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엔 주로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자주 온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렇게 헤어지기는 아쉽다며 남은 이야기를 주고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은 달콤한 요리냄새를 묻힌 채로 카페의 문을 열고, 아예 약속장소를 카페로 잡았다면 일행을 찾기 위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러다가 만날 사람을 찾고 눈이 마주치면 꺄아 소리를 지르거나 말없이 달려가 서로 부둥켜안거나 또 손을 맞잡고 폴짝폴짝 뛰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주문하는 것도 잊고, 자리에 앉는 것도 잊은 채로 반가움이 한껏 내려앉은 얼굴들은 어떻게 지냈으냐며 이야기를 이어가려다가 ‘아차차 주문부터 하자’하면서 그제야 카운터에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더욱 자주 볼 수 있는 모습들이다.
이런 만남들이 수없이 생겨나는 카페 풍경이지만, 그 와중에도 자기만의 세상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있다. 노트북을 들고 와 열심히 업무를 보는 사람들과 이어폰을 꽂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그리고 소란한 와중에도 책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말소리, 웃음소리에 카페음악까지 뒤섞인 상황에서 책에 몰두하는 게 신기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 역시 책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 편이지만, 오히려 쥐 죽은 듯이 조용한 환경에서는 생각보다 집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너무 조용하다 보니 아주 작은 소리도 크게 들려 그 소리에 집중을 빼앗기기 쉽고, 내가 내는 소리가 그처럼 크게 들릴까 싶어 더욱 신경 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느 정도 적당한 소음과 소리가 깔려있는 공간이 책에 집중하기 훨씬 편하다.
지금 일하는 지점은 주로 로스팅과 베이킹 그리고 사무업무가 주된 공간이라 정작 카페 매장은 협소한 편이지만, 이전에 근무한 지점은 매장이 넓고 테이블도 많아 매일 북적였다. 그래서 그 와중에도 책을 펼치고 차분히 읽는 사람이 있으면 괜히 더 눈길이 가곤 했다. 그것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나 혼자만이 느끼는 동질감 같기도 했고, 나도 카페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은데 일을 해야 하는 현실에서 느끼는 부러움 같은 감정이었다. 손님이 읽고 있는 책이 나도 읽어본 책이라면 당장 옆에 앉아 책에 대해 한참을 떠들고 이야기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저 소설의 어느쯤을 읽고 있으려나’ 혼자 상상해보기도 한다.
근무하는 지점이 바뀌고 더 이상 예전처럼 많은 손님들과 마주하진 못하지만, 지금 근무하는 매장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라 그런지 혼자 오는 손님들이 많다. 자주 오시는 손님 중에는 책과 함께 오시는 분들도 꽤 있다. 그중엔 2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여자 손님이 한분 계신데, 언제나 혼자서 별다른 짐도 없이 딱 한 권의 책만 들고 오신다. 아메리카노 아니면 카페라테를 주문하고 잠시 핸드폰을 보다가 책을 펼치는데, 그러면 나 역시 은밀하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실내온도가 너무 춥거나 덥지는 않은지, 카페음악이 너무 소란스럽지는 않은지, 볼륨은 적당한지,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볕이 너무 강하지는 않은지. 최대한 독서에 집중할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고, 그래서 아주 은밀하게 주변 환경을 세팅하는 것이다. 은밀한 독서환경 세팅이 끝나고, 손님도 더 이상 없다면 슬그머니 바를 빠져나와 안쪽 사무실로 이동한다. 아무래도 할 일 없이 바에 우두커니 서있으면 책 읽는 손님이 부담스러울 테니.
안쪽 사무실에서도 쇼핑몰관리나 디자인업무 등 할 일이 있지만, 특별히 중요한 업무가 없다면 나도 가끔씩 책 한 권을 펼쳐보기도 한다. 적막한 카페엔 가사가 없는 피아노곡이 조용히 흐르고, 방금 내린 커피의 향이 아직 머물러 있는 곳에 책을 읽는 두 사람이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뭔가 감성이 충전되는 기분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가 바로 내가 생각해 오던 카페의 추구미와 가깝다. 책을 읽으러 오는 손님도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이야기를 나누러 오는 손님들도 두런두런 말을 주고받기 좋은 곳. 달그락 거리는 잔부딪히는 소리가 있고, 중간중간 커피를 분쇄하고 추출하는 기계소리가 들려도 시끄럽게 느껴지지 않는 공간.
물론 현실은 추구미와 거리감이 좀 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며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고, 안 되는 것을 막무가내로 해내라는 사람들도 있다. 금연문구를 대문짝만 하게 뽑아 붙여놓아도 뻑뻑 담배를 피우면서 꽁초를 잔에 비벼 끄는 사람이나 온몸에 명품과 금붙이로 치장을 해놓고 커피값은 너무 비싸다며 왜 커피가격이 이 가격이 나오는지에 대해 캐묻는 사람들까지...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도,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으로서도 내가 원하는 카페라는 공간의 추구미와 가까운 분위기와 만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럼에도 ‘오늘은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가방에 책 한 권을 챙겨 넣고 집을 나선다. 일터가 되었든 방문객이 되었든 카페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만나면 슬쩍 훔쳐보고는 나도 주섬주섬 책 한 권을 꺼내 읽을 것이다. 차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눈앞엔 수많은 글자들이 있겠지,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글자들만큼이나 수많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겠지,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