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단영 Feb 12. 2020

헤어졌다고? 이 노래 들어봐

이별 플레이리스트 추천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지금은 기온이며 바람이며 나의 심리 상태로 보았을 때 이 노래를 들어야만 해! 하는 굳은 결심이 서는 순간.   


나는 노래를 부르고 듣는 것을 모두 좋아하는 편이라 계절 따라, 시간 따라, 날씨 따라 듣는 노래들이 정해져 있다. 상황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연애를 하는 중이라면 그에 맞춰 달달한 노래를 듣고, 헤어진 상태에서는 세상의 온갖 이별 노래란 노래는 다 끌어 모아 재생 목록에 추가 시킨다. 남들이 청승맞다고 할지는 몰라도, 나에게 상황과 심리에 맞는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그 순간의 감정을 이백 프로 즐길 수 있거나, 혹은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실연 후 이별 노래를 들으면 괜시리 내가 비련의 여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해피엔딩은커녕, 열린 결말에도 가까워지지 못한 듯한 느낌. 노래 가사와 선율에 눈물을 흘리다 보면 나의 연애 서사가 괜히 드라마 한 편쯤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뭐, 후련하긴 하다.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외딴 아파트 단지에서라도 눈물을 펑펑 흘리고 나면, 왠지 속은 풀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특히 가족들과 같이 살고 있는 이별러들에게 추천한다. 보통 실연의 상처는 마음껏 울지 못한다는데 있어서 더 깊어지거든.    


어쨌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실연 후 통곡하며 들었던 이별 노래를 추천해 보고자 한다. 이별 플레이 리스트라고나 할까. 단 정도를 지켜 들어야 한다. 하루 웬종일 듣다간 너무 우울 해 질 수 있으니까!    


짙은 - Punch drunk love song     


짙은을 안다면 당신은 축복받았다. 나는 짙은의 밝고 경쾌한 사운드 보다는 느리고 묵직하게 떨어지는 멜로디를 좋아한다. 재작년에 짙은과 여러 인디 밴드가 함께 하는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이 노래를 라이브로 듣지 못해 한탄했던 기억이 난다.  


punch drunk love song이 수록된 앨범의 테마는 우주이다. 앨범 명 자체가 universe인데다가 노래 제목들 역시 우주틱하다. 해당 곡은 앨범의 세 개의 타이틀 곡 중 하나였고, 짙은의 신보가 발매 되었다고 해서 가장 마음이 가는 제목을 골라 들은 것이었다.     


노래가 재생되자마자, 여름이었는데도 헤어지던 겨울밤으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난 취했어. 모든 아픔은 잊기로 했어.’ 첫 소절의 가사와 함께 술에 취해 밤거리를 걷던 내 모습이 재생되는 건 뭐람. 심금을 울리는 노래와 가사에 나도 모르게 멈춰서 한참을 들었다. 전 남자친구를 잊고자 마신 술은 역효과를 냈다. 오히려 기억이 더 생생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내 인생의 악역이었던 그가 그저 순수했던 소년으로 추억되어 버렸다. 해당 곡은 그런 기억에서 벗어나도록, 홀로 걷는 한밤 중의 귀갓길이 더 이상 눈물로 범벅되지 않게 도와주었던 노래다. 이 노래는 지금도 –특히 겨울에- 많이 골라 듣는다. 예전엔 들으면 울기 바빴지만, 이제는 그 어리던 스무살의 내가 참 많은 걸 겪고 자라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괜시리 웃고 마는 것이다.  

   

날 좀 잡아줘 날 좀 안아줘
넌 언제나 그대로 서 있는 걸 
날 좀 받아줘 날 좀 들어줘 
너 없이 부르는 노래는 다
흩날리는 흰눈처럼
어디로 가 닿을지 몰라  


허각 - 그날을 내 등 뒤로     


사실 허각의 노래 중에는 소위 말하는 ‘띵곡’이 무수하다. 그 중 이 곡은 그나마 덜 유명한, 그러나 나에게만큼은 가장 유명한 노래다.      


아무래도 겨울에 이별을 겪었기 때문에, 노래 자체에서 추운 분위기나 시림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허각의 ‘그날을 내 등 뒤로’가 딱 그렇다. 허각은 어쩜 그렇게 감정을 잘 표현해 내는 것인가. 가사도 그렇지만 멜로디와 허각의 음색이 한 몫 한다. 목소리만 듣고 있어도 이별의 아픔과 후회, 막막함과 아련함이 뚝뚝 떨어져 내린다. 이 노래는 정말이지 ‘겨울’ 최적화 노래다. 괜시리 아껴 두다가 겨울이 오면 혼자 걷는 길에 틀곤 한다. ‘떠나 보낸다’는 가사와 함께 마음을 비우는데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던, 아픈 두 번째 손가락이었으니.    


안녕 이제 그만 정주는 짓 다 그만
힘들어 우리 사랑하면서 살 날들이
잡힐 듯 가슴속에 간직한 그날을 내 등 뒤로
조용히 떠나보낸다      


거미 – 내 생각 날거야     


이별에는 단계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별 후에는 심리적 변화가 단계 별로 이루어진다. punch drunk love song을 들을 때는 아직 그와의 추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였다. 최대치의 고통과 슬픔과 미련과 후회를 반복하고 있을 시기라고나 할까. 그러다가 그날을 내 등 뒤로를 들을 때쯤에는 슬슬 실연을 받아들였다. 비록 네가 먼저 날 떠났지만 노래 가사라도 벗삼아 내가 보내주는 것이라 합리화 하던 시기. 그리고, 드디어 이 노래가 나온다. 그를 좋게만 미화하던 과정이 끝날 무렵, 네가 이렇게 개자식이었지? 회상하며 들었던 노래다.   

   

지난 연애에 최선을 다했던 나는 별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마음을 아끼지 않고 좋아했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었고, 무엇이든 나보다 상대가 우선이었다. 내가 바보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쯤 이 노래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처음부터 우리가 이런 식으로 삐걱댄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나만큼 너 역시나 나를 좋아했고, 우선시 했고, 아꼈었다. 언젠가는 그런 마음으로 인해 상대 역시 후회하길 바랐다. 내 생각이 한 번쯤은 나겠지. 나 같은 사람 다시는 못 만날 거란 거, 지도 알겠지. 조금은 후련한 마음과 함께 거미의 시원시원한 보이스를 들으며, 괜시리 더 크게 웃고 당당하게 걸을 때쯤 들었던 노래다.      


내 생각날 거야 그럴 거야
넌 버릇처럼 날 잊었다고 해도
내 생각날 거야 그럴 거야
너를 너무나 사랑했던 나니까      


김필 – 성북동

     

아무래도 이별 플레이리스트를 시리즈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국내 곡들도 아직 남아있는데다가, 팝송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세장째다. 이 노래를 끝으로 일단 1편은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왜냐면 이 노래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다른 노래들이 떠오를지 미지수니까.     


김필을 좋아한지는 꽤 되었다. 슈스케에 나오는 것을 보고 어떻게 이런 목소리가 있지? 하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성북동은 엄마가 나에게 추천해 준 노래다. (참고로 엄마도 김필 광팬이기 때문에) 엄마 역시 나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터라 듣고 울지나 말라며 무심히 알려주었다. 지금 생각 해 보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슬픈 노래를 들으며 마음껏 울고 털어내는 것 역시,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임을.      


곡은 전반적으로 잔잔하게 흘러간다. 그러나 잔잔한 베이스에 김필의 음색이 얹혀지는 순간, 와, 이게 뭐지 싶다.      


연인에게 있어 ‘공간’이 의미하는 바는 특별하다. 처음 만난 곳, 자주 가던 곳, 기념일에 찾았던 곳, 별 일 없었지만 그저 손 잡고 얘기 나누며 걷던 길들까지. 연애 중에는 공간이 주는 특별함에 대해 알 길이 없다. 그저 설렘에 차 다음에 또 오거나 언젠가 갈 곳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러나 헤어진 뒤라면? 우리가 함께 갔던 모든 곳이 추억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거리를 다시 찾거나 걸을 때마다 좋았던 일들만 떠오르게 되는 것도 덤이다. 김필의 성북동은 그런 공간에 대한 향수와 함께 헤어진 연인에 대한 추억들을 상기 시킨다. 성북동은… 긴 말 필요 없다. 그냥 한 번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단숨에 당신의 인생 곡으로 자리잡아 버릴지도 모르니.   

 

잊은 줄 알았던 예쁜 기억들은
온통 날 흔들어 다시 나를 눈물짓게 해
성북동 그 어귀에 마주 앉아 추억을 남겼던
이곳에 나 혼자서 이 노래를 흥얼거리네

  

나는 음악을 사랑하고, 새로운 멜로디와 신선한 음색의 발견을 갈구하며 여전히 플레이 리스트에 추가될 만한 곡을 찾아 헤매는 중이다. 오늘은 이별 특집이었지만, 다음에는 계절 별 플레이 리스트로 글을 쓰게 될 것도 같다. 어쨌든 이별을 만끽하고 그 속에서 나를 찾으며 성장할 수 있게 해준 것들 중 ‘노래’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세상에 극복하지 못 할 이별은 없다. 부디 지금 이별에 아파하는 모두가 좋은 선율과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 빨리 괜찮아지길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스물 다섯,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