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스타트업에 다닐까?
B2B SaaS 기업을 중심으로 프리랜서부터 정직원까지 다양한 형태와 성격을 가진 프로덕트와 함께하면서 깨달은 건, 어떤 회사를 가도 비슷한 문제들이 반복된다는 점이었어요.
처음에는 '이 회사만 특별히 문제가 많나?'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인재 이탈, 자원 부족, 소통 부재, 불확실한 미래. 이런 이슈들이 B2B SaaS 라는 특정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어디든 마주하게 되는 구조적 한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왜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는 걸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관찰과 경험을 정리해볼게요.
초기 B2B SaaS 스타트업에서는 인력 이탈이 유독 빠르게 나타납니다. 일반 기업의 연간 자발적 이직률은 평균적으로 약 13% 수준으로 알려져 있지만(NetSuite, 2023), 스타트업 직원의 중앙 재직 기간은 불과 2.2년에 그칩니다. 반면 전체 산업 평균 재직 기간은 약 4.1년으로, 두 배 가까운 차이를 보이죠(Carta, 2023). 특히 스타트업에서는 3년 차에 이르면 직원 절반가량이 회사를 떠난다는 통계도 있어요.
특히 전문성이 요구되는 포지션일수록 한 명의 공백이 미치는 파급력은 더 크게 다가와요. B2B SaaS 기업의 경우, 영업 사이클이 길고 기술적 이해도가 필수이기 때문에 한 명이 나가면 단순한 결원이 아니라 팀 전체의 성장 속도와 고객 대응 체계가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지곤 했습니다.
제한된 자금으로 인한 급여 불만족
복지, 교육비, 건강검진 등 부대 혜택의 부재
스톡옵션의 불확실한 가치 (대부분 휴지조각이 되는 현실)
또, 극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역할 경계의 모호함이 가져오는 혼란이 크기도 합니다. 어제까지 마케터였다가 오늘은 CS도 해야 하고, 때로는 영업 지원까지. 멀티플레이어로서의 성장 기회라고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체계적인 전문성 개발이 어려운 환경이에요. 특히 시니어급 인재들에게는 커리어 퇴보로 느껴지기도 하죠.
다음 투자 라운드 성공 여부의 불확실성
경쟁사 대비 뒤처지는 성장 속도에 대한 우려
개인 커리어 플랜과 회사 로드맵의 불일치
초기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가장 큰 스트레스 요인이에요. 대기업처럼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되지 않다 보니 늘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야 하죠.
다음 투자 라운드 성공 여부에 따라 회사의 생존이 결정되는 상황에서, 직원들은 항상 '내년에도 이 회사가 존재할까?'라는 걱정을 안고 살아요. 투자 유치에 실패하면 대규모 구조조정이나 회사 문 닫는 일이 현실적으로 일어나니까요.
또, 경쟁사들이 더 큰 투자를 받거나 빠르게 성장하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우리 회사는 뒤처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조바심도 들죠. 특히 같은 시기에 창업한 회사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거나 유명해질 때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창업팀과 대표는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어요. 제품 개발에 집중할 것인가, 투자 유치에 매달릴 것인가, 아니면 조직 관리에 신경 쓸 것인가. 생존이 우선인 상황에서 개별 구성원의 만족도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어요.
실제로 많은 스타트업 CEO들이 '사람 관리는 나중에'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요. 제품이 성장하고 고객을 먼저 신경써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접근이 장기적으로는 더 큰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걸 간과하죠.
팀장급에서 가장 답답한 지점이에요. 다수의 초기 스타트업들은 대표를 필두로 의사결정이 이뤄지기에 문제를 가장 가까이서 보면서도 해결할 권한이 제한적이죠. 팀원의 불만을 들어주고 싶어도 급여나 복지 개선은 불가능하고, 업무 프로세스를 바꾸고 싶어도 전사적 합의가 필요해요. 이게 중간 관리자들이 번아웃을 겪는 주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합니다. (모든 기업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요.)
정기적인 1on1이나 성과 리뷰 시스템은 대부분 나중에 체계화하자고 논의 되고는 해요. 당장 해결해야 하는 불이 너무 많아서죠. 그 결과 개인의 고민이나 불만이 해결되지 않고 계속 쌓여요. 어느 날 갑자기 퇴사 의사를 밝히는 직원을 보며 '왜 미리 얘기하지 않았지?'라고 당황하는 리더들이 많아요. 하지만 사실 그런 대화를 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부족했던 거죠.
B2B SaaS에서는 특히 팀별 관점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각 팀이 추구하는 목표는 모두 합리적이지만, 충분히 조율되지 않으면 쉽게 내부 갈등으로 번지곤 해요.
개발팀은 기술 부채를 줄이고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집중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이게 가장 현명한 선택이지만, 당장 눈앞의 요구와는 충돌할 때가 많죠. 기술적 완성도를 확보하기 위해선 속도를 늦춰야 하는데, 회사 전체는 늘 ‘더 빠르게’ 움직이길 원하니까요.
마케팅팀은 단기적인 세일즈 성과보다 브랜드 구축과 장기적 고객 확보를 중시합니다. 브랜드 포지셔닝과 메시지가 일관되게 자리 잡아야 시장 신뢰를 얻을 수 있는데, 단기 성과에 밀려장기 브랜딩 전략이 무시될 때가 잦아요.
CS팀은 이미 확보한 고객들의 만족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현재 발생하는 문제 해결이 지연되면 고객 유지율(리텐션)이 급격히 떨어지고, 이는 SaaS 비즈니스 모델에서 치명적인 리스크로 이어지죠.
제품팀은 장기적인 제품 로드맵과 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고객의 요구와 내부 리소스를 종합해 '무엇을 언제, 어떤 순서로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 이들의 핵심 역할이죠.
세일즈팀은 언제나 고객의 목소리를 즉시 반영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둡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B2B SaaS 영업에서는 하나의 계약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단위 매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고, 고객이 요구하는 기능 하나가 성사 여부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세일즈는 미팅 자리에서 '이 기능은 곧 제공될 겁니다'라는 약속을 쉽게 꺼내야 합니다. 실제로 고객이 그 말을 듣고 도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직 로드맵에 없는 기능이나 개발 리소스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까지 약속으로 이어지기도 해요.
이건 세일즈 입장에서 보면 합리적인 선택이에요. 그 순간의 계약 성사가 회사 생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니까요. 하지만 개발팀이나 제품팀 입장에서는 '과도한 약속'이 되고, CS팀 입장에서는 나중에 고객 불만을 감당해야 할 불만의 씨앗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세일즈팀이 당장의 계약 성사와 고객 신뢰 확보를 위해 속도와 단기 성과를 추구하는 건 SaaS 업계에서 불가피한 현실이에요. 문제는 이것이 다른 팀의 우선순위와 충돌할 때, 조율하지 못하면 곧바로 내부 갈등으로 번진다는 점이죠.
결국 모든 팀이 합리적인 이유로 각자의 우선순위를 주장하지만, 이게 조율되지 않으면 '누구의 목소리를 먼저 반영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귀결돼요.
결과적으로,
개발팀은 기술적 난이도와 안정성을 강조하며 업데이트 속도를 늦추려 하고,
세일즈팀은 당장 계약 성사를 위해 로드맵에 없는 기능을 요구하고,
마케팅팀은 브랜딩과 차별화 포인트에 맞는 기능을 원하고,
CS팀은 현재 고객 불만을 해결할 수 있는 개선을 우선시하죠.
이 사이에서 제품팀은 늘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하지만, 결국 한정된 리소스를 어디에 배분할지라는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장기 로드맵을 고수하면 '현실을 모른다'는 불만을 듣고, 단기 요구에 끌려다니면 '전략이 없다'는 지적을 받게 되죠.
B2B SaaS 스타트업에서는 이러한 우선순위 충돌이 일시적인 갈등이 아니라, 조직 운영의 구조적 긴장 요소로 상존합니다. 그렇기에 이를 조율하는 리더십과, 팀 간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없으면 작은 불협화음이 쉽게 조직 전체의 신뢰 문제로 커져 버리곤 하죠.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보자'던 초기의 포부와 달리, 실제로는 기존 솔루션의 아류작을 만들고 있다는 자각이 들 때가 있어요. 시장 검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개인의 가치관과 충돌하는 지점이죠.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는데 내 실력은 그에 못 미친다고 느끼거나, 반대로 내가 더 빨리 성장하고 싶은데 회사가 발목을 잡는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속도감의 차이는 결국 현타로 이어지죠.
'세상을 바꾸는 제품'이라는 비전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매출을 위해 타겟 고객층을 바꾸거나 제품 방향을 계속 수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회의감. '이렇게 일하는 게 맞나?'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해요. 매출이 생존의 기반이 되기에 이 부분은 모두가 이해하고 넘어가지만, 실무자들의 업무적 피로를 가중시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B2B 특성상 소수의 대형 고객이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해요. 그런데 이런 고객들의 무리한 요구나 갑질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발생하죠. 개발팀은 기술적으로 말이 안 되는 요구사항을 구현해야 하고, 고객을 제 1접점에서 응대하는 세일즈 및 CS 팀은 불합리한 컴플레인을 감내해야 해요.
분기별 실적 보고, 투자자 미팅 준비 등으로 인해 실제 업무보다 '보여주기식'작업에 시간을 쏟아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개발자는 코딩 대신 PPT를 만들어야 하고, 전사적으로 실제 성과보다 그럴듯한 지표 만들기에 매달려야 하죠.
개인정보처리방침, 보안 인증, 각종 컴플라이언스 요구사항들은 초기 스타트업에게는 너무나 무거운 짐이에요. 하지만 B2B 고객들은 이런 부분을 까다롭게 요구하죠. 전문 인력 없이 이런 업무까지 떠안아야 하는 스트레스가 상당해요.
대기업이나 기존 구조화된 체계를 가진 조직에서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스템을 구축하고, 프로세스를 만들고, 문화를 정의하는 일. 이런 경험은 정말 값진 자산이 돼요.
'한 번 해볼까?'가 '해보자'로 이어지는 속도가 정말 빨라요. 아이디어를 제안한 다음 날 바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볼 수 있고, 일주일 안에 고객 반응을 확인할 수 있죠.
내가 만든 기능을 고객이 실제로 사용하고, 그것이 고객의 업무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걸 직접 확인할 수 있어요. 이런 성취감은 대기업의 거대한 시스템 속 작은 톱니바퀴로 일할 때는 느끼기 어려운 경험이에요.
그렇지만 앞에서 나열한 수많은 구조적 한계들이 있기에, 이 장점들이 모든 단점을 완전히 덮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불안정한 자원, 잦은 인력 이탈, 불명확한 역할, 그리고 팀 간 갈등 같은 문제들은 결국 조직 전체를 흔드는 요소로 남아 있거든요.
그런데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수많은 구조적 한계들을 매일같이 체감하면서도 저 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여전히 스타트업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에요. 위에서 나열한 사항들 같이 보면 '왜 굳이?'할만한 힘들 것 같은 이유들뿐인데 막상 그 경험들을 돌아보면 아직 이곳에서 배울 것이 있고, 제가 공감하는 비전이 있고, 제가 주도적으로 만들 수 있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겠죠.
어쩌면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장점과 단점 중 어느 하나가 더 크기 때문에 남는 게 아니라, 이 모순된 현실 속에서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무언가를 발견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대기업에서 느낄 수 있는 발전된 경험과는 상반된 것이겠죠. (아무 말)
이런 구조적 한계 속에서 나를 보호하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명확한 가치를 설정해 두는게 중요해요.
'2년 안에 시리즈 A를 받지 못하면 떠나겠다', '리드급으로 승진하지 못하면 이직하겠다'같은 구체적인 기준을 세워두는 게 중요해요. 무작정 버티는 것보다는 명확한 exit 전략을 갖고 있는 게 정신건강에 좋아요.
회사가 체계적인 피드백 시스템을 만들기를 기다리지 말고, 본인이 먼저 정기적인 대화 자리를 만들어보세요. 월 1회 상급자와의 커피 타임, 동료와의 회고 세션 등을 제안해볼 수도 있어요.
회사의 불확실성과 별개로 내 전문성을 쌓고 외부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데 꾸준히 투자하세요. 컨퍼런스 발표, 블로그 포스팅, 업계 모임 참여 등을 통해 언제든 다음 기회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개인만의 자산을 준비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완벽한 환경은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이런 환경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것에 집중하세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질서를 만드는 방법,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 효과를 내는 노하우,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기술 등은 나중에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이에요.
초기 B2B SaaS 스타트업은 인재 이탈, 자원 부족, 불확실성, 고객과 투자자의 압박 같은 문제들이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몇 군데 회사를 거치며 확인한 건, 이것이 특정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초기 단계라면 누구나 겪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현실이라는 점입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다 보면 답답하고 버거운 순간이 훨씬 많습니다. 불확실성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죠. 그렇다고 해서 이 경험이 전혀 의미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완전한 환경 속에서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제한된 자원으로 성과를 내며, 불안정한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경험은 스타트업 직원이라는 맥락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예기치 못한 변수가 일상처럼 등장하는 건 인생 전체에서도 다르지 않으니까요. 스타트업에서 배운 ‘우선순위를 정하는 법’, ‘제한된 조건 속에서 길을 찾는 법’, ‘불안정한 환경에서도 결정을 내리는 법’은 결국 삶의 여러 장면에서도 똑같이 요구되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의 경험은 예측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할 때 어떤 태도로 대응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자산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장점과 단점 중 어느 쪽이 더 크기 때문에 남는 게 아닙니다. 답답하고 모순된 현실을 감당할 수 있을지,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성장이나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를 스스로에게 계속 묻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중요한 건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하며 각자의 상황과 목표에 맞는 선택을 내려가는 일입니다. 그것이 초기 스타트업에서 살아남는 방식이자, 동시에 다른 곳에서도 가치 있는 자산이 될 수 있는 이유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