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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로시 Aug 02. 2020

행복의 가시밭길

진정한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


   누군가가 당신에게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당신 마음속에 하나둘씩 보이는, 당신을 '설레게', '기대하게' 하는 것들. 그것들이 한 조각씩 모여서 당신이라는, 당신의 정체성이라는 퍼즐을 완성한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든, 보편적이지 않은 것이든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것들의 가치의 경중을 비교하는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으며, 애초에 가능하지도 않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을 할 때가 바로 내가 가장 '나'다운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은 내가 나다워지는 것을 곱게 봐줄 만큼 친절하지 못하다. 퍼즐을 완성하는 것을 방해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야속한 현실은 때로는 학업의 부담으로, 때로는 돈의 제약으로 나를 견제한다. 약해빠진 몸뚱아리는 내가 조금만 무리해서 조각들을 찾으러 다니기만 하면 여지없이 파업에 들어가 몸져눕는다. 인간관계에서 나오는 의무와 부담감들은 우리가 언제나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짐이다. 항상 우리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이러한 걸림돌에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때, 그 순간 우리는 ‘힘들다’고 느낀다. 즉,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 때, 진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것들을 해치워야 한다는 귀찮은 압박감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들로 인해 당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들과 멀어지게 되는 탓이 더 크다. 앞서 진정 좋아하는 것들을 할 때가 가장 나다운 순간이라 했듯이, 좋아하는 것들과 멀어지면 나 자신과도 멀어지게 된다. 의무와 책임들에 둘러싸여 진정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나 자신이 더 이상 주체로 느껴지지 않고 '도구'로 느껴지게 된다. 가장 비참한 순간이다.


   사실 내가 진정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힘들 일도 없다. 하라는 것을 하고, 쉬라면 쉬고, 외부에서 들리는 목소리에만 맞춰서 산다면 인생을 훨씬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당신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당신이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이 되는가? 당신과 같은 목소리를 듣고, 같은 길을 따라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당신은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 있는가? 불리는 이름과 보이는 외모를 제외하고는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나를 잃는 일은 너무 슬픈 일이다. 나를 제물로 바쳐 얻는 편함은 일시적인 쾌락이 되어주긴 쉽지만,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행복이 되어주긴 힘들다.


   우린 모두 덫에 걸려있는 연약한 사슴과 같아서, 내가 나를 찾아 발버둥 칠수록 야속하게도 세상은 온 몸을 더욱 아프게 죄어올 것이다. 그 고통에 끝없이 몸부림치겠지만, 그 처절한 몸짓은 내가 나에 닿기 위한 숭고한 몸짓이다. 덫에 묶여 있는 사실 조차 깨닫지 못한 채로 아프지 않을 만큼만 적당히 사는 삶 보다는, 괴롭더라도 그 덫에서 벗어나려는 삶을 지향하고 싶다. 아니, 이미 그 괴로운 진실을 알게 됐고 맛본 탓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이렇게 된 이상 힘들어하면서도 더 고통스럽게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이 가시밭길을 걸어갈 나에게, 또한 이 글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나와 같은 길을 가게 될 당신에게, 소소하지만 진심어린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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