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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 Feb 28. 2020

11. 우리의 오늘과 내일 - 언어를 바꾸다

[20대 조기폐경 극복 에세이 11]

내 글을 읽으며 따라오던 독자라면, 내가 '생리(정혈)'이라고 표기를 보셨을 것이다. 이렇게 표기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생리 혹은 월경은 의학적으로 통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에 주 용어로 표기했다. 정혈이라는 단어가  모든 독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생리’와 함께 사용했다. 단, 정혈이라는 말을 괄호에 넣은 이유는 이 챕터를 이어나가기 위함도 있었다.


언어가 중요한 이유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사상과 역사가 언어에 녹아져 있기 때문이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 사람들은 소통을 하기도 하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교육을 받기도 한다.  일제강점기 때 한국어 말살 정책도 ‘언어’를 통제함으로 ‘사상’을 통제하려고 했던 사례이다.


페미니즘 흐름에서 잃어버린 단어를 되찾자는 운동이 있다. 이 흐름이 나에게 주는 의미를 풀어보고자 한다.


1) 자궁을 포궁으로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해도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을 그렇게도 구박했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성염색체는 XY인 데 반하여 여성의 성염색체는 XX이기 때문에, 신생아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남성의 염색체인데, 즉, X염색체를 가진 정자는 난자의 X염색체와 만나 딸(XX)을, Y염색체를 가진 정자는 아들(XY)을 낳게 된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겠지?

남성의 문제라고 생각은 안 하고, 모든 잘못은 여성에게 있었다. 둘째 부인을 들이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고  대를 잇기 위해서는 그렇게도 아들, 아들 했었다.

 

그러나 세상이 변했고 이제는 대놓고 여성을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들보다는 딸이 키우기 쉽고 , 나이 들어서 효도하는 것도 결국은 딸이라고 하면서 딸을 선호하게 되었다. 실제로 자료를 보면 이제는 여초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실감하게 된다.

통계청 제공, 주민등록 인구 및 세대 현황(2018년 4월 말 기준) - 여자 인구수: 2천593만(50.1%) / 남자 인구수: 2천585만(49.9%)


페미니즘을 알아가고 깨닫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보니 여전히 ‘빻은 질문’은 많이 받는다. “이제 결혼할 때 다되었네!” , “ 일찍 결혼해야 아기 낳기 좋다”. “얼른 애기 나아야 애가 좀 똑똑해” , “둘은 낳아야지” … 대충 열거만 해도 이 정도는 된다.

임신과 출산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굳이 저런 얘기는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아무리 가깝다고 생각해서 하는 이야기, 나를 아껴서 하는 이야기라지만 결국은 타인의 성생활을 장려하는 이야기가 아닌가.사적인 영역은 사적인 공간으로 제발 좀 두자.


나는 그래서 그 ‘자궁’이라는 용어를 ‘포궁’으로 변경하는 흐름에 굉장히 찬성했다.

아들자, 집궁 자궁(한문: 子宮) 이 아닌 세포의 집이라는 의미의 포궁.  


언어가 주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아기집이라는 뜻으로 와 닿았을 때는 한없이 내가 모자란 것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세포의 집이라고 생각하자, ‘그렇지, 내 몸에는 세포가 있고 , 이 곳은 내 장기이고 , 나는 신체에서 이 부분이 약한 것이지’하고 인지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 흐름이 유난스럽다고 하겠지만, 언어가 주는 위로와 언어가 바꾸는 생각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영향력이 크다.


2) 생리를 정혈로 바꾸다.


‘월경’ 달마다 치르는 여성의 생리 현상을 한 번 더 에둘러 표현해서 ‘생리’라고 쓰기 시작했고, 여성이 ‘감히’ 생리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민망스러워서 한국에서는 한번 더 에둘러 표현하는 ‘그날’, ‘마법’ 이런 식으로 표현했다. 어린 시절 그런 표현을 안 써본 여성이 있을까? 여자들끼리 말할 때도 “야 나 그날이야” 이렇게 말했다.


정혈은 그런 완곡한 표현에서 좀 더 직설적이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정혈’ ( 정할 정,, 血 피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인 것은 같은데, 정액()은  정할 정 자를 사용한다.  ‘순수한 진액’이라는 뜻이다.


정혈이라는 말이 현재 보편화되어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반응은 역시나였다. ‘아니 왜 이미 있는 단어를 굳이 바꿔야 해?’, ‘그거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달라진다.



 언어가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체와 관련된 변화는 직접적이고 긍정적으로 다가올수록 좋다. 비로소 ‘내 몸’, ‘내 신체 현상’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3) 폐경을 완경으로 바꾸다.

폐경은 닫을 폐, 지날 경 (閉經) 자를 써서 달마다 하는 정혈을 닫는다라는 뜻이다. ‘닫는다… 닫히고, 지나가 버린다.’ 그렇다. 폐업할 때 그 폐자다. 그래서 폐경보다는  완경 (완성할 완完, 지날 경經 자를 써서 완성되었다. 원숙해진다는 의미를 표현하는 것이다.


폐경이라는 단어는 마치 여성이길 끝났다는 뜻으로 느껴진다. 실상은 그 이후에도 살아가는 날이 더 많고, 생물학적으로 변화가 일어났을 뿐인데 ‘나는 더 이상 여자가 아니야’라는 심리적인 압박을 주는 단어다.  


책 <호르몬의 거짓말 >의 내용을 요약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환자의 건강보다 이윤추구가 우선이다. 그리고 이러한 움직임은 각종 플랫폼을 통해서 폐경은 여성으로서의 기능이 끝났고,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종 약들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만든다”  


과업을 완성하고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기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언어가 주는 부정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학자들도 완경이라는 단어를 권장한다고 했다. ‘어떠한 과업을 완성했다’라는 뜻을 내포할 때 사회적, 심리적 상실감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조기폐경도 결국은 조기 완경으로,  남들보다 그 과업을 좀 더 빨리 마쳤을 뿐이다.


그 이유가 명확하던, 명확하지 않던,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은 명확하기에 이러한 단어 사용을 적극 권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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