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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그 Lee Jan 05. 2024

11. 금 닷돈 쌍가락지 3.

오체투지로 조상님 감동시키기



사흘이 지났다.

이제 좀 있으면 S군의 어머니가 도착할 텐데 큰일이다. 그동안 신명님들께 여러 번 사정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 막무가내 제자야,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소용없어 포기하라고"


결국 소득 없이 맞이했다. 약속한 사흘을 기다려 다시 온 S군 어머니의 기대에 찬 그 눈빛을 외면하기 어렵다.


결국 할 수 없이 금반지 얘기를 꺼냈다.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아셨냐고 묻는다.

그래서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산소며 제사며 과수원이며 죽 얘기하고 그래서

자손에게 서운하여 조상이 등을 돌려 일이 안되니 조상을 달래서 마음을 얻어야 된다고 차근히

설명하자 고개를 숙인다.

한참 후에 결국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


제자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에 옆에 살포시 꽃선녀가 와 앉는다. 꽃선녀는 알고 있다. 착한 제자가 딱한 사정을 그대로 외면하지 못할 거라는 걸. 옆에서 해야 할 것들을 제자에게 조목조목 일러준다.


우선 똑같은 닷돈 짜리 금반지를 맞춰서  시어머니께 올려드리고 죄송하다고 사죄드리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순서다 하니, 알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조상님께 천도재를 지내서 넋을 달래주고 좋은 곳으로 가시게 극락왕생을 빌어주어야 한다고 하니 알았다고  그 또한 하겠다고 한다.


세 번째는  조상님 제사를 제대로 모시고 산소도

잘 돌보겠느냐 하니 알았다고 그 또한 알겠다 한다.

그동안 자손 노릇을  못하여 죄송하다고 까지 하니 지금으로 봐서는 정말 이르는 대로 잘할 거 같다.

그래서 우선 산소부터 찾아서  참초도 하고 말끔하게 주변도 다듬으라고 일러준다.


시험이 한 달 남았으니 잘 부탁드린다고 이번엔

꼭 합격하게 도와만 주시면 뭐든 하겠다고

합장하며 연신 고개를 조아린다.


순간 착한 제자는 손님이 짠하기도

하고 거듭 실패하는 자식을 지켜보는 어미 된 마음이 어떨까 싶어 안되었기도 하다. 신명님을 졸라

어떻게든 이번에 꼭 합격시켜 주고 싶다.

제자의 성정을 잘 아는 신명님들도 걱정이다.

안된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무조건 어떻게든 해 달라고 조를 건 뻔한 일인데 말이다.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여 당장은 자식의 일이라 다 하겠다고 하지만 잘 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딴 얼굴이 되는 사람을 여럿 봐왔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소용없다 알려줘도 말 안 듣고 힘들게 성불시키고는 상처받는 제자가 안쓰러운데 어쩔 도리가 없다. 사실 찾아온 사람의 사정이 딱해서 맘 약해지는 건 신명님도 마찬가지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약속을 잘 지키면 합격을 시켜주자고 합의한다. 대신 조건이 있다. 제자가 맨발로 오체투지를 해야 한다. 그것도 소원암에서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산 언덕의 10km 되는 돌길을 말이다.


등에는 신도의 합격성취 축원문을 넣어 짊어지고, 세 걸음 걷고 멈춰 서서 절하며 온몸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땅에 닿게 바닥에 엎드린 뒤에 다시 일어나 세 걸음 걷고 멈춰 서서 절하며 오체투지 하고... 이것을 반복하여야 한다.


물론 신명님의 시험이다.

이유가 분명하여 반대하는데 굳이 제자가 들어주고자 하면 스스로 고통을 감수해 낼 수 있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착하기만 한 제자가 안쓰러워도 할 수 없다. 힘들어서 안 하겠다고 하면 그만일 텐데 저 막무가내 제자가 이번에도 그럴 리도 없을 테고. 저런 제자를 만나러 우리 소원암을 찾아오게 된 건 손님의 복이다.


한지에 경명주사로 선관도사님께 내려받은 천문을 쓰고 정성스럽게 준비한  재물을 들고 S군 어머니와 함께 산소로 향했다. 미리 지시한 대로 산소가 말끔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이제야 자손이 돌보는 산소의 모양새가 되었다. 먼저 과일과 포와 술로 상을 차려 산신님께 예를 갖춰 인사를 드리고 난 후에 시부모님 산소 앞에 상을 차렸다. 예를 갖추어 절을 하고 축원한다. 앞서 일러준 대로 앞으로는 자주 찾아뵙고 자손으로서 본분을 다 하겠노라고 약속한다.


다음 날. 제자는 수험 번호와 이름등이 적힌 축원문을 가지고 소원암을 나선다.  오체투지 하러 가는 길이다. 그럼 그렇지 시련을 마다할 제자가 아닌 것을... 이렇게까지 하는 것을

손님들은 알지도 못하는데, 제자가

저리 하는 것에는 또 하나의 큰 이유가 있다. 바로 손님의 조상님, 그러니까 시험 볼 사람의 조상들이

' 생판 남인 스님이 내 자손을 위해서 저렇게까지 고생을 하는데 우리도 그러지 말고 도와주자'라고 할 수 있게 곧 조상영가에게 감동을 주어 마음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다.


오체투지를 마치고 돌아온 제자를

명도 동자가 찾는다. 법복의 양쪽 무릎이 돌에 닿아 헐어있다. 말이 그렇지 돌길을 그것도 산 언덕길을 오체투지라니... 그 힘든 고행을 마치고도

제자는 늘 그러듯 힘든 내색도 안 한다.


" 이번엔 시험에 떨어질 거야 "

명도 동자의 말에 제자가 화들짝 놀란다.

오체투지까지 다 했는데 이러기가 있냐고

따질 참인데, 잠자코  마저 들어보라 한다.

" 다른 경우와 달라서 한 번에 안된다고, 조상들이 아직은 완전히 믿지 못하니까. 본인은 시험을 보고 와서 잘 봐서 붙을 줄 알겠지만, 이름을 안 써서 떨어질 거야. 그리고 다음 약속을 잘 지키면 그때 합격하게 해 줄게. 그니까 그렇게 말해 줘. 뭐 그래도 그 손님은 믿지 않겠지만 말이야."


시험 전날에 말을 전한다.

아마 이번엔 떨어질 거니 속상해하지 마시고, 다음에 조상님께 한 약속을 잘 지키면 꼭 합격할 테니

너무 염려 마시라고.


다음날 S군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아들이 시험을 너무 잘 봤다고. 집에 와서 복기해 보니 다 맞았다고

그래서 이번에 합격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해서 공부하던 책도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눠줬다고. 친척들에게 전화 돌려 축하도 받았노라고.

분명히 이번에 안된다고 미리 말을 했었고, 결과도 안 나왔는데 성급하게 이러시면 안 된다고 당부했지만 소용없었다.


한 참 후에 다시 소원암을 찾았다. 전화했을 때랑은 다르게 풀이 죽어있다. 짐작은 갔으나 먼저 묻지 않는다.

" 스님 말씀이 맞았네요. 합격인 줄 알았는데 떨어졌대서 전화해서 이유를 물으니 애가 자기 이름을 안 썼다고 하네요.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나직이 한 마디 한다.


" 이제야 제 말을 믿으시겠어요..? "


그 말에 면구스러운 듯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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