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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Sep 09. 2024

‘장손’,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영화 〈장손〉

9★/10★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다가올 명절, 어쩌면 당신 앞에 펼쳐질 장면이 있다. 온 가족이 모여서 제사 음식을 준비한다. 아, 물론 여자만이다. 임신한 손녀가 더워 죽겠으니 제발 에어컨 좀 틀자고 하소연해도 들은 척도 안 하고 전이나 똑바로 부치라고 구박하던 할머니는 마치 오늘의 주인공이 자신인 양 느지막이 장손이 행차하자 에어컨을 켜라고 소리를 지른다. 한편 할아버지는 제사 시간을 당기자는 손아랫사람들의 간청이 못마땅하고 오류를 바로잡아 새로 나온 족보의 가치를 장손에게 설명하는 데만 마음이 가 있다. 어디 그뿐인가. 점잖다가도 술만 마시면 난리를 피우는 아버지, 어른이 없을 때면 험담을 하다가도 누구보다 열심히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 남모를 사정으로 종교에 깊이 빠져 있는 첫째 고모, 비싼 차에 비싼 술을 싣고 밤늦게 도착하는 둘째 고모……. 당신의 성별과 세대에 따라 누군가는 PTSD를, 누군가는 안온함을 느낄 광경이 연달아 펼쳐진다.     


  그래도 우리는 웃을 수 있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는 리얼한 장면들이 연달아 이어지는 과정에서 애환이든 공감이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신을 동일시할 인물을 찾을 수밖에 없고, 영화는 이 일상의 아수라장 속에서도 가족 중 누구도 악마화하지 않은 채 놀라운 짜임새를 선보이기 때문이다. 미화美化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곪아 터진 현실에도 웃고 있을 뿐이지 않느냐고 묻는다. 이 영화에서, 웃음은 가족의 일상 이면에 자리한 상처로 우리를 인도한다. 시신도 없이 부모의 산소를 꾸릴 수밖에 없던 할아버지, ‘빨갱이질’로 신세를 망친 아버지,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남편을 지극히 돌보는 첫째 고모, 그 사고와 깊은 관련이 있는 장손, 그리고 엄격하고 근엄한 할아버지와 그 아랫사람들을 아우르며 확립된 가족의 질서를 조율하며 유지해나가는 할머니 등등. 서로를 원망하고 때로는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슬그머니 이불을 깔아주고 선풍기를 돌려주는 이들에게서 우리는 일상적 평온함과 봉합 불가능한 상처로 얽힌 복잡한 관계망을 동시에 마주한다.     



  할머니의 사망을 계기로, 영화의 분위기는 변모한다. 웃음보다 혼란이 중요한 정서다. 가족을 지탱하던 온갖 질서가 무너지고 뒤엉키면서 할머니가 가족 내에서 얼마나 많은 걸 떠받치고 있었는지가 드러난다. 서로가 감춰두었던 비밀과 속상함이 정돈되지 않은 채로 쏟아지며 갈등이 고조된다. 장손인 성진의 달라진 표정이 이를 대변한다. 배우를 한다며 돈만 까먹는, 어려운 상황이 생길 때마다 능청스레 넘어가던 장난기 많은 철부지 성진의 얼굴은 할머니 사후 가족 내 분란의 한가운데에서 넋이 나간 듯 황망해진다. 알면 알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게 되는 사건의 연속이다.   

  

  갈등의 핵심은 돈이다. 할머니가 자신으로 통하던 가족 내 ‘돈의 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급작스레 세상을 떠나자, 자식들은 그 미로를 각자가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 이들 사이의 간극은 더욱 커져만 간다. 그리고 성진은 이 혼란 끝에 그 모든 미로의 끝에 자신이 있음을 안다. 할머니가 떠난 후 치매 증세를 보이던 할아버지는 멀끔한 정신으로 검은 비닐봉지를 성진에게 건넨다. 그 안에는 이 모든 혼란을 정합적으로 설명할 무언가가 들어 있다.     



  그러나 성진은 여전히 넋이 나간 표정이다. 이제 성진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지난 세대 어른들이 완고하게 고집하던 ‘장손’에 대한 가치 부여를 모른 척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세대의 ‘장손’에게 요구되는 관계의 윤리를 실천할 것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서 장손의 권위를 계승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배제한 채 가족을 연결하고 지탱하는 돌봄의 윤리만을 계승할 것인가. 성진에게 검은 비닐봉지를 건네고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끝났다는 듯 뒤돌아 걷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외롭지만 의연해 보이고, 심지어는 후련한 듯도 보인다. 자신은 자기 세대의 윤리에 따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이제는 장손인 성진이 그 세대의 윤리에 맞추어 장손의 역할과 가족의 일을 꾸려나갈 때다. 족보, 제사 타령이 중요한 게 아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성진에게 건넨 것은 책임감의 무게다.     


  영화는 성진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알려주지 않으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고. 핵심은 성진의 성별과 가족 내 지위(독자獨子)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가족을 지탱하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책임감이다. ‘장손’의 의미를 ‘한집안에서 맏이인 남자 후손’의 영역 너머로, 즉 가족이라는 해명 불가능한 복잡한 관계망 안에서 살아가는/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사람에게 확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모두 성진의 표정을 지어야 한다. 영화 속 세 계절인 여름과 가을, 겨울이 지나고 마침내 봄을 맞이하기 위하여.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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