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리한 하루
지하철이 흔들릴 때마다 소녀의 킥보드도 덩달아 흔들거렸다. 킥보드 손잡이에 달린 에코백 세 개는 마치 산타의 선물 자루처럼 불룩했으나, 반대편 손잡이에 달린 도시락 가방이 더욱 눈에 띄었다. 임산부 좌석에 앉은 그 아이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아 킥보드에 발을 올려두었다. 이미 때가 잔뜩 묻어 본래의 색깔이 무색해진 분홍색 운동화는 하루의 분주함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듯했다.
"우걱우걱."
도시락에서 계란말이를 큼직하게 집어 입에 넣은 아이의 모습이 어쩐지 퇴근길 회사원의 터프한 저녁식사 같아 보였다. 아이는 등을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옆자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던 아저씨는 저도 모르게 힐끔 곁눈질했다. 아이는 계란말이를 다 씹기도 전에 이번엔 김밥을 집었다. 그 모습은 제법 여유로운 듯했다.
"어휴, 오늘도 고생했다."
소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옆자리 아저씨의 눈썹이 위로 치솟았다. "쟤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아이는 주변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밥과 계란말이를 번갈아 입에 넣으며 도시락을 말끔히 비웠다. 젓가락을 손에 쥐고 핸드폰 화면을 빤히 쳐다보는 아이. 화면 속에서는 알록달록한 말랑이를 갖고 노는 유튜브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다 먹은 도시락을 깔끔히 닫고 가방 속에 집어넣은 아이는 한숨을 푹 쉬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자, 다음 역에서 내릴 준비를 해볼까?"
지하철 안내 방송이 나왔고, 아이는 에코백과 도시락 가방이 잔뜩 매달린 킥보드를 들고 문 앞으로 걸어 나갔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소녀는 동네에서 가장 번화한 역에서 내렸다. 벌써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옆자리 아저씨는 궁금증이 폭발한 듯 뒤돌아 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라면 도시락을 굳이 지하철에서 먹을 이유가 없을 텐데. 그렇다면 설마 다음 학원을 가는 길인가? 애가 몸집도 작은데 부모가 너무 가혹하게 학원을 돌리잖아? 온갖 추측이 머릿속을 채웠다.
작지만 당당한 아이의 뒷모습은 역에서 내리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그 애는 과연 오늘 하루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한 걸까. 이 도시의 수많은 어른들 사이에서 그 아이의 하루는 미스터리한 빛을 내고 있었다.
* 퇴근길에 한 아이를 보고 떠오른 영감으로 쓴 단편소설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