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원우 Aug 03. 2022

로제타와 아이카


로제타와 아이카    

 

뭔가 예쁜 이름을 가진 이 두 여성의 이야기는 전혀 재미가 없다. 이방인으로서 불법체류자들의 상막한 현실은 현지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로 떠돌이 개처럼 하루하루 연명하기 조차 힘겨운 야생의 삶과 같다. 즐거움과 낭만은 그들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과분함이다. 


짐승들은 대개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부류의 지역 내에서만 활동을 하며 그 경계를 벗어난 다는 것은 곧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위험한 경계는 다른 종류의 짐승이 아니라 같은 종족에 의해서 용서할 수 없는 경계인 것이다. 심지어 다 함께 모여사는 바다새들은 둥지를 떠나는 순간부터 곧바로 동족에 의한 죽음의 배척이 시작된다. 아름다운 모습과는 다른 참담한 유전적 질서이다.


그런데 문명인이라 자칭하는 인간들 조차 아직도 그러고 있지 않은가. 피부색이나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방인은 곧 적이 되는 것이며 피부색과 언어가 같아도 다른 지역에서  온 못 보던 사람을 경계 안으로 들여놓는 것을 싫어한다. 인간도 역시 순혈 종족보존을 위한 유전자에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로제타’는 2019년에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뤽 다르덴‘감독의 벨기에 영화이고 ‘아이카’는 2021년에 ‘세르게이 '드로르체 보이’ 감독의 러시아 영화이다. 두 영화의 내용이 너무 똑같아서 흠짓 했는데 아이카는 로제타를 리메이크한 영화이다. 마치 배경만 다른 한 감독의 작품 같다. 불안함을 증폭시키는 85mm 렌즈의 답답하고 흔들리는 롱테이크 시선이나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들과 엔딩이 완전히 하나의 작품이다. 특이하게도 로제타가 52화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아이카는 71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만약 아이카가 먼저 나왔다면 황금종려상을 먼저 받았을 것이다.     


벨기에의 임시 이민자 컨테이너에 알코올 중독자 엄마와 함께 사는 로제타에게 일자리는 생명처럼 중요한 생계수단이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자신에게 친절했던 남자 친구마저 배신하면서 까지 일자리를 구걸하는 소녀는 강해야 했고 그래서 눈물조차 말라버린 차가운 감성으로 현실을 뚫고 갈 뿐이지만 결국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엔딩에서 처음으로 뜨거운 눈물을 쏟으면서 영화가 끝난다. 거기엔 음악도 없었고 차디찬 자막만이 올라갈 뿐이었다.     


강간으로 아이를 낳은 25세의 아이카는 아이에게 첫 젖을 물리기도 전에 모스크바 병원 화장실 창문으로 혼자 도망간다. 몽골계의 불법체류자 아이카는 고향에서 조폭들에게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늘 목숨을 걸고 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출산 때문에 쫓겨난 방송세트 청소 일자리마저 잃은 그녀는 후임 여성을 위협하기도 하지만 병약한 그녀를 아무도 받아주지 않자 낮에는 닭을 도살하는 공장에서 짐승처럼 일하고 잠은 불체자들이 모여있는 돼지우리 같은 쪽방에서 쪼그려서 잠을 자야 했다. 서울역 쪽방은 그것에 비하면 아파트 수준일 것이다. 산후회복이 안 된 상태에서 뛰쳐나온 그녀는 하혈을 하면서도 죽을 힘을 다해 일하지만 닭 도살장 업자들에게 마저 임금을 떼이고 조폭들에게 쫓기기 시작한 그녀는 모스크바의 냉혹한 추위에서도 하루하루를 강철 같은 냉정함으로 긴장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결국 조폭들에게 잡히고 더 이상 그녀에게 빼앗을 것이 없는 것을 안 조폭들은 그녀의 아이라도 가져가려 한다. 이미 아이에게 애정이 없는 그녀는 병원에서 아이를 찾아 조폭에게 전해주려고 눈보라 속에서 기다리다가 아이에게 젖을 물린다. 의사가 정기적으로 모유를 배출하지 않으면 유방암에 걸릴 거라는 말을 들은 후 혼자서 몰래 젖을 짜곤 했는데 처음으로 아이에게 젖을 물린 이상한 느낌에 자신도 모르게 그곳에서 아이와 함께 벗어난다.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그녀가 갈 곳은 없었고 조폭에게 잡힌다는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절체절명이란 이런 것인가. 결국 그녀도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느끼는 순간 처음으로 울음이 터져버렸다. 한없는 울음이었다. 그리고 자막만이 그녀와 상관없다는 듯 매정하게 올라갈 뿐이다.     


짐승들은 웃지도 많지만 울지도 못한다. 짐승들에게 감정은 생존에 불필요한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희망하며 즐겁거나 슬플 수 있는 동물은 오직 인간뿐이다. 즐거움의 기억이 없다면 슬픔도 없을 것이다. 짐승처럼 생존해야 했던 두 여자는 영화에서 단 한 번씩 미소를 지은 적이 있다. 일자리를 가졌다고 확신했을 때 단 1초 정도였지만. 자막이 끝난  후 그녀들도 곧 울음을 그치고 다시 더욱 강하게 살아갈 것이고 언젠가는 1초 보다 더 긴 시간 동안 웃을 날도 오겠지만 이처럼 현실이란 감성 드라마와는 다른 못본체 할 수 없는 부조리 투성이라는 것을 엿본 기분이다.



https://youtu.be/c-_5WIuh2uw


https://youtu.be/PsKZzGWvJW4


작가의 이전글 할 것 말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