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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Jul 30. 2024

조기 유학 환타지

영어 유튜버가 본 열 살 딸의 유학 생활

뉴질랜드에 온 지 7개월이 지났다.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10살 딸 아이가 영어가 느는 과정이었다.


그 이유는 나의 영어 공부 과정이 “체험 삶의 현장”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영어 실력은 거의 일을 하면서 얻었다. 하나씩 하나씩, 토익 강사, 토플 강사, 회화 강사가 되기 위해, 때마다 시험을 보거나 공부했다. 또, 초중학생을 가르치는 학원에서 외국인 강사 관리를 담당했다. 실장, 부원장 업무를 하면서, 면접 보고, 고용하고, 계약서를 쓰는 일부터 ‘빨래 건조대를 사달라’,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통역하고 해결하며 영어 실력을 키웠다. 치열하게 내 일을 잘하기 위해 배우고 써먹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런 나에게 어린 나이에 유학을 가서 영어를 배우는 과정은 얼마나 고상해 보이는지. 딸을 통해 대리만족을 할 참이었다. 그런데 웬걸. 한 학기가 끝나고 선생님과 면담을 하는데, 선생님의 말에 뼈를 맞았다.


“아시아계 친구들이랑은 말을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말을 안하려고 해요. 수업 시간에도 번역기에 의존하며 스스로 문장을 쓰려고 하지 않고요.”


한마디로 영어 회피 중. ‘아니… 유학을 가면 저절로 영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니’. 그저 신나게 뛰어놀다 보면 언젠가 나와 달리 매지컬하게 영어를 하겠지 생각했던가? (그렇다고 영어가 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영어를 피하며 불편한 학교 생활을 하고 있고. 더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반성이 되었다. 나의 고상한 삶에 대한 환상이 오히려 아이가 현실을 피하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나의 엄마로서의 장점은 아이에게 뭘 가르치려 하기 전에 충분히 질문해주는 것(장점도 있다는 주장). 그날 저녁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영어에 대한 감정을 물었고, 역시나 아이는 좀 더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수업 시간에 종종 딴짓을 하며 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가 느꼈던 곤혹스러움이 전해졌고, 솔직한 대답이 소중했다. 대화 덕분에 우리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단어를 외우고, 책을 읽고, 문장을 쓰는 것이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억지로 참고 공부하는 존재로 키우고 싶지는 않다. 내가 알기론 공부는 재미있는 거다. 그리고 어린 시절이 치열한 구직을 위한 전초전이 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아이를 내가 꿈꿔온 판타지에 가둬서도 안 될 일이라는 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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