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감나무가 앞마당이 있었고 뒷마당으로 돌아가는 옆 마당에는 사과나무와 작은 텃밭에 고추와 상추가 자랐다. 요맘때면 긴 장대로 노란 감을 똑똑 따서 곶감을 만들곤 했었다.
기억 속에 꽤 넓었던 뒷마당에는 장독대, 땔감을 쌓아두는 창고, 나무가 타고 난 재를 쌓아두는 헛간, 그리고 집보다 높았던 배나무 두 그루와 앵두나무가 있었다. 그곳은 내 놀이터였다. 나보다 훨씬 컸던 항아리부터 내 무릎만 한 크기까지 가득했던 장독대는 간장, 고추장, 된장, 소금이 가득했다. 아침에 음식을 준비하는 할머니의 심부름을 시작으로 계절마다 장아찌며 말랭이, 식혜, 과일, 소금 속에 생선까지 지금의 냉장고처럼 먹거리가 가득해 자주 들락거리곤 했었다.
배나무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이 놀이였다. 떨어진 꽃과 열매를 가지고 소꿉놀이를 했고 탐스럽게 익은 배는 시원한 간식이 되어주었다. 뒷마당 풍경이 보이는 시원한 뒷마루에 누워 놀다가 낮잠을 자기도 했다.
마당 가운데쯤 행랑채, 안채 그리고 사랑채라고 불렀던 집이 디귿자 모양으로 있었다.
할머니가 행랑채라 불렀던 곳은 곡식과 채소 등 먹거리가 있는 작은 창고와 소우리, 돼지우리, 그리고 끝쪽으로 화장실이 있었다.
사랑채라 불렸던 곳에는 두 개의 방이 이어져 있는데 비어있는 증조할아버지방과 내방이 있었다. 조부모님은 연탄으로 난방이 되는 안채에서 생활했다. 안채에는 부엌과 방이 두 개, 앞뒤로 마루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는 할머니 옆에서 자다가 고학년이 되면서 내 방에서 따로 자기 시작했다.
오래된 집은 웃풍이 있기 마련인데 어릴 적 내방은 아침에 더 따뜻해졌다. 이유는 귀한 소에게 줄 여물을 끓이는 가마솥이 내 방의 귀뚜라미 보일러였기 때문이다. 아침저녁으로 할아버지는 군불을 때어 소먹이를 뜨끈하게 만들어냈고 덕분에 일어날 때까지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소여물이 익는 냄새가 잠을 깨우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곤 했다.
아궁이의 숯을 보고 있으면 몸속 깊은 곳까지 따뜻함과 함께 늦가을의 쌀쌀함이 사라지곤 했다. 사춘기 소녀는 이때부터 불멍을 좋아하게 되었다.
들기름 발라 소금 뿌려 석쇠에 구운 김
아침상에 도움을 주고 싶은 작은 손은 할머니가 하는 것을 가만 보고 있다가 따라 한다.
반짝반짝 윤기 흐르는 까만 김에 갓 짜온 들기름을 펴 바르고 고운 소금을 솔솔 뿌린다. 석쇠에 김을 두 장씩 겹쳐 넣어 앞뒤로 돌려가며 굽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조금이라도 긴장을 풀면 김이 연두색을 내며 타곤 했기에 숯 위의 석쇠를 뚫어져라 쳐다보곤 했다.
고소한 들기름과 김의 향이 코 끝을 간질인다. 아침에 먹을 만큼 10장쯤 구운 후 6등분으로 잘라서 접시에 올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에 갓 구운 김을 싸 먹으면 참 맛났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구운 김을 사서 먹지만 김은 바로바로 구워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는 것을 그때 이미 알아버렸다.
가끔 그 맛이 그리울 땐 기름 바르고 소금 뿌려 인덕션 위 팬에 구워 먹어 보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아 아쉽다.
15년 전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5년 후 할머니까지 돌아가시면서 지금은 집터와 나무들만 남아있다. 그때는 학교 운동장만큼 넓었던 것 같은데 텅 빈 집터는 생각보다 작고 외로워 보인다. 친정에 갈 때마다 들러보는 가슴 찡 한 그곳을 내일 들러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