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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May 03. 2020

남자분이 애 보는 일 한다고요?

만화가가 꿈이었던 한 남자가 가정부가 되기까지



나는 현재 초등학생 1~3학년 아이들을 가르치는 남성 돌봄교사다. 현재 맞벌이 가정의 부모님을 대신해서 아이를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아이들이 머물다 가는 쉼터가 있고, 나는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에는 하교 후에 쉼터로 오고, 방학중에는 아이들이 부모님의 출근시간에 맞춰 아침 일찍 쉼터로 온다. 아이들과 잠자는 것,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 걸 빼고 거의 모든 시간을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아이들은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나는 교사라기보단 가정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나의 전공은 교육이나 보육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였다. 나의 전공은 만화, 애니메이션이었는데, 막상 대학을 들어가고 전공과 관련된 기술과 학문을 배우면서 나의 적성과는 거리가 있는 분야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만의 만화나 애니메이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지만, 그림 그리는 거에 소질이 없던 내가 막상 그림을 배우고, 직접 제작 현장에 뛰어들어보니, 적성에 맞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된다. 그렇게 나의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고, 나는 다른 진로를 모색해봐야 했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선택하게 된 진로는 교육자의 길이었다.


내가 만화, 애니메이션이라는 전공을 택하게 된 이유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작품으로 표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다양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들을 보면 '저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드는, 이상적인 세계를 표현한 작품들이 있다. 그런 작품들처럼, 나는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세계를 작품을 통해 표현해보고 싶었고, 가장 표현할 수 있는 범위가 넓은 매체인 만화, 애니메이션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림에 소질이 없던 내가 만화, 애니메이션을 생업으로 삼기엔 무리라는 판단을 내렸고, 그림을 그리지 않고 나의 세계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다가 문득, 나의 세계관을 가상세계인 작품으로 표현할 게 아니라, 현실 속에 직접 그 세계를 실현해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라나는 아이들을 잘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으로 잘 키워내야, 그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돼서 세상을 이상적으로 변화시키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라나는 아이들을 잘 키워내기 위해 교육자로서의 나의 길을 택하게 된다.


근데 교육과는 완전 다른 분야의 전공이고, 그 전공마저 그만둘까 말까 고민하는 지금 나의 상황에서 어떻게 교육자가 될 수 있을까? 현재 다니는 대학을 중퇴하고 대입 공부를 다시 해서 교육학과나 교대를 가야 할 테고, 4년 동안 공부해서 졸업도 해야 할 테고, 바늘구멍이라는 임용고시도 통과해야 할 테고... 최소한 7년은 소요되는 시간이다. 거기다가 넉넉한 가정형편도 아니었기에, 7년의 시간 동안에 가정경제에 짐 덩어리가 될 순 없었다. 그렇게 시간적, 경제적으로도 과도한 투자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나는 기존의 국가 주도의 교육시스템을 답습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래도 대학 입시라는 획일적인 목적성을 가진 공교육 안에서는 나의 교육철학을 아이들에게 펼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관련 전공자도 아니고, 기존 교육시스템 안에서 일하고 싶지도 않았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게 있을까? 오랜 고민 끝에 나는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선택한다. 사실 학교나 교육기관은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그곳에서 인성이나 삶을 살아가는 가치관에 대해 배우는 걸 기대하긴 어렵다. 인성이나 가치관은 사실 학교보다 가정교육이나 함께 살아가는 주변 어른들의 돌봄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근데 현대사회는 그런 가정교육과 돌봄이 무너진 사회다. 불경기의 여파로 부모 모두 맞벌이를 하러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아이는 대부분 보육시설에 맡겨지고, 여성들도 출산과 육아에 얽매여 자신의 꿈이 단절되는 것을 원치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점차 가정교육과 돌봄에 대한 부모의 책임감이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게 정작 중요한 가정교육과 돌봄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아이에게 좋은 교육시키겠다고 너 나 할 것 없이 큰돈을 들여 비싼 학원, 영어 유치원, 이름 있는 학교 찾아다니며 아이들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크길 바란다. 근데 기본적인 가정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조차 갖추지 못한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것을 가르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나는 그렇게 현대사회의 무너진 돌봄과 가정교육을 되살리고 싶었다. 현실적으로 부모가 아이를 돌보고 가정교육에 신경 쓸 여유가 안된다면, 내가 그 역할을 대신해주고 싶었다. 나부터 좋은 어른이 돼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좋은 영향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내가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일이 어떤 게 있을까, 내가 그 일을 하기 위해선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고민해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크게 네 가지로 추려내서 거기에 매진하게 된다.


첫 번째는 교육봉사였다. 내가 그 당시에 활동하던 환경단체에서 운영하는 대안학교가 있었는데, 그 대안학교에서 방학 때마다 1주일간의 어린이 캠프를 열었다. 그때 캠프에 참여한 어린이들을 지도하고 돌보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는데, 방학 때마다 빠지지 않고 그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사람들의 얘기로는 1주일 동안 아이들과 하루 종일 함께 한다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일이 정말 신명 나는 일이었다. 캠프가 끝나고 아이들과 헤어질 때에는 정말 너무 슬프고 아쉬워서,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손편지까지 써주곤 했다. 그리고 항상 다음 방학이 오길 기다리며, 캠프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낼 생각에 기분이 들떠서 캠프 전 날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두 번째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참관이었다. 지금은 "부모협동 어린이집"이라고 불리는 소규모의 민간 어린이집인데, 기존 보육시스템과는 다른, 자연 친화적이고 자유로운 보육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부모들이 연합하여 설립한 어린이집이다. 내가 대학생 때 활동하던 단체에서 설립한 어린이집이라, 용기를 내어 어린이집을 참관해도 되냐고 부탁을 드렸을 때, 대표님께서 흔쾌히 승낙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그 어린이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경험해볼 수 있었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교육 전문 출판사인 '민들레 출판사'를 아지트 삼아 노는 것이었다. 민들레 출판사에서는 교육 도서 출판뿐만 아니라, 학교 밖 청소년들의 쉼터 역할, 유명하진 않아도 훌륭한 교육철학을 가진 교육자들의 강연 플랫폼 역할, 전 세계 교육 현장들의 소식을 전하는 역할도 함께 하고 있는 곳이다. 교육의 허브, 교육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나는 학교 강의가 없는 시간이나 주말에 틈틈이 민들레 출판사에 가서 독서모임을 가지거나, 강의를 듣거나, 교육현장에 계시는 선생님들과 교류하며 나만의 교육철학을 다져나갈 수 있었다.

네 번째는 다른 대학교의 교육 소모임에 가입하고, 그 학교의 교육학 수업을 도강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대안교육 행사에 참여하다가 우연히 대안학교 출신 대학생과 친해지게 됐는데, 그 친구가 대학교에서 교육 연구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친구의 권유로 "뿌리"라는 교육 연구 동아리에 타 대학생 최초로 가입하게 됐고, 함께 교육 정보들을 교류하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가 다니던 대학교의 교육학 수업이 정말 수준이 높다고 소문난 수업이라, 그 친구와 같이 강의실에 들어가 교육학 수업을 도강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교육현장과 아이들이 있는 곳에 뛰어들어 참관도 하고, 봉사활동도 하고, 다양한 교육자들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나의 교육철학과 내공을 쌓아갔고, 아이들과 관계하는 나만의 노하우를 터득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점차 교육자의 자질을 다져나가다가 어느덧 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됐다. 그때 한 대안학교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지원서를 냈는데 운 좋게 합격이 돼서 첫 직장으로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너무나도 행복하고 너무나도 만족스러웠지만, '남자 유치원 교사'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안 좋은 시선 때문에 1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근무하고 직장을 옮기게 됐다.


그렇게 첫 직장을 거쳐 지금의 직장까지 거쳐 오며, 나는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쭉 아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해오고 있다. 초등학생 1~3학년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지금의 학교에서는 충분히 나의 교육철학을 펼치며 황금기를 보내고 있고,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뿌듯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현재 지금의 일에 만족하고 더 이상 바랄 게 없이 행복하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고 향후에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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