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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쨌거나 글쓴이 Mar 25. 2017

자녀라는 버거운 이름

  어른스러운 모습을 기대했다. 실수했다면 인정하고 장난스럽게라도 용서를 구하는 모습.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고 나에게 떠미는 모습이 실망스러웠다. 그것이 나의 아빠일지라도.


  가부장적인 아빠를 사랑했다. 미워했고 또 동정했지만 그래도 그 기반엔 사랑이 있긴 했다. 저이가 저렇게 된 것은 시대의 탓이라고, 그리고 환경의 탓이라고. 악착같이 살다보니 저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모난 면이 많아 좋은 남편도 좋은 아빠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책임감을 보이려는 그를 동경하면서도 이해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더 헤헤거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 마냥 굴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면 그가 준 상처가 별것 아닌것처럼 되지 않을까 해서. 겉으로 보기엔 우리가 가족으로서 꽤 괜찮아보이지 않을까 하면서.


 아빠들은 정말 모르는걸까. 아이들이 나를 외면해요, 직장에서 잘리고 나니 아이들도 아내도 나를 보지 않아요, 라는 말이 웃기게 들린다는 걸. 유대를 쌓은 적 없는 우리가 어떻게 마주할 수 있을까. 가끔 보아도 이렇게 버거운데. 자신의 실수는 모르는 척 넘겨버리면, 넘겨받은 이가 허덕이지 않을리 없다. 그 이가 하필 어른이 되어가는 자녀라면. 그리고 벅찬 숨을 겨우겨우 몰아쉬는 것에 익숙해질때쯤엔 기억속에 아빠의 존재가 있을리 없다. 있다면, 나는 저런 어른은 되지 않겠다는 생각. 다짐. 닮지 않겠다는 도리질.


 그럼에도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한다면, 그래 차라리 그런 못되먹은 인간이 되겠다. 차라리 그게 나을만큼의 절망감을 왜 어버이되는 자는 모르는지. 이해는 자식된 자에게만 구하니 나는 그냥 이해를 시키지도 바라지도 않고 거지발싸개같은 그런 인간을 해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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