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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구 Aug 17. 2021

구분하기 : 피해망상과 피해망상이 아닌 것 - 2

피해망상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하여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평소 가던 카페 말고 좀 더 멀리 있는 다른 곳에 가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걷기에 좋은 날이었다던가 회사에 일찍 복귀해서 폰이나 쳐다보다가 점심 시간을 날리고 싶지 않았던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체로 화창하기보단 밝지만 어딘가 뿌연 날이었던 건 기억이 난다.


   사람들과 왁자지껄 들어선 카페에는 카운터부터 길게 줄이 늘어서있었는데, 점심 시간의 회사 근처 카페들이 그렇듯 사람이 금방 빠질 거란걸 알았고 별 생각 없이 시덥잖은 얘기를 하며 중간중간 카운터를 힐끗거리며 그렇게 있었다.


   그 때 우리 바로 뒤에 있던 카페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중년 남성 셋이 들어왔는데 그 중 한 명이 메뉴를 확인하겠다고 무리해서 앞으로 가려다가 내 어깨를 팍 밀쳤고 그 바람에 나는 조금 휘청거렸다. 하지만 사람이 많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다. 아니다 정확히는 대수롭지 않은 척 넘긴 거였다. 내 어깨 말고도 수많은 어깨가 줄 바깥으로 나와있는데 정확히 내 어깨를 그 정도의 강도로 치고 간 것에 조금 불쾌했고, 앞에 선 다른 남자들의 어깨는 아주 잘 피해가는 모습에 환멸났지만 이런 불쾌감을 드러내는 일은 사회생활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그랬다.


   이제 우리 차례가 되었고 팀원들은 내게 주문을 맡긴  카운터 옆으로 살짝 빠져있었다. 카운터는  명이 보고 있었는데 양쪽으로 주문이 들어가야했기 때문에 우리 일행이 자리를 차지하고   없었고  때문에 내가 주문과 계산을 맡게  것이었다.


   나는 주문을 할 때에도 이왕이면 여자분께 하는 편을 조금 더 선호하는데 이 쪽이 마음이 좀 더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날은 카운터의 둘 모두 남성이었고 내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으므로 아무나에게 주문을 해야했다. 불행하게도 우리가 시키려는 음료는 겹치는 것이 하나 없이 제각각이었고 나는 음료들의 풀네임을 외우는 일이 어려워 이름 전체를 말하기보단 적당히 알아들을법한 앞단만 말하게 됐는데 알바생은 그게 퍽 답답했던지 짜증을 냈다. '뭐라고요?' '다시요' '다시요!' 채근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니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지금 이 곳엔 사람이 많고 일이 많으면 당연히 짜증이 나지 싶어 분명하고 정확하게 대신 최대한 빠르게 말하려 노력했다.


   이후 아르바이트생에게 카드를 건네고 포인트 적립을 하는 과정에서 나는 조금 더 눈치를 보게 됐는데 터치패드에 번호를 입력하다보니 내 휴대폰번호 중 3이 잘 눌리지 않았고 그걸 반복해서 누르려고 시도하다가 3이 안 눌린다고 말했고 또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눌리지 않는단 걸 알았고 그걸 다시 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포인트 적립이 중요치는 않았지만 나도 괜한 오기가 생겨 재차 시도해보려던 차였다.


   그런데 갑자기 그 알바생이 들릴듯말듯한 목소리로 '아씨발' 했다. 그리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가 나를 노려봤고 나는 이 때문에 화가 치밀었지만 일단 포인트 적립은 포기하고 물러나야했다. 알바생이 '다음 손님 주문 도와드릴게요' 했기 때문이다. 포인트는 다음에 영수증을 가지고 오시면 적립해드리겠다던가 죄송한데 오늘은 적립이 안된다던가 하는 안내 같은 건 없었다.


   나는 '아씨발'을 듣자마자 팀원들에게 가서 저 알바생이 내게 욕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팀원들은 '에이 그럴리가 있나' 했는데, 이 말을 들으니 갑자기 내가 들은 것이 상상이었나 진짜였나 혼동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씨발'이라는 말은 잘못 듣기도 힘들지 않은가요. 물론 이 말을 팀원들에게 하진 못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내내 찜찜한 마음으로 근무하다 퇴근을 하게 되었는데, 퇴근길에 그 알바생을 마주쳤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걸었는데 왠지 나를 노려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좀 더 빨리 걸었고 자주 뒤돌아봤다. 그 사람은 그저 지하철역으로 갈 뿐이었는데 왜 그렇게까지 불안했던걸까 나는 '아씨발'이 내가 느낀 위협이란 걸, 그렇기 때문에 나는 지금도 불안할 수 밖에 없는 거란 걸 알았지만 이 모든 것이 나의 신경증에서 비롯된 병증인 것 같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그 사람이 내게 '아씨발' 했던 일이 진짜였는지 지금도 의심이 된다. 나는 자주 내 기억을 의심하고, 내가 느낀 감정을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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