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다리는 버스도, 날 기다리는 버스도 없다. 있다고 한들 딱히 목적지라 부를 곳도 없다. 도로는 온통 어디론가로 바삐 향하는 차들로 가득하다. 도대체 이 시간에 갈 곳이 어디가 있는건지. 대답은커녕 비웃을 시간조차 없다는 듯 무표정으로 흘러가는 도로의 생리는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
건조한 날들의 연속이다.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잘 하고 있는 것도 없는 날들. 곡류를 따라 무기력하게 흘러가는 낙엽이 된 기분이다. 어느덧 이런 시간들에 익숙해졌고, 이제는 안다. 나는 지금 수많은 교차로 중 하나의 빨간불에 서있고, 곧 초록불이 켜지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너갈 거란 걸.
내가 뭘 한다고 초록불이 일찍 들어오지는 않으며, 물론 안 한다고 늦지도 않는다. 나이가 늘어갈수록 나의 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게 거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는다. 세상은 온통 씁쓸한 진실들로 가득 차 있다. 점점 아메리카노와 친해져 가는 게 단순히 입맛의 문제가 아닐지도 몰라.
이런 알량한 생각들을 굴리면서, 도로의 빨간불들이 어지러이 뒤섞이는 걸 보고 있으니 속이 울렁거린다. 진짜 슬픈 건 무기력한 내 모습보다, 무기력함에 투항한 내 모습이다. 그럼 뭐 어쩌겠어, 싶다가도 아쉬운 마음은 놓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 내일부터 시험기간인 게 차라리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늘 그랬듯,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이 교차로의 빨간불을 무사히 지나갔으면 하고 기도하는 마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