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영 Feb 06. 2020

스물 다섯,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퇴사 할 땐 회사 생각 말고 주저 없이 나가 버려!


같은 직종에서 일하는 동기들이 고민을 토로할 때마다, 내가 해 주던 말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친구들이 감동 받았다며 카톡방 상단에 고정해 둔 저 멘트를, 나에게 그대로 되돌려주게 생겼다.


퇴사 의사를 밝혔다. 입사한지 정확히 한 달 만이다. 나는 왜 퇴사를 해야만 하는가? 퇴사를 앞두고 많이도 고민했다. 고민이란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나 자신에 대한 탐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김단영 탐구영역' 시간을 40분으로 정해두고, 시간이 지나면 그래! 답은 이거야! 할 수 없는 것이다. 퇴사를 결정하려면 나의 생각과 회사의 입장과 기타 주변의 품평들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물론 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하지만 어디 인생이 그렇게 심플하겠는가. 나 역시 어쩔 수 없는 소심이 중 한 명이란 말이다. 


한 달 간의 회사생활을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을까. 짧아도 너무 짧다. 누군가 이렇게 비난한다면 할 말이 없다. 지금의 나 역시 고작 한 달 만에 박차고 나오는 내 모습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변명이라는 포장 하에 말 할 수 있다. 어쩌면 퇴사는 나의 나약함과는 별개일 수 있겠다고. 나는 신입사원이며 이제 사회를 향한 첫 발을 내딛었다. 어딜가나 내가 몰랐던 분야에 대해 배울 것이고 그 과정이 완벽할 리 없다. 서투르고, 부족하고, 실수 역시 당연히 수반될 것이다. 야근이나 주말 출근 등이 잦다는 것은 이미 각오한 부분이었다. 언제나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이다.  


살면서 타인과 트러블이 있었던 적은 거의 없다. 주변에 친구도 많고 일 적으로 만난 사람들과도 아직까지 잘 지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어찌보면 생경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필요한 것들을 두루뭉술하게 말했으며, 자신이 생각한 방식과 완벽하게 맞지 않을 시 난감함을 표했다. 게다가 모두들 예민한 상태라 답변 역시 날카로웠으며,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한숨을 쉬는 일도 있었다.


너 지금 뭐 하고 있는거야?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 하나다. 


처음에는 그저 다 내 탓인줄 알았다. 내가 부족해서 답답하신가보다. 늘 자책했다. 그러나 어제 나의 눈물의 고백을 경청한 선배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단영. 사람은 누구나 처음엔 부족할 수밖에 없어요. 나도 시작할 때 그랬고. 그래서 정말로 힘들었어. 특히 이 직업은 신입에게 많은 것들을 원해요. 그런데 딱히 인수인계랄것도 없어. 각자 자기 일로 바쁘면서, 한 번에 일을 해결 할 수 있는 신입을 좋아하지. 아무런 조언도 없이 말야. 근데 그럴 때 남탓을 해야 하는데, 나는 바보 같이 다 내탓으로 돌렸어요. 단영은 똑 부러지고 씩씩해 보이니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어. 욕하고, 쟤 나한테 왜저래? 하면서 남탓을 해 버려야해. 물론 단영은 지금 한계까지 온 것 같으니까 내가 결정 내린 부분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순 없고. 그냥 조금의 인생 선배로서. 앞으로 단영이 살면서 내 탓은 하지 않아줬으면 해서.'


맞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나의 결함으로 돌리고, 그러면서도 잔뜩 날이 선 상대방의 말투에 찔리고 베였다. 내가 하나의 소모품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사람으로서, 작가로서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이것이 맞나. 내가 이 팀에 중요한 사람이 맞는가. 고민에 빠질수록 상처가 늘었다. 이대로 간다면 모든것이 무너져 내릴 것이 뻔했다. 선배의 말을 들으며, 눈물의 저녁밥을 먹으며, 나는 다시금 깨달았다. 내 여리디 여린 자존감을 해하려는 주변의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지키려면, 나를 믿어주는 방법밖에 없겠다는 것을.


나는 나를 믿어보려 한다. 어쨌든 퇴사라는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는 그 주사위가 올바른 방향으로, 바닥위에 안전히 착지하기를 바라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앞으로 내가 또 어떤 일들에 짓눌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퇴사'라는 책의 첫 챕터는 완성한 기분이다. 드라마 '눈이 부시게' 에서 한지민은 술에 취해 말한다. 내가 보기에도 나라는 아이는, 좀 후지다고. 후진데 나에게는 내가 그렇게 애틋하다고. 그 말이 너무나도 와 닿는다. 지금의 나는 내가 보기에도 볼폼 없다. 그러나 한없이 애틋한 내가 부디 지금의 이 모습으로도 충분히 편안했으면 한다. 나의 퇴사일기, 이제부터 시작이다:)



작가의 이전글 눈사람 자살사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