보랏빛 꽃을 피운 이름 모를 나무는 낡은 지붕의 소박한 집에 기대어 낯선 이방인의 경계심을 허문다. 


도대체 어떤 잡종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온갖 종의 모양을 골고루 갖춘 털북숭이 개 한 마리가 길 가운데를 가로막고 앉아 있다. 마을을 지키고도 남을 덩치를 가진 놈은 이방인의 손길에 몸을 맡기며 무료하고 권태로운 일상을 털어 버린다. 털 속에 묻혀 언뜻언뜻 보이는 까만 눈은 주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강아지처럼 순하다. 


비탈길이 잠시 평탄해지는 듯하더니 길을 왼쪽으로 두고 작은 집이 하나 들어서 있다. 집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방 하나라고 해야 할 만큼 작은 집이다. 나무로 얼기설기 기둥을 세우고 대충 비만 피할 수 있게 지붕을 이어 놓은 부엌은 널브러져 있는 낡은 살림살이들을 보이며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다 찌그러진 냄비며 프라이팬 같은 것이 걸려 있는 나무 기둥 사이로 첩첩산중의 골짜기를 따라 몸을 낮춘 몽족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작은 집에서 돌을 던지면 닿을 수 있는 곳에는 아예 지붕이랄 것도 없이 나뭇잎으로 대충 햇빛만 가린 평상이 골짜기를 바라보며 펼쳐져 있고, 오가는 이방인의 눈길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할머니 한 분이 드러누워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물건을 파는 상인들에게만 우리들이 보이고 주민들의 시야에는 우리가 없다. 귀찮아하는 것이 아니라 도대체 관심이 없다. 아니 차라리 그들 눈에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낡은 나무문에 알파벳 스티커를 붙여 놓고 아이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젊은 부부에게도, 작은 쪽마루에서 물감들을 펼쳐 놓고 뭔가를 그리고 있는 동네 아이들에게도 이방인들은 투명인간이다. 그들의 삶에서 철저히 외면당하는 내가 민망하고 씁쓸하다. 


산비탈을 따라 올라가며 이어져 있는 집들이 거의 끊어질 즈음에 작은 찻집이 나온다. 언제 나를 보았는지 주인이 뛰쳐나오며 이곳에선 듣기 힘든 상냥한 목소리로 커피를 외친다. 상인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찻집에 들어가 의자에 앉으니 열린 창문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과 함께 평화가 찾아온다. 창밖의 키 큰 빵나무에 달린 둥근 열매가 탐스럽다.


가게를 둘러보니 커피를 내리는 기계 뒤편으로 몽족 전통의상을 입은 남자와 사내아이가 커피나무 옆에서 환하게 웃으며 커피 열매를 따는 모습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다. 몽족마을에 와서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을 본 것은 오늘 이 사진이 처음이다. 아들과 함께 자기 농장에서 커피를 따는 모습이라는 게 주인의 설명이다. 유기농으로 재배한다는 커피의 맛은 내 입에는 약간 심심하다.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 맛이라고 할까. 부지런한 주인은 차를 한 잔 내오면서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찻잎들을 또 열심히 설명한다. 아무래도 내게 커피 원두를 팔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농사보다는 장사가 적성에 맞는 분이다.


찻집을 나와 잠깐 고갯길을 더 오르다가 산속으로 길이 이어지는 것을 보고는 방향을 돌려 마을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풍경은 산길을 오르며 뒤를 돌아보던 것과는 또 다르다. 도이뿌이 산골의 풍광이 고정된 프레임을 통해 하나 가득 밀려 들어온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조금씩 변하는 풍광에 가슴이 시려 온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 때문이리라. 


상가가 늘어서 있는 골목에서 폭포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니 확 트인 공간에 산비탈을 따라 계단식으로 꽃밭을 조성해 놓은 곳이 보인다. 주민들이 자신들을 위해 만들어 놓았다기보다는 관광용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름 모르는 예쁜 꽃들이 잘 관리되어 피어 있지만 내 눈에는 괜한 수고로만 보인다. 한쪽에서 소소한 좌판을 깔아 놓고 고요히 담배를 피우고 계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오히려 이곳을 찾는 여행자가 기대하는 모습이다.


몽족마을에 몽족은 없다. 여행안내 책자에서 으레 나오는 전통의상의 여인이나 이들이 들판에서 손을 잡고 춤을 추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문명과는 동떨어진 채 자신만의 오랜 전통을 유지하며 사는 모습들을 보는 것도 불가능하다. 토요타 픽업과 렉서스를 주차해 둔 집이 곳곳에 있으며 텔레비전과 기타 소리가 산골짜기에 울려 퍼지고 우리의 문명이 그곳에서도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모호한 단어에 이끌려 이곳에 온 어리숙한 여행자를 상대하는 상점들만 부지런하고 정작 여행자가 기대했던 것은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다. 몽족마을에서 행방불명된 몽족이라는 단어를 대신하는 것은 산골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벗 삼아 산골에서 자족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찾아가는 여행이라면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내게 보이는 그들은 행복하다. 


이제 그들은 전통의상을 입고 내게 웃음을 팔지 않아도 된다. 어쩌면 그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도이뿌이의 아름다운 자연이 진짜 주인공임을 이제야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몽족마을은 몽족이 아니라 마을에 방점을 찍는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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